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못 먹을지도] ⑧ 수확 앞둔 낟알에서 싹터버리는 메밀
올봄 제주 메밀 재배 면적 중 21.1%에서 수발아 피해"씨앗 맺힌 시기 고온다습하면 발생 가능성 커져"종잡을 수 없는 날씨로 파종 시기 늦춰지면서 확산
백나용
입력 : 2024.11.10 06:00:08
입력 : 2024.11.10 06:00:08
[※ 편집자 주 =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를 느끼는 데는 둔감합니다.
언제든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밥상에는 뚜렷한 변화가 왔습니다.
어릴 적 식탁에서 흔히 보이던 단골 국과 반찬이 어느새 귀한 먹거리가 됐습니다.밥상에 찾아온 변화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짚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기사를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는 국내 메밀 생산량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최대 주산지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잘 모른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부터 떠올리기 쉬운 탓이다.
메밀은 제주 농경의 신 '자청비'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예부터 제주인의 삶과 밀접한 곡물이었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도 잘 자랄 만큼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 데다 생육기간도 75일 내외로 짧고, 이모작도 가능해 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이 때문에 제주에는 메밀을 주·부재료로 한 향토음식도 많다.
2019년 제주도 농업기술원이 발간한 책자 '제라진(최고를 뜻하는 제주어) 제주메밀음식'에 소개된 메밀로 만드는 음식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
가장 널리 알려진 메밀 향토음식 중 하나는 '빙떡'이다.
메밀가루를 물에 개어 만든 반죽을 팬에 얇게 부쳐 만든 전에 소금 등으로 간을 한 무나물 볶음을 넣어 말면 완성된다.
빙떡은 '빙빙' 돌려 전을 부쳐 빙떡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맛이 심심한 터라 짭짤한 옥돔구이와 먹으면 찰떡궁합이다.
꿩 육수에 메밀가루로 반죽한 면과 무채를 넣어 끓인 꿩메밀칼국수는 제주의 맛이 담긴 별미다.
최근 방영된 MBN 예능프로그램 '전현무계획2'에 등장한 접착뼈국이나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맛봤을 고사리육개장 국물을 입에 착착 붙게 만드는 비법도 '메밀가루'에 있다.
고깃국에 들어가는 메밀가루는 느끼한 맛을 잡아줄뿐더러 국물을 진하게 우린 듯한 식감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날씨 탓에 메밀 파종 시기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제주도에 따르면 올봄 제주지역 전체 메밀 재배 면적 1천145㏊ 중 242㏊(21.1%)에 '수발아'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 중 196.6㏊에 대한 피해 지원 신청이 접수됐다.
수발아는 수확 전 메밀에 맺힌 종실(씨앗)에서 싹이 트는 현상으로 수발아 피해를 본 메밀은 식용은 물론, 종자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
따뜻할 때 비가 자주 오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농민과 전문가는 이러한 수발아 피해가 최근 2∼3년 전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에는 제주지역 봄 메밀 재배 면적 900㏊ 가운데 28%(251.2㏊)에서 수발아 피해가 확인됐다.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38년째 메밀을 재배하고 있는 고성효씨는 "지난해 인근 다른 농가 메밀밭에서 수발아 피해가 발생하더니 올해는 우리 밭도 피해 가지 못했다"며 "결국 재배 면적 중 10% 수준인 0.5㏊를 수확하지 못한 채 갈아엎었다"고 말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이성문 농업연구사는 "수발아 현상은 예부터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발생 규모가 커졌다"며 "늦어지는 봄 메밀 파종 시기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봄 메밀은 보통 3월 말부터 4월 초께 파종해야 5월 중순께는 종실이 맺혀 장마 전에 수확할 수 있다.
이 농업연구사는 "최근 들어 4월에도 서리가 내리면서 파종을 늦춘 농가가 많았고, 메밀 종실이 맺히는 시기도 5월 말∼6월 말로 늦어졌다"며 "문제는 메밀 종실이 물에 젖은 상태에서 하루라도 기온이 25도 이상이 되면 수발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제주는 지난 5월 중순부터 낮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높은 22∼26도까지 올랐다.
6월 들어서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보였으며, 6월 18∼20일은 일 최고기온이 30도 넘게 올랐다.
게다가 5월 한 달에만 408.1㎜의 비가 쏟아지면서 5월 기준 제주도 역대 1위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
6월 강수량도 432.9㎜로 역대 6월 강수량 2위를 기록했다.
봄 메밀뿐 아니라 가을 메밀도 예측이 어려운 날씨 탓에 파종 시기 조절이 어려워졌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강지호 농촌지도사는 "메밀은 충매화로 벌이나 파리 등 곤충이 수정시켜줘야 종실을 맺는다"며 "파종 후에 한 달이 지나면 절반가량 꽃이 핀다.
8월 말∼9월 중순에는 파종을 마쳐야만 곤충이 활동할 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농촌지도사는 "하지만 최근 여름철 강하고 많은 비가 자주 내리면서 메밀 파종이 늦어지거나, 재파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메밀은 특히나 토양에 물이 많으면 재배가 어려운 작물"이라며 "하지만 파종 시기를 놓치면 곤충이 활동을 안 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 기후로 전통적으로 생산해 온 작물을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물에 젖은 메밀을 말리는 건조제 등록이 추진되고 더위에 강한 품종 개발도 이뤄지고 있지만, 메밀이 기상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재배를 권장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dragon.me@yna.co.kr(끝)
지구가 점점 뜨거워지면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우리 삶에 가져온 변화를 느끼는 데는 둔감합니다.
언제든지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미 밥상에는 뚜렷한 변화가 왔습니다.
