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차료 안 깎아주면 문 닫을래요”…MBK 무대포에 직원 수천명 벼랑 끝
김시균 기자(sigyun38@mk.co.kr), 박홍주 기자(hongju@mk.co.kr), 손동우 기자(aing@mk.co.kr), 홍순빈 기자(hong.soonbin@mk.co.kr)
입력 : 2025.05.14 21:03:30
입력 : 2025.05.14 21:03:30
홈플러스 17개 점포 계약 해지 통보
126곳 중 61곳 임차료 협상 대상에
해지 강행땐 임직원 절반 해고 도마위
대체 점포 없는 지역은 불안감 확산
“협의 없는 폐점은 직원 생존권 침해”
126곳 중 61곳 임차료 협상 대상에
해지 강행땐 임직원 절반 해고 도마위
대체 점포 없는 지역은 불안감 확산
“협의 없는 폐점은 직원 생존권 침해”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국내 2위 대형마트 홈플러스가 전체 점포의 절반이 넘는 임차 점포 정리에 나섰다. 법원 승인을 근거로 상당수 점포에 무더기 계약 해지를 통보하면서 대규모 구조조정에 돌입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홈플러스의 계약 해지가 현실화하면 최대 1만명에 육박하는 정리해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61개 임차 점포 중 임차료 조정 협상에 실패한 17개 점포에 대해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고 14일 밝혔다. 홈플러스는 전국 126개 점포 중 58개의 자체 매장(약 46%)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68개(약 54%)가 임차 점포다. 이 중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점포와 회생절차 개시 전 이미 폐점이 확정된 7개를 제외한 61개가 조정 협상 대상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4일 회생절차가 시작된 이후 일부 점포의 임차료가 과도해 경영 정상화에 어려움이 있다면서 4월 초부터 61개 임차 점포를 대상으로 임차료 조정 협상을 벌여왔다.
홈플러스 회생절차 개시명령 신청서에 따르면 홈플러스 리스 부채는 3조4088억원 규모다. 임차 점포 평균 임차료는 5억원, 연간 임차료는 4000억원에 달한다.

홈플러스 측은 “61개 점포 임대주들과 지속적으로 협상했지만 일부 임대주와는 기한 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며 “법원 승인을 받아 불가피하게 계약 해지를 결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달 15일 이내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나머지 임대주와도 협상하고 있다”며 “계약 이행 여부에 대한 답변 기한까지 답변하지 않으면 해지권을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밝혔다.
채무자회생법 제119조에 따르면 회생기업은 계약 상대방의 답변 유무와 상관없이 법원 승인을 통해 쌍무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이날 계약 해지 통보를 받은 17개 점포 외에도 추가로 계약 해지가 가능한 것이다. 최악의 경우 61개 모든 임차 점포에서 계약 해지를 강행한다면 전체 임직원 절반 가까이가 정리해고 대상에 오를 수 있다. 현재 홈플러스 전체 임직원 수는 약 1만9000명에 달한다.
대형마트 관계자는 “마트는 점포 수가 곧 매출이고 고용”이라며 “홈플러스가 점포를 수십 개 단위로 줄이면 최소 수천 명대에 달하는 직원을 해고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홈플러스는 이번 절차가 구조조정은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고용안정지원제도를 통해 계약이 해지된 점포 직원들은 인근 점포로 전환배치하고 격려금도 지급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홈플러스 직원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집 근처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중장년 여성이다. 주변 점포 간 거리가 먼 대형마트 특성상 전환배치를 통해 1~2시간 이상 통근이 멀어지면 퇴사가 불가피해진다.

홈플러스 삼척점, 부산정관점 등 대체 점포가 없는 지역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마트산업노동조합 홈플러스지부는 이날 성명문을 통해 “직원들과 협의 없이 폐점을 통보한 것은 생존권 침해”라며 “폐점 없는 회생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홈플러스의 이번 조치에 대해 업계에서는 “회생을 앞세운 청산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영업을 유지하며 채무를 조정하는 통상적인 회생절차와 달리 임차료가 높은 점포 폐점을 중심으로 점포 정리 작업이 핵심을 이루고 있어서다. “고용 유지와 매장 보전보다 수익률 확보에만 집중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홈플러스 매장을 보유한 부동산 업체들도 반발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홈플러스 인수 후 대규모 자산 유동화를 통해 부동산을 외부 법인에 매각하면서 매각 후 재임차(세일 앤드 리스백)를 해왔다. 매각 후 재임차 방식으로 홈플러스를 인수한 업체들은 홈플러스가 낸 임차료로 차입금 이자를 납부해왔는데, 임차료를 줄이면 이자를 납부하기가 어려워진다.
홈플러스 매장을 보유한 주요 임대인은 MDM자산운용(10개),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8개), DL그룹(5개), 이지스자산운용(4개), 유경PSG자산운용(3개), 삼성SRA자산운용(2개), KB부동산신탁(2개) 등이다. 이들 부동산 펀드와 리츠의 운용자산 규모는 2조원 수준으로 파악된다.
A업체 관계자는 “홈플러스 매각 가격에 향후 임대료 가치가 포함됐는데 갑자기 임대료를 내리는 건 맞지 않는다”며 “임대료의 35~50%를 깎아주지 않으면 임차계약을 해지한다는 것은 ‘협상’이 아니라 ‘협박’”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