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자산배분 전략가 “한국 주식 이제 접겠다”…쓴소리 한 이유는

정재원 기자(jeong.jaewon@mk.co.kr), 정유정 기자(utoori@mk.co.kr)

입력 : 2025.02.16 14:45:33 I 수정 : 2025.02.16 15:11:19
개리 에반스 BCA리서치 글로벌 수석
韓 증시 투자 리스크에
글로벌 전문가도 ‘국장 탈출’
트럼프 향해선 날선 비판


게리 에반스 BCA리서치 글로벌 수석 <사진=이충우 기자>
“한국 주식은 오랫동안 저평가 돼 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포트폴리오 일부를 한국 주식에 할당했죠. 그런데 지난 10년간 그랬듯, 앞으로도 한국 주식은 하락하거나 횡보할 것 같군요.”

글로벌 투자 리서치 기업 BCA리서치의 개리 에반스 글로벌 자산배분 수석 전략가가 한국 주식시장의 매력이 떨어지며, 투자 비중을 늘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국내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거운 인공지능(AI) 직접 투자나, 가상자산시장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특히 트럼프 밈코인에 대해서는 ‘사기(scam)’라고 단언했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개리 에반스는 한국 증시의 투자 리스크로 3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트럼프의 관세정책, 둘째는 삼성전자의 주가 부진, 셋째는 환율 불확실성이었다. 원화값에 대해서는 ‘원화 숏(short) 엔화 롱(long)’ 타이밍이라고까지 말했다.

대미수출 의존하는 韓... “트럼프 관세 치명적”
먼저 에반스 수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세계를 상대로 관세 전쟁에 나설 경우 대미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이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대미 수출 의존도는 인접국인 캐나다와 멕시코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의 다음 타겟으로 한국과 같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 국가를 지목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대미 수출량은 전년보다 10.4% 증가한 1278억달러로, 미국은 역대 가장 높은 대(對)한국 무역적자(557억달러)를 기록했다.

에반스는 “한국의 대미 무역은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7%를 차지한다”고 분석했다.

특히 그는 “관세 우려가 커진 시점에서 반도체 쏠림이 심한 한국 증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며 “한국 증시를 살펴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가총액이 전체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고 전했다.

지난 14일 기준 유가증권시장에서 삼성전자(13.3%)와 SK하이닉스(6%)는 시가총액 비중의 약 19%를 차지했다.

이 같이 수출 기업에 의존하는 한국 주식시장의 특성 상 관세전쟁 국면에서 불리하다는 에반스 수석의 평가다.

삼성전자 반등은 언제... “AI 전환 실패”
국내증시를 이끄는 삼성전자에 대해서도 에반스는 큰 우려를 표했다. 그는 “다른 경쟁업체와 비교했을 때, 삼성은 불행하게도 인공지능(AI) 칩 생산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글로벌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점유율은 지난 42%로, 경쟁사인 SK하이닉스(53%)보다 낮았다.

특히 5세대 HBM인 HBM3E 부문에서 SK하이닉스가 2023년부터 엔비디아에 납품을 시작한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아직 품질 테스트 단계에 있다.

반도체 파운드리 시장은 더 좋지 않다. 삼성전자의 글로벌 파운드리 점유율은 11%로, 1위 TSMC(64%)에게 50퍼센트 이상 뒤처진다.

에반스는 “2년 전에는 삼성이 따라잡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삼성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면서 삼성전자가 더욱 분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요인들로 삼성전자의 주가는 반등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수준까지 내려앉았다. 삼성전자 주가는 지난 14일 기준 5만6000원으로, 1년 전보다 23% 하락했다.

반면 이 기간 SK하이닉스(36%)와 TSMC(55.7%), 엔비디아(82%) 등 반도체 공급망의 큰 축을 담당하는 기업들은 주가가 크게 올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원화값까지 추락하자 삼성전자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은 가속됐다.

원화값이 떨어지면 외국인 투자자는 주식이 횡보해도 떨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외국인 투자자는 2조원어치의 삼성전자 주식을 순매도했다.

