“다 나라 빚” vs “애들 학원비 보탤 것” 소비쿠폰에 엇갈린 시선 [르포]

이상현 매경 디지털뉴스룸 기자(lee.sanghyun@mk.co.kr), 권민선 매경 디지털뉴스룸 인턴기자(kwms0531@naver.com)

입력 : 2025.07.09 16:27:18
정부, 오는 21일부터 소비쿠폰 지급
학원비·식비·병원비에 활용…기대감
일각에선 “다음 세대 생각해야” 지적


지난 8일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의 한 식당에서 설거지 중인 자영업자의 모습. [권민선 인턴기자]


“그게 다 나라 빚이야. 다음 세대 생각하면 안 받고 싶지.”

8일 오전 서울 용산구 만리시장. 이곳에서 고춧가루와 참기름 등을 판매하는 고모씨(66)는 민생회복 소비쿠폰에 대해 “후대로 부담을 떠넘기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경기가 안 좋아도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게 좋은 거지, 나라가 다 책임질 건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내수 진작을 위한 이재명 정부의 첫 소비쿠폰 신청이 오는 21일 시작된다. 정부는 다음달 12일까지 두 차례에 걸쳐 소비쿠폰을 지급한다. 1차 때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1인당 15만~45만원을, 2차 때는 소득 하위 90%를 대상으로 10만원을 추가 지원한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는 40대 회사원은 “중학생 자녀 학원비에 보태고 싶다”며 소비쿠폰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40년째 노점 장사 중이라는 80대 여성은 “고구마 순 팔아서 하루 5만원도 못 번다”며 “허리가 안 좋아서 병원비로 쓸 것”이라고 말했다.

시장을 둘러보던 한 80대 신사는 “좋은 건 받아야 한다. 나랏돈이지 않으냐”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30대 남성도 식비에 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내 한 식당 모습. [권민선 인턴기자]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과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기보다 2.1% 상승했다. 상반기 기준 2021년(2.0%)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지만, 수산·축산물과 가공식품·외식 물가의 상승세가 이어지는 상황이다.

정부의 이번 소비쿠폰 지급 결정은 불안정한 먹거리 물가가 서민 경제에 직격탄이 되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반 소비자뿐 아니라 자영업자들도 여의찮다. 지난해 연간 개인·법인 폐업자(100만8282명) 중 소매업·음식점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45%에 이른다. 정부는 이번 소비쿠폰 지급이 민생경제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소비쿠폰 지급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은 12조1709억원 규모다. 이를 활용하기 위한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지난 4일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야권에서는 ‘선심성 현금 살포’라 맞서는 상황이다.

소비쿠폰에 반대하는 이들은 정부의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은 데 우려를 표했다. 추후 정부가 세수 부족 등을 이유로 세율을 조정할 경우 후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게 되고, 소비 진작이 되려 물가 상승의 추가적인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8일 오전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권민선 인턴기자]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경기 부양 카드로 쓰였던 소비지원금이 영세 소상공인에게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조사 결과도 최근 소비쿠폰 지급 반대 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만리시장에서 43년째 옷 가게를 운영 중인 80대 자영업자는 “온 국민한테 지원금 주면 돈이 얼마나 드냐. 우리 늙은이들 마음은 나라가 우선”이라며 “나라가 없는데 우리가 있나. 나랏빚이 많으면 우리 2세들이 고생한다. 안 줘도 사는 데 지장 없다”고 했다.

인근에서 20년째 횟집을 운영 중인 70대 김모씨도 “젊은 사람들 생각하면 그렇게까지 나랏돈을 써야 하나 싶다”며 “이런 정책을 잘하는 거라고 볼 수는 없다. 일단 돈을 쓰니까 (받는 입장에서는) 좋지만, 나랏빚이니까 후대가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쿠폰 지급 대상자인 국민은 오는 21일 오전 9시부터 다음달 12일 오후 6시까지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으로 소비쿠폰을 신청하면 된다. 신용·체크카드와 선불카드, 지역사랑상품권 중 자신이 원하는 방식을 선택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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