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상속 골치아픈데 은행에 맡기자"… 5060 중산층도 '유언신탁'

김정환 기자(flame@mk.co.kr)

입력 : 2025.07.20 17:51:43 I 수정 : 2025.07.20 20:04:58
유언대용신탁 시중은행 잔액 4조 육박 … 5년새 4배 껑충
은행이 주식·채권 등 투자
생전엔 필요할 때 찾아 쓰고
사후엔 유언대로 상속 진행
변경 까다로운 유언장과 달리
손쉽게 계약내용 바꿀 수 있어
"재산 물려줄 자식도 없는데"
1인가구 늘며 관심 더 커져






자녀 없이 전문직에 종사하다가 은퇴한 60대 여성 A씨는 최근 은행 유언대용신탁에 가입했다. 마땅히 재산을 물려줄 사람이 없는 상황에 어떻게 재산을 물려줄지 고민하다가 사후에 본인이 원하는 종교단체에 기부하기로 했다. 은행은 A씨가 사망하기 전까지 신탁 자금을 굴려 필요한 생활비를 지급하다가 사후엔 생전 계획대로 재산 승계에 나설 예정이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유언대용신탁 잔액은 올 상반기 기준 3조7663억원이었다. 2020년 8793억원이었던 잔액이 5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4.3배나 늘었다. 신탁 가입 기준이 잇따라 낮아지며 올해는 4조원을 넘어설 것이 유력하다. 기존에는 많게는 10억원 이상이던 가입 최소 금액이 최근 1000만원까지 내려가면서 고객층이 고액 자산가에서 중산층으로 확대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유언대용신탁은 금융기관이 고객과 생전에 신탁계약을 맺고 재산을 관리해 주다가 고객이 사망하면 사전 계약대로 자산을 이전해주는 금융상품이다. 유언장은 법적 효력이 발휘되려면 자필 증서, 증인 같은 엄격한 요건이 충족돼야 하고 내용이 바뀔 때마다 새로 작성돼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반면 유언대용신탁은 유언장과 같은 법적 효력을 갖췄으면서도 살아 있을 때부터 재산을 굴릴 수 있고, 계약서만 고쳐 쓰면 손쉽게 내용 변경이 가능해 고령층 고액 자산가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 또 유언은 지정된 사람에게 모든 재산이 상속되는데, 대용신탁은 피상속인이 사망한 후에 누가 해당 자산을 받을지를 미리 지정하는 것이 가능하고 상속인이 물려받는 시점을 정할 수도 있다.

최근 시중은행은 고령화 속도가 빨라지자 일반 고객을 겨냥해 잇달아 '보급형' 상품을 내놨다. 억대 자산가가 아니어도 영업점에서 가입할 수 있다. 주력 타깃은 50~60세 중산층 이상이다. 상속재산과 관련해 법적 분쟁이 늘면서 건강할 때 재산 승계 문제를 정리해 두자는 흐름이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치매 등 질환으로 인지 능력이 떨어지면 의사 표현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미리 신탁에 가입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졌다. 특히 자녀가 없는 1인 가구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사후에 재산을 정리해줄 사람을 찾기 힘들어서다.

유언대용신탁에 맡길 수 있는 재산은 현금(금전)이나 유가증권, 부동산이다. 다만 상품에 따라 재산별 가입 가능 금액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예컨대 NH농협은행의 대중형 신탁(사랑THE 종합유언대용신탁)은 금전을 기준으로 5000만원 이상이면 가입할 수 있지만 유가증권·부동산 등 금전 외의 재산을 맡긴다면 합산 금액이 1억원 이상이어야 한다. 하나은행의 100세신탁처럼 가입 가능 금액이 금전 기준 100만원 이상인 소액 신탁도 있다. 보수 역시 천차만별이다. 일례로 신한은행의 신한유언대용신탁은 계약 때 맡긴 재산(최소 신탁 금액)에서 보수 0.2%를, 사후 재산을 물려줄 때 집행보수 0.3%를 뗀다. 농협은행은 대중형 신탁 기본보수로 0.3%를 책정했다. 국민은행의 유언대용신탁과 하나은행의 100세신탁은 가입 시점에 보수는 없지만 고객 사망 후 집행보수로 각각 신탁 잔액에서 0.1%와 1%를 떼간다.

신탁 자금은 통상 주식이나 주가연계채권(ELB), 상장지수펀드(ETF)나 정기예금 등에 투자된다. 재산을 굴려 수익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운용·관리 보수를 매기는 상품도 있으니 사전에 내용을 꼼꼼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원금보장 상품이 아니기 때문에 손실이 나면 사후 재산을 물려받을 수익자가 받을 신탁 잔액이 줄어든다는 점도 알아둬야 한다. 고객 사후에는 신탁계약이 끝나고, 사전에 지정한 귀속 권리자에게 재산이 이전된다. 다만 이때는 상속으로 간주돼 별도 세제 혜택 없이 일반적인 상속과 마찬가지로 10~50%의 상속세율이 적용된다.

유언대용신탁의 잠재 대상이라 할 수 있는 상속재산의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7년 5조8000억원에 그쳤던 국내 상속재산은 지난해 44조5000억원으로 7배 넘게 불었다. 증여재산 역시 같은 기간 15조4000억원에서 28조6000억원으로 86% 늘었다.

1인 가구가 늘고 있다는 것도 신탁 시장이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다. 지난해 1인 가구는 800만3000가구로 사상 처음 800만가구를 넘어섰다. 2050년엔 972만6000가구로 전체의 41%를 차지할 것으로 관측된다.



유언대용신탁

고객이 맡긴 현금·부동산·주식 등에 대해 생전에는 본인을, 사후에는 가족이나 제3자를 수익자로 지정해 운용하면서 안정적인 재산 승계를 돕는 상속 전용 상품. 사후에만 효력이 발휘되는 유언신탁과 구분된다.

[김정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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