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이 희망이다] 크로스컨트리 '국대'의 변신…이젠 바리스타·플로리스트

"선수 땐 올림픽 금메달이 꿈이었다면, 지금은 소소한 행복이 새로운 꿈"
김준범

입력 : 2024.11.24 07:01:01
[편집자 주 = 지방에 터를 잡고 소중한 꿈을 일구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젊음과 패기, 열정으로 도전에 나서는 젊은이들입니다.

자신들의 고향에서, 때로는 인연이 없었던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삼아 새로운 희망을 쓰고 있습니다.

이들 청년의 존재는 인구절벽으로 소멸 위기에 처한 지역사회에도 큰 힘이 됩니다.

연합뉴스는 지방에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가는 청년들의 도전과 꿈을 매주 한 차례씩 소개합니다.]

꽃 다듬는 박성범씨
[촬영 김준범]

(대전=연합뉴스) 김준범 기자 = "운동선수 시절 항상 정상을 바라보며 달려갔습니다.

인생 2막에서도 최고가 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지난 21일 대전 서구 만년동 꽃집 '오로라아트플라워'에서 만난 박성범(35) 씨는 향기 가득한 꽃을 손질하며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구릿빛 피부에 근육질 몸을 가진 그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트리 장식을 찾는 손님들을 웃음으로 맞이했다.

박 씨는 "꽃을 보면 기분이 좋아 미소가 저절로 생긴다.

이제 일에 많이 익숙해졌다는 신호가 아닐까 싶다"며 밝게 웃었다.

2021년 선수 시절
[박성범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박 씨는 어린 시절 운동을 시작해 선수라면 누구나 꿈꿨을 '국가대표 출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 12살 때 썰매와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접한 크로스컨트리 매력에 푹 빠져 선수 생활을 시작했고, 이듬해 중학교 진학 후 본격적으로 대회에 참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중학교 3학년 땐 전국체전에서 2위를 기록하며 '유망주' 타이틀을 얻었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도 각종 대회에서 꾸준히 상위권에 들며 좋은 성적을 유지했고, 19살부터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말 그대로 '국대'가 된 것이다.

이후 27살 때 열린 2016 전국 동계체육대회에 참가해 4관왕을 달성하며 국내 최강자 자리에 올랐다.

내친김에 2017년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동메달을 따내며 화려한 전성기를 보냈다.

박 씨는 "20대 중후반 몸 상태가 정말 좋아 성적이 잘 나왔던 것 같다"라며 "당시에는 국가대표 주장까지 맡아 책임감을 갖고 대회에 임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그의 선수 생활에도 전방십자인대 파열 부상으로 인해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삿포로 동계 아시안게임 직후 크게 다쳐 급하게 수술대에 올랐지만, 무리한 재활과 운동으로 연골까지 문제가 생겨 대회 성적은 점차 내리막길로 향했다.

그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부상이 갑작스럽게 찾아왔다"며 "평창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한 아쉬움이 지금도 남아 있다"라고 말했다.

부상은 그로부터 4년 후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까지 가로막았다.

박 씨는 32살이던 2022년 결단했다.

20년간의 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선수 은퇴식
[박성범씨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운동을 그만둘 때 실업팀 코치직 제안이 들어왔지만, 박 씨는 아내와 함께 새로운 삶에 도전하려고 대전 정착을 결정했다.

스키를 타고 설원을 누비던 그는 이제 대전에서 바리스타와 플로리스트라는 '투잡러'로 변신해 인생 2막에 도전하고 있다.

그는 아내와 대전 서구 도안동 카페 운영에 뛰어들며 바리스타로서 삶을 시작했다.

그러고선 작년엔 플로리스트가 됐다.

박 씨는 "꽃집을 운영하는 장모님 권유로 꽃 시장에 몸을 담게 됐다"라면서 "조금씩 배워가며 내 길을 개척 중"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국빈 방한한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 행사에 조경 담당으로 참여하는 등 플로리스트로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카페 사업도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에 2호점을 내며 규모를 키워가는 중이다.

그는 크로스컨트리에 걸었던 것처럼 이젠 바리스타와 플로리스트로서 성공하는 인생 2막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카페에서 근무 중인 박성범씨
[박성범씨 제공.재판매 및 DB그지]

퇴근 후엔 플로리스트로서 화훼 장식기능사와 조경 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창 시절 놓았던 연필을 다시 잡았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면서 어려움이 있지만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한 투자는 필요하다고 스스로 응원하고 있다.

그는 "카페 일과 관련해서는 커피를 비롯해 샌드위치, 베이글, 바게트 등 베이커리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라며 "육가공과 관련한 공부를 계속해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심을 내비쳤다.

그러면서 "선수 시절에는 올림픽에 나가 금메달을 따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소소한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새로운 꿈이 됐다"라며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조금씩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항상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psykims@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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