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볼지도] 이상기후에 몸살 앓는 밀양 얼음골 사과

올해 유례없는 냉해·우박으로 농가 초토화…내년 농사도 피해 우려2070년 강원 일부서만 재배 예측…기후변화 견디는 품종 개발 활발
이준영

입력 : 2025.06.21 07:11:00
[※ 편집자 주 = 기후 온난화는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고 있습니다.

농산물과 수산물 지도가 변하고 있고, 해수면 상승으로 해수욕장은 문 닫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역대급 장마와 가뭄이 반복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하기도 합니다.

'꽃 없는 꽃 축제', '얼음 없는 얼음 축제'라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생겨납니다.

이대로면 지금은 당연시하고 있는 것들이 미래에는 사라져 못 볼지도 모릅니다.

연합뉴스는 기후변화로 인한 격변의 현장을 최일선에서 살펴보고, 극복을 모색하는 기획 기사를 매주 송고합니다.]

우박 맞아 손상된 사과 열매와 잎
[촬영 이준영]

(밀양=연합뉴스) 이준영 기자 = 삼복더위에도 얼음이 어는 신비한 곳이라 해서 이름 붙여진 밀양 얼음골.

경남 밀양시 산내면 중턱에 위치한 이곳은 높은 산 사면과 수직에 가까운 절벽이 삼면을 둘러싼 계곡으로, 그 깊이가 깊고 큰 데다 너덜지대라는 지형적 특징으로 저장된 냉기가 순환하면서 시원함이 유지된다.

여름철이면 더위를 피하려는 피서객들이 가장 먼저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이 같은 지형적 특징으로 전국적 인기를 얻게 된 것이 또 있다.

바로 밀양 얼음골 사과다.

사과는 낮에는 일조량이 많고 밤에는 기온이 떨어지는 기후에다 바람이 잘 통하는 경사지에서 특히 더 잘 자라고 맛이 좋다.

얼음골은 낮 동안 밀양 햇볕을 쬐다가 해가 지면 얼음골 냉기를 머금어 그 일교차가 단맛을 내 '꿀사과'로 불린다.

하지만 몇 년 전부터 농민들 표정은 그리 밝지 않다.

잦은 이상기후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사과들이 늘면서 농가 피해가 커진 탓이다.

자연 앞에 속수무책인 농민들은 갈수록 재배하기 힘들어지는 상황에 한숨만 커진다.

밀양 얼음골 사과 농가에 내린 우박
[독자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냉해에 우박까지 덮친 사과 농가 '울상' 지난 11일 오전에 찾은 밀양시 산내면 오치마을 사과 재배농가.

이제 조금씩 열매를 틔운 사과들 대부분이 움푹 패거나 찢겨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수준이었다.

사과나무 잎은 벌레가 갉아 먹은 듯 떨어져 나가는 등 과수원 전체가 폭격을 맞은 듯했다.

양분 전환기로 접어든 예년 이맘때쯤이면 잎이 충분한 광합성을 하면서 과실을 더 크고 맛있게 할 시기이지만, 잎 대부분이 소실돼 올해 농사는 사실상 끝났다.

더 큰 문제는 사과나무 가지 껍질 내부까지 썩어버려 내년 농사도 피해가 우려되는 점이다.

이날 사과나무 가지를 여러 겹 벗겨내자 온몸에 멍이 든 듯 썩은 자국이 곳곳에 드러났다.

30년 넘게 사과 농사를 지은 박상현(69) 씨는 "잎이라도 살아 있으면 내년 농사는 어떻게든 해보겠는데, 잎이 다 썩어 광합성 작용을 못 하니까 뿌리 영양분을 저장하지 못해 사과나무 역할이 마비됐다고 보면 된다"며 "잎이 양분을 저장해 사과에 전달하고 남는 건 뿌리에 저장도 하지만, 잎이 없으니 그 작용을 못 해 내년에 꽃을 피울 수 없으니 농사가 결딴난 셈"이라고 말했다.

이곳은 지난달 29일 오후 국지성 폭우와 지름 약 1㎝ 크기 우박이 약 40분간 쏟아져 산내면 1천300여 농가, 920㏊ 규모의 사과 과수원이 초토화됐다.

