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人] '믿음의벨트'로 옥죄는 금투사기…"누구나 잠재피해자"
박현식 전문변호사 "비밀유지 요구하거나 금융사 아닌 낯선 계좌 주면 의심""금융권 종사자도 피해 보는 현실…나조차 감탄할 정도로 수법 교묘"범죄 통장 지급정지 활성화 필요…'이상 계좌' 탐지해 입금시 경고해야
김태균
입력 : 2025.07.17 07:02:00
입력 : 2025.07.17 07:02:00

[촬영: 김태균]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금융투자 사기는 '믿음의 벨트'로 피해자를 차츰 옥죈다.
단체대화방에 초대돼 유용한 투자 정보를 공유받는 것이 그 첫 고리다.
소위 '금융사' 관계자의 조리 있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다, 비밀 서약을 하고 고급 자료를 받아보자는 제안이 나오며 벨트가 조여진다.
수백만 원 시험 투자에 10∼20% 수익이 차곡차곡 입금되며 '제대로 일을 하는 곳'이라고 믿게 되면 빠져나오기가 힘들다.
거액의 투자금이 줄줄이 묶여 순식간에 사라진다.
금투 사기 사건 전문가인 박현식 변호사(법무법인 에이앤랩)는 "이런 사기는 투자 기회를 찾는 사람의 '열린 자세'를 파고들기 때문에 자각이 어렵고 내용이 평범하고 매우 교묘하다"며 "금융투자에 대해 잘 아는 나 자신조차 사기단 설명을 읽다 보면 '괜찮은 생각'이라고 감탄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금융법을 공부했다.
한국투자증권에서 사내 변호사로 근무한 바 있다.
금투 사기는 투자 정보를 공유하는 대화방인 '리딩방'을 주로 앞세우기 때문에 리딩방 사기로도 많이 알려졌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 반 사이 리딩방 사건의 국내 피해액은 도합 9천913억원에 달했다.
박 변호사는 17일 서울 서초구 에이앤랩 사무실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금융투자가 보편화한 지금 이 범죄는 은퇴 자금을 모으려는 40∼50대 등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위험이 됐다"며 "금융 지식이 많은 금융사 종사자나 기업의 투자업무 담당자 등 전문직도 피해를 보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관이나 '투자 세력'이 공모주 등 큰돈을 버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해 '고맙도록 좋은 기회'로 느껴질 때를 조심해야 한다"며 "비밀유지 계약을 선제 조건으로 내걸거나, 투자금을 받는 통장이 금융사 계좌가 아닌 개인이나 유한회사 등 낯선 법인이 예금주면 꼭 의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 변호사는 금투 사기의 근절을 위해 범죄 계좌의 지급정지(출금 금지)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이스피싱과 대출사기의 경우에만 은행 측이 바로 지급정지를 해주는데, 이를 개선해 금투 사기도 빨리 범죄 계좌를 동결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변호사는 금투 사기에 악용되는 계좌가 입출금 패턴이 비정상적인 만큼, 이런 경향을 AI(인공지능) 등으로 분석해 문제가 의심되는 계좌에 입금할 때 경고문을 표출시키는 조처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박 변호사와의 일문일답.

[생성AI 챗GPT 제작]
--금융투자 사기가 당사자가 범죄 표적이 됐다는 자각을 하기가 어렵다는데, 실제 어느 정도 수준인가 ▲ 업무 때문에 사기단의 설명을 읽어보는데 나도 '어 이거 괜찮은 생각인데'라는 반응이 절로 나온다.
대학원에서 금융법을 공부했고 증권사에서 사내 변호사를 했다.
이렇게 금융투자에 대해 잘 안다고 자평하는 나조차 그렇다.
--이런 범죄의 패턴은 ▲ 색다른 제안이나 황당한 주장을 하는 경우는 잘 없다.
주식, 공모주, 파생금융상품 등 실제 운용사에서 다루는 것들을 제안한다.
유튜브나 인터넷 광고 등으로 접촉한 피해자에게 증권사 같은 금융기관 소속이라고 밝힌다.
해외의 자산운용사를 사칭하는 경우도 있다.
회사 로고, 워터마크, 문서 문구 이런 걸 정교하게 위조한다.