강달러든 약달러든 “원화는 숏 쳐라”
떨어진 원화값이 장기적으로 더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도쿄에서 일본증시 전략가로도 활동했던 에반스 수석은 “지금은 원화를 팔고(short), 엔화를 사야(long) 할 시점”이라며 주요 통화 대비 원화 약세가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일본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엔화 대비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는 것은 예정된 일”이라며 향후 펼쳐질 일본은행의 정책금리 인상 여부에 주목하라고 전했다.

지난달 일본은행은 정책금리를 0.5%로 올려, 17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높아졌다.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는 일본의 경기를 ‘디플레이션이 아닌, 인플레이션 상태’로 진단했고, 일본은행 내에선 금리를 내년 3월까지 1%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일본의 정책금리가 오르면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보다 매력적인 자산이 된다.

이에 글로벌 투자자들이 한국 원화를 매도하고 일본 엔화를 매수하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에반스 수석은 미국 달러에 대해서도 “향후 3~6개월은 강달러 기조가 유지될 것”이라며 “이 기간 원화 약세는 피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외환시장이 불안정한 현시점에서 미국 경제는 다른 국가보다 강력하다”며 “한국을 포함해 중국·독일 등에서 경제 성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은 “우리는 달러가 강세를 유지하기를 원한다”며 “강달러 정책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라고 6일 밝혔다. 미국 내 물가상승률 억제에 힘쓰고 있는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 강세를 통해 수입 물가를 줄이겠다는 계산이다.

다만, 에반스는 장기적 관점에서 달러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견해를 내놨다.

그는 “엔화 등 다른 주요 통화와 비교해봤을 때 달러는 현재 굉장히 고평가(overvalued)된 상태”라며 “3~6개월간의 강달러 시장 이후 5~8년간 약달러 시장이 찾아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무역수지 개선에 힘쓰는 트럼프 정부가 주요국들을 압박해 인위적인 약달러를 형성하는 ‘제2의 플라자합의’ 가능성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둔화하는 이상, 달러 가치가 떨어져도 원화가 수혜를 입지 못할 수 있다는 에반스 수석의 평가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전망한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 전망치는 1.6%로, 기존 2%에서 하향조정됐다.

AI·코인 열풍에는 “버블 심해”
개리 에반스는 최근 미국 증시를 이끄는 AI 투자 열풍에 대해선 ‘기대가 과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현재 미국 증시는 대폭락이 있었던 지난 2000년, 1929년 다음으로 가장 고평가된 시장”이라며 “AI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그만한 수익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예견했다.

에반스는 챗GPT와 같은 대화형 AI의 문제로 ‘네트워킹’의 부재를 꼽았다.

대화형 AI는 사용자와 AI의 폐쇄적 소통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달리 수익 창출의 여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는 “내가 챗GPT를 쓰고, 내 친구가 코파일럿(MS의 대화형 AI)을 쓰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밝혔다.

대신 빅테크 기업들의 AI 투자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전력인프라 등 유틸리티 주식의 전망은 좋다는 에반스 수석의 평가다.

그는 “딥시크 충격으로 인해 그래픽카드 수요가 줄 것이란 예측도 있었지만, 꾸준히 늘고 있는 전력 수요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원자 산업과 우라늄 관련주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또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는 헬스케어, 금융 기업도 주목하라고 전했다.

한편 가상자산시장을 두고는 ‘거품이 꼈다(bubbly)’는 표현을 사용했다. 개인적으로 일부 대형 코인에 투자하고 있다고 밝힌 에반스는 “지금 가상자산시장에 추가 자금을 투입하는 것은 좋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선거 유세 과정에서 달러 오피셜 트럼프·멜라니아 밈 코인을 발행해 시장의 신뢰도를 하락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밈 코인을 ‘사기(scam)’라고 단언하며 가상자산시장뿐 아니라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를 하락시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개리 에반스는 누구

개리 에반스는 BCA리서치의 수석 전략가로, 주요고객인 기관투자자와 최고투자책임자(CIO) 등에게 글로벌 자산 포트폴리오 구성법을 제시한다. 그는 2015년 BCA리서치에 합류했다.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아시아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개리 에반스는 영국의 금융 전문지 유로머니 매거진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

이후 홍콩상하이은행(HSBC)으로 이직해 16년간 도쿄·홍콩에서 글로벌 주식 전략가로 일한 그는 HSBC 리서치장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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