특히 피해 면적(787㏊) 대부분이 오치마을에 집중돼 농민들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는 "올봄에 냉해가 발생해 큰일 나겠다 싶었는데 이번에는 우박이 이렇게 크고 오래 내리는 바람에 올겨울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막막하다"며 "수액처럼 좋은 약이라도 맞으면 나은데 나무가 한두 그루도 아니고 보급도 잘 안되는 데다 보험도 제 보상을 못 받으니 죽을 맛이다"고 말했다.



우박 맞아 내부까지 멍이 든 사과나무 줄기
[촬영 이준영]

◇ 이상기후에 잦아지는 농가 재난 피해 사과 농가 재해는 올해뿐만이 아니다.

2023년과 지난해에는 냉해와 폭우, 폭염 등으로 사과가 병 들고 아예 꽃이 피지도 못한 가지들이 많았다.

특히 2023년에는 이상기후에 탄저병 피해까지 겹쳐 생산량이 2022년(2만4천549t)보다 31.8% 감소한 1만6천730t에 그쳤다.

이에 1998년부터 열린 지역 대표 축제 '밀양 얼음골 사과 축제'에서 기존 25개이던 사과 판매부스가 2023년에는 16개로 줄었다.

지난해에는 이상기후에 착과율이 떨어지고 과실 껍질이 터지는 '열과' 피해가 이어져 축제 이름을 아예 '밀양 얼음골 사과 소비 촉진 행사'로 바꿨다.

올해도 이미 냉해와 우박 피해를 본 데다 아직 오지 않은 폭염과 폭우 피해 우려까지 더해지면 예년 같은 사과 축제는 더 이상 보기 힘들 수도 있다.

김건수 밀양얼음골사과발전협의회장은 "우박 피해가 심각해 올해도 지난해처럼 소비 촉진 행사로 가야 할 것 같다"며 "농민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데 날씨는 매년 더 예측이 어려워지고 농사를 방해하니 다들 힘들어해서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고 말했다.

농촌진흥청이 2022년 최신 기후변화 시나리오를 반영해 공개한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에 따르면 사과는 앞으로 계속해서 재배 적지와 재배 가능지가 급격히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자료에 따르면 과거 30년(1981∼2010년)간 재배 적지와 재배 가능지를 합친 '총재배가능지'는 전국에 672만4천㏊였지만, 2050년에는 83만2천㏊로 감소하고 2070년에는 10만6천㏊까지 떨어져 강원도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측됐다.

사과 재배지 변동 예측지도
[농촌진흥청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 기후 변화에 맞는 품종 개발 안간힘 매년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늘면서 농민과 농촌진흥청도 대책 마련을 위해 바빠졌다.

특히 농촌진흥청은 온난화로 농작기가 빨라지면서 고온기에도 사과 착색이 잘 되는 품종을 개발해 농가에 보급하고 나섰다.

사과는 나무마다 가지와 잎이 많아 사과 윗부분은 착색이 잘 되지만 아랫부분은 덜 돼 반사 필름을 밑에 대고 착색을 유도해 오고 있다.

이 과정은 비용과 노력이 많이 들어 농민들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를 돕기 위해 탄생한 품종들이 '아리수'와 '이지플' 등이다.

이들 품종은 착색이 잘 돼 사과를 더 맛깔스럽게 하고 실제로 맛도 좋은 편이다.

붉은색 사과와 달리 껍질이 노란 '골든볼'은 착색이 필요 없어 기후변화 대응 품종으로 알맞다.

밀양에서는 아직 재배하는 곳이 없지만 경북 군위군에서는 전략적으로 이 품종을 재배해 면적을 늘리고 있다.

품종 개발 외에 우박 등 재난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도 농촌진흥청을 중심으로 농민들이 힘쓴다.

권다경 국립원예특작과학원 사과품종개발실장은 "봄철 저온 피해를 막기 위해 연소법으로 온도를 높인다든지 전동 모터를 가동해 상부에서 바람을 송풍시키는 등의 기술을 농가에 보급해오고 있다"며 "이상기후에 적응할 수 있는 품종을 육성하고 재배법을 개발해 사과 농가를 더 돕겠다"고 말했다.



사과 '골든볼' 품종
[농촌진흥청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ljy@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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