가짜 웹사이트로 신뢰를 사기도 한다.
그리고 단톡방(단체 대화방)에 초대한다, 처음엔 돈을 내라고 하지 않는다.
시황 분석이나 기술 분석 등 실제 시중에서 도는 투자 관련 자료를 잘 정리해 보여준다.
네이버 등 인터넷에 자료가 워낙 많다 보니 일리가 있는 분석을 해준다.
피해자들은 애초 투자 기회를 찾는 사람들이다.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려 있다.
그러다 보니 '투자 정보를 잘 제공하는구나.
일단 얘기 들어보고 맘에 안 들면 투자를 안 하면 된다' 하며 참여하게 된다.
--바로 투자금을 받지 않는 건 의심을 피하려는 것인가 ▲ 그렇다.
처음부터 돈을 내라고 하면 수상하게 보일 수 있으니 유용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신뢰를 쌓는 것이다.
--돈은 그럼 어떻게 받나 ▲ 비밀 유지계약, 서약서를 쓰게 만든다.
이제부터 알려주는 정보는 다 고급 자료고 기관 내부 문서니, 대외 유출하면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가 비밀리에 계좌를 운용하는데 실제 기관이나 '투자 세력'들은 이렇게 돈을 번다고 한다.
우선 200만∼300만원 등 소액 투자부터 해보라고 한다.
10∼20% 수익률로 실제 수익금을 준다.
이 정도 고수익은 실제 금융투자 업계에서 실현할 수 있는 수준이다.
'처음 만난 고객인데 제대로 일을 하는구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게 된다.
정교하게 만든 가짜 앱(스마트폰 프로그램)이나 가짜 웹사이트에 가입시키고 투자를 본격적으로 하게 만든다.
투자금을 받는 계좌가 금융사 계좌가 아니면 의심을 할 수 있다.
예금주가 개인이거나 이상한 회사가 찍힌다.
그럼 '금융사가 보유한 비(非)실명 계좌'라고 둘러댄다.
비밀유지계약을 한 고객과는 이런 방식으로 큰돈을 번다고 한다.
대중이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큰 손'들이 어떻게 비공개 정보로 거액을 불리는지다.
그런 비밀 거래 기회를 준다고 하니 '로또 같은 횡재'로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거래하는 종목도 실제 시중에 다 존재하는 것들이고 가짜 앱 화면상에서는 투자금 수치가 불어나니 안 믿기가 어렵다.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어렵겠다 ▲ 피해자들이 많이 하는 말이 있다.
'나에게 이렇게 좋은 기회가 와서 너무 감사하다'는 거다.
사건 의뢰인 중에서는 로펌에 와서도 범죄 피해를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자기가 볼 땐 정상 투자인데 자꾸 자녀들이 사기라고 펄쩍 뛰니, 우리보고 적법성을 입증해 달라고 간청한다.
사기단은 거금이 들어오면 기관에 투자하는 돈인 만큼 중도 인출이 어렵다는 말을 미리 정교하게 해놓는다.
투자금 찾겠다고 하면 세금·수수료, 금감원 보증금, 자금 세탁 비용 등을 핑계로 돈을 더 뜯는다.
피해자는 이미 묻어놓은 투자금을 날릴 수 있다는 생각에 집 종잣돈을 몽땅 털고 대출이나 보험 보상금을 몇억씩 넣는다.
비밀유지 서약 때문에 주변에 얘기도 못 하고 '내가 규정을 어겨서 이렇게 됐다'며 끙끙 앓는다.
설령 가족에게 얘기를 꺼내 '사기당했다'는 말을 들어도 '그래도 진짜일 수 있다.
돈을 더 내면 투자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며 강행한다.

[촬영 김태균]
--피해자들은 대체로 어떤 사람들인가 ▲ 40대에서 50대 후반까지 연령이 많다.
노후 자금 마련 때문에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려는 수요가 많고, 운용할 수 있는 목돈이 있기 때문에 표적이 되기 쉽다.
이 범죄는 금융 투자를 잘 알아도 대처하기 어렵다.
몰라서 당하는 게 아니다.
실제 은행·보험사의 현업 종사자나 공공기관의 투자업무 담당자 등도 피해를 본다.
