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용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에도 계엄 후 추경 침묵할 수 없었어”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입력 : 2025.04.22 18:58:54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외교정책협회(FPA) 시상식에서 ‘FPA 메달’을 수여받은뒤 수상 소감을 밝히고 있는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사진제공=한국은행>


“비상계엄 후 내수위축·대외신인도 우려”
“시간이 옳고 그름 평가해줄 것”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비상계엄·탄핵 이후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 필요성을 강조한 것에 대해 국내 경제상황과 대외신인도 유지를 위해 “중앙은행 총재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중앙은행가는 정치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만, 경제학자는 때로는 정치인만큼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외교정책협회(FPA) 시상식에서 ‘FPA 메달’을 받은 뒤 수상소감으로 이렇게 밝혔다. 그는 “정치적 혼란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중앙은행 총재로서 제가 할 발언들이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다고 오해받을 우려에 대해 고민했다”며 “대통령 탄핵이 조기대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에서 재정 정책에 대한 양당의 견해가 상반되는 가운데 재정 부양책에 대해 언급할 경우 정치적 편향으로 비춰질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지난 2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인하한 후 15조원 이상의 추경 편성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에 대해 정치적으로 중립적일 의무가 있는 중앙은행 총재로서 재정정책에 직접적인 발언을 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특히 당시 정부여당과 야당이 각각 ‘추경 신중론’과 ‘적극 추경론’을 내세운만큼 정치적으로 읽힐만한 발언이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 총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앙은행 총재로서 침묵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이 가중시킨 내수 위축과 대외 신인도 하락 우려를 잠재워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연초 경제 성장률에 대한 시장 전망의 급격한 하락과 그로 인한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 금리인하와 함께 어느 정도의 추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또 추경안이 초당적으로 통과된다면, 한국의 경제 정책만큼은 정치적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운영된다는 메시지를 국제 투자자들에게 줄수 있어 국가신용 등급을 지키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앙은행가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하지만, 케인스가 그의 스승 마셜을 가리켜 말했듯이 경제학자는 때로는 정치인만큼 현실적일 필요가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의 장으로서 정책 방향 제시에 대한 평가는 시간에 맡기겠다고 했다. 그는 “한은의 비선출 권력이라는 특성에 힘입어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균형 잡히고 치우치지 않은 평가를 내리고, 객관적 정책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며 “시간이 제 발언의 옳고 그름을 평가해 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날 수상소감엔 미국의 상호관세 조치 영향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이 총재는 “수출 중심의 한국 경제는 관세 인상 등 대외 환경 변화에 특히 취약하다”면서도 “복잡한 지정학적 긴장, 무역 갈등 속에서도 굳건한 한미 관계는 한 단계 더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FPA 메달은 국제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책임감 있는 국제적 지도력을 보여준 인물에게 수여하는 권위 있는 상이다. 장클로드 트리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폴 볼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 의장,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등이 수상했고, 이 총재는 이날 마티아스 콜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과 공동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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