어릴 적 식탁에서 흔히 보이던 단골 국과 반찬이 어느새 귀한 먹거리가 됐습니다.밥상에 찾아온 변화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짚어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는 기사를 송고합니다.]
(제주=연합뉴스) 백나용 기자 = 제주는 국내 메밀 생산량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최대 주산지이지만, 많은 사람이 이를 잘 모른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부터 떠올리기 쉬운 탓이다.
메밀은 제주 농경의 신 '자청비' 신화에 등장할 정도로 예부터 제주인의 삶과 밀접한 곡물이었다.
척박한 제주 땅에서도 잘 자랄 만큼 강인한 생존력을 지닌 데다 생육기간도 75일 내외로 짧고, 이모작도 가능해 벼농사가 어려웠던 제주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식량 자원이었다.
이 때문에 제주에는 메밀을 주·부재료로 한 향토음식도 많다.
2019년 제주도 농업기술원이 발간한 책자 '제라진(최고를 뜻하는 제주어) 제주메밀음식'에 소개된 메밀로 만드는 음식만 해도 100가지가 넘는다.
가장 널리 알려진 메밀 향토음식 중 하나는 '빙떡'이다.
메밀가루를 물에 개어 만든 반죽을 팬에 얇게 부쳐 만든 전에 소금 등으로 간을 한 무나물 볶음을 넣어 말면 완성된다.
빙떡은 '빙빙' 돌려 전을 부쳐 빙떡이란 이름이 붙은 것으로 전해진다.
맛이 심심한 터라 짭짤한 옥돔구이와 먹으면 찰떡궁합이다.
꿩 육수에 메밀가루로 반죽한 면과 무채를 넣어 끓인 꿩메밀칼국수는 제주의 맛이 담긴 별미다.
최근 방영된 MBN 예능프로그램 '전현무계획2'에 등장한 접착뼈국이나 제주를 찾은 관광객이라면 한 번쯤 맛봤을 고사리육개장 국물을 입에 착착 붙게 만드는 비법도 '메밀가루'에 있다.
고깃국에 들어가는 메밀가루는 느끼한 맛을 잡아줄뿐더러 국물을 진하게 우린 듯한 식감까지 느끼게 한다.
하지만 종잡을 수 없는 날씨 탓에 메밀 파종 시기 조절이 어려워지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0일 제주도에 따르면 올봄 제주지역 전체 메밀 재배 면적 1천145㏊ 중 242㏊(21.1%)에 '수발아' 피해가 발생했으며 이 중 196.6㏊에 대한 피해 지원 신청이 접수됐다.
수발아는 수확 전 메밀에 맺힌 종실(씨앗)에서 싹이 트는 현상으로 수발아 피해를 본 메밀은 식용은 물론, 종자용으로도 사용할 수 없다.
따뜻할 때 비가 자주 오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농민과 전문가는 이러한 수발아 피해가 최근 2∼3년 전부터 눈에 띄게 늘었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에는 제주지역 봄 메밀 재배 면적 900㏊ 가운데 28%(251.2㏊)에서 수발아 피해가 확인됐다.
서귀포시 안덕면에서 38년째 메밀을 재배하고 있는 고성효씨는 "지난해 인근 다른 농가 메밀밭에서 수발아 피해가 발생하더니 올해는 우리 밭도 피해 가지 못했다"며 "결국 재배 면적 중 10% 수준인 0.5㏊를 수확하지 못한 채 갈아엎었다"고 말했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이성문 농업연구사는 "수발아 현상은 예부터 있었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발생 규모가 커졌다"며 "늦어지는 봄 메밀 파종 시기를 원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봄 메밀은 보통 3월 말부터 4월 초께 파종해야 5월 중순께는 종실이 맺혀 장마 전에 수확할 수 있다.
이 농업연구사는 "최근 들어 4월에도 서리가 내리면서 파종을 늦춘 농가가 많았고, 메밀 종실이 맺히는 시기도 5월 말∼6월 말로 늦어졌다"며 "문제는 메밀 종실이 물에 젖은 상태에서 하루라도 기온이 25도 이상이 되면 수발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는 조건이 충족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제주는 지난 5월 중순부터 낮 최고기온이 평년보다 높은 22∼26도까지 올랐다.
6월 들어서도 평년보다 높은 기온을 보였으며, 6월 18∼20일은 일 최고기온이 30도 넘게 올랐다.
게다가 5월 한 달에만 408.1㎜의 비가 쏟아지면서 5월 기준 제주도 역대 1위 강수량 기록을 경신했다.
6월 강수량도 432.9㎜로 역대 6월 강수량 2위를 기록했다.
봄 메밀뿐 아니라 가을 메밀도 예측이 어려운 날씨 탓에 파종 시기 조절이 어려워졌다.
제주도 농업기술원 강지호 농촌지도사는 "메밀은 충매화로 벌이나 파리 등 곤충이 수정시켜줘야 종실을 맺는다"며 "파종 후에 한 달이 지나면 절반가량 꽃이 핀다.
8월 말∼9월 중순에는 파종을 마쳐야만 곤충이 활동할 때 꽃을 피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강 농촌지도사는 "하지만 최근 여름철 강하고 많은 비가 자주 내리면서 메밀 파종이 늦어지거나, 재파종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메밀은 특히나 토양에 물이 많으면 재배가 어려운 작물"이라며 "하지만 파종 시기를 놓치면 곤충이 활동을 안 해 생산량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상 기후로 전통적으로 생산해 온 작물을 키우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물에 젖은 메밀을 말리는 건조제 등록이 추진되고 더위에 강한 품종 개발도 이뤄지고 있지만, 메밀이 기상을 이겨내지 못한다면 재배를 권장하지 못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dragon.m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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