반대로 투자에 관해 지식과 관심이 전혀 없는 이들이 가장 범죄 피해자가 될 위험성이 적다.
--범죄를 의심해야 할 주요 '경고등'은 뭔가 ▲ 크게는 비밀유지 계약서랑 예금주 2가지다.
금융회사가 개인 고객에게 비밀 유지 계약을 요구할 가능성은 '0'에 가깝다.
예금주가 금융회사가 아닌 개인이거나 생소한 이름의 법인이면 조심해야 한다.
요즘에는 특히 유한회사 명의의 범죄 계좌가 많아졌다.
유한회사는 외국 대기업이 국내 지사를 세우는 경우가 아니면 사실상 볼 일이 없는 법인 형태다.
금융 업계에서는 아예 만들 이유가 없다.
처음 보는 앱의 설치나 웹사이트 가입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행태도 요주의 대상이다.
기존 금융사는 고객이 물어보면 앱 가입 안내를 해주지만 이를 투자의 선결 필수 조건인 것처럼 얘기하지 않는다.
--이 범죄와 관련해 제도적 개선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인가 ▲ 금투 사기에선 투자금을 입금한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신청을 하는 것이 급선무다.
범죄가 의심되니 계좌를 동결해 돈을 빼낼 수 없게 해달라고 은행에 요청하는 것이다.
그래야 나중에 범죄 피해금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커진다.
현재 보이스피싱과 대출 사기는 관련 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은행 측에서 신속하게 지급정지를 해준다.
단 이 법에서 금투 사기가 지급정지 구제 대상이 아니다.
법 제정 당시에는 이 범죄가 대거 퍼지기 전이었다.
이 때문에 금투 사기 피해자들이 은행에 가서 지급정지를 하려고 해도 성공률이 들쭉날쭉하다.
요청을 안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통장을 못 쓰게 만드는 조처인 만큼 은행도 신중할 수밖에 없다.
법제를 고쳐 금융사 사칭 등 금투 사기의 주요 조건을 충족하는 사례면 바로 지급정지를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범죄 피해금을 실제 돌려받을 수 있나 ▲ 채권 가압류와 손해배상 청구 등의 소송을 통해 피해금을 돌려받는 판례가 나오고 있다.
--사기 근절을 위한 다른 아이디어가 있는가 ▲ 범죄에 쓰이는 계좌는 비정상적 패턴이 나타난다.
장기간 동결됐던 계좌가 풀리면서 거액의 돈이 고빈도로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대표적 예다.
AI(인공지능) 등을 통해 이런 패턴을 분석해 이상 의심 계좌에 이체하려고 번호를 입력하면 전산상 경고 문구를 띄우는 조처를 고려할 만하다.
이런 계좌는 정상 계좌와는 행태가 전혀 다른 만큼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기단이 금융사를 사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예방법이 없을까 ▲ 현실적으로 사칭 여부를 가려내기가 어려울 때가 많다.
실제 있는 종사자의 명의를 내세우는 경우가 많아 금융사에 전화하는 것만으로 판단하기 쉽지 않다.
특히 회사 관계자가 구체적으로 어느 부서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개인 정보 등이 맞물려 있어 고객센터에서 확인이 어려운 경우도 적잖다.
범죄 수법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는 것이 최선으로 판단된다.
--이 범죄와 관련해 꼭 당부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 금투 범죄는 평범하기 때문에 무섭다.
황당무계한 투자를 제시하지 않는다.
일리 있는 시장 분석 정보를 제시하고 투자 기회를 설명하고 투자금을 받는 것은 자산운용사 등에서 다 하는 프로세스다.
범죄 수법이 이런 과정을 다 그대로 따라 하기 때문에 뭐가 진짜고 뭐가 사기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정말 영세한 자산운용사라면 개인 명의 계좌로 투자금을 받아 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단 그런 곳은 투자자를 매우 폐쇄적으로 모집하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모은 비대면 고객에게 참여 기회를 주진 않을 것이다.
결국 '나한테 어떻게 이런 기회가 올 수 있지'라며 자문하는 순간을 조심해야 한다.
기관이나 특정 '세력'이 평범한 시민에게 접근해 행운처럼 돈을 벌게 해주는 것은 현실에선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tae@yna.co.kr(끝)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