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흙수저, 이번 생은 망했어요"…'쉬었음' 청년 50만명 최대

지혜진 기자(ji.hyejin@mk.co.kr), 이지안 기자(cup@mk.co.kr)

입력 : 2025.03.12 17:51:32
경력직 선호·수시채용 늘자
갈곳 잃은 청년들 구직 포기
무기력·상대적 박탈감 시달려
청년고용 줄고 실업률 늘어
"질 높은 일자리 많이 늘려야"








#김유진 씨(28)는 3년 전 수도권 4년제 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지만 아직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대학생 시절 휴학을 하고 2년간 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했지만 합격은 요원했다. 공무원시험 지원자가 줄고 있다는데도 경쟁률은 20~30대1로 높았다. 들인 돈과 시간을 뒤로 하고 김씨는 공무원시험준비를 그만뒀다.

김씨는 고등학생 시절 가고 싶은 학과가 딱히 없었던 터라 경영학과를 골랐다. 잘리지 않는 '철밥통'에 연금이 꼬박꼬박 나오는 직업이 최고라는 어른들 말을 따라 매번 장래희망란에는 기계적으로 '공무원'을 적었다.

대학에 복학한 후 새롭게 취업을 준비해 보려 했지만 이미 늦은 것 같다는 무기력함에 다른 일을 시작할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불안감은 커졌지만, 취업에 대한 의지를 키울 만큼 동력이 되지는 않았다.

#이지훈 씨(30)는 번듯한 직장에 취업해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게 인생의 목표다. 그래서 대학 시절 학회나 동아리 활동은 물론 인턴·공모전 등 대외활동에 참여하며 나름대로 스펙을 쌓았다. 하지만 평범할 것 같던 그의 목표는 시작부터 벅차기만 했다. 반년에 한 번씩 열리던 기업 정기 채용은 경기가 어려워지며 1년에 한 번으로 줄었고, 이제는 빈자리가 생길 때 수시로 사람을 뽑지만 경력직이 우선이다.

불합격의 고배를 드는 날마다 이씨는 무력감과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 이씨가 보기에 몇몇 친구는 '부모 덕'으로 자기 능력에 비해 월등한 스펙을 쌓고 수월하게 취업했다. 정치인이 자신의 권력으로 자녀의 학교 진학과 취업을 도왔다는 뉴스도 눈에 들어왔다.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기는 싫은데 괜찮은 직장은 왜 이렇게 없는지, 우리 부모는 왜 금수저가 아닌지. 비집고 올라오는 원망과 분노를 참다못해 이씨는 결국 구직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지난달 구직활동을 하지 않고 그냥 쉬는 청년이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경력직 선호와 수시 채용 증가로 청년 고용률은 4년 만에 최대폭으로 감소했다. 낮은 질의 일자리와 좁아진 취업 문턱이 대한민국 청년을 좌절하게 하고, 목표를 성취하지 못한 이들이 결국 무기력의 덫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2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2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15~29세 '쉬었음' 인구는 50만4000명으로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03년 이후 처음으로 50만명을 돌파했다. '쉬었음' 인구는 일을 하거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채 그냥 쉬고 있는 상태를 뜻한다.

공미숙 통계청 사회통계국장은 "경력직 채용 선호도가 증가하고 수시 채용이 늘어나는 경향이 청년층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년층의 고용 절벽은 고용률과 실업률 지표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2월 15~29세 고용률은 44.3%로 전년 동월 대비 1.7%포인트 하락해 2021년 1월(-2.9%포인트)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을 기록했다.

올 2월 15~29세 실업률은 7%로 1년 전보다 0.5%포인트 상승했다. 2월 기준으로는 2021년(10.1%)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구직 의사가 없는 청년을 배제하고도 실업률이 상승했다는 것은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청년 채용시장이 빠르게 위축되며 고용난이 가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부는 민간 부문 일자리 창출과 취약계층 고용안정을 위한 노력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다. 특히 청년 고용 문제와 관련해 이달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청년고용 올케어 플랫폼'을 중심으로 다각도의 지원책을 모색하고 있다. 청년 고용 올케어 플랫폼 사업은 대학일자리플러스센터에서 미취업 졸업생을 발굴해 특화된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선제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청년들의 노동시장 진입이 점차 늦어지는 상황에서 기존 대학 취업 지원 서비스가 재학생 위주로 운영돼 졸업생이 참여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취업 지원보다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성희 고려대 교수는 "임금과 고용 안정성이 완벽히 보장되지 않더라도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며 정부의 유인책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고용공시제를 적극 활용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지혜진 기자 / 이지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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