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국채 대란에 월가 “떨어지는 칼 잡지 말라” 채권왕의 투자 조언은?

김인오 기자(mery@mk.co.kr)

입력 : 2023.10.04 16:25:58 I 수정 : 2023.10.04 16:43:51
재무부 국채공급 확대·금리 리스크
하원의장 해임에 셧다운 불안 가중
블랙록 주가도 끌어내린 채권 시장

2016년 ‘트럼프 발작’ 재현 불안 속
채권왕 “단기 국채·정크본드 주목”


‘월가의 채권왕’ 제프리 건들라흐 /사진=게티이미지
미국 10년 만기 국채를 비롯해 주요 국채 금리가 연일 급등한 탓에 국내외 투자 심리가 흔들리는 가운데 월가에서는 중·장기 국채 대신 만기가 1년 미만인 단기 국채를 눈여겨보라는 조언이 나왔다.

최근 한 달새 한국 투자자들이 미국 장기 국채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집중 매수해왔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한 의견이다. 채권 수익률이 올랐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이 떨어졌음을 의미한다.

‘월가의 채권왕’으로 통하는 제프리 건들라흐 더블라인 캐피털 최고경영자(CEO)는 3일 뉴욕에서 열린 투자 행사에 참석해 “지금은 만기가 1년 이내인 단기 국채를 매수해두고 한 숨 돌릴 시기”라면서 “채권 포트폴리오를 통해 연 5% 수익을 내려면 정크 본드에도 투자할 만 하며 다만 이런 경우 신중하게 선정해야 한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미국 연방정부 부채 평균 이자율이 현재 3%이지만 앞으로 6% 혹은 그 이상으로도 오를 수 있다”면서도 “다만 올해 채권 시장이 겪는 고통은 지난 2016년의 지옥에 비하면 훨씬 행복한 상태이며 수익을 낼 기회는 있다”고 언급했다.

건들라흐 CEO가 단기 국채에 우호적인 발언을 한 배경은 미국 재무부가 지난 8월부터 장기 국채를 중심으로 채권 발행을 늘리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이 있다.

앞서 7월 말 재무부는 재정 지출을 위해 2~30년 만기 국채 입찰 규모를 늘림으로써 총 1조달러를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입찰 확대는 2년 만 반에 처음이다. 국채 공급이 늘어나면 가격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국채 수익률이 오르게 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 처음으로 범죄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 8월 공개한 자신의 ‘머그샷’/출처=트럼프 X 계정
지난 2016년은 채권시장이 ‘트럼프 발작(Trump tantrum)’을 일으키던 때다.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을 확정한 2016년 11월 8일을 전후해 당선 직전 연 1.85% 이던 10년 만기 미국 국채 수익률은 12월 중순 연 2.61% 까지 뛰어 한달 여 만에 76베이시스포인트(=0.76%포인트) 뛴 바 있다. 당시 급등 배경은 1조 달러 규모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등 트럼프가 공약한 대규모 재정 지출이 국채 가격을 끌어내릴 것이라는 시장 예상이었다.

이밖에 건들라흐 CEO가 언급한 정크 본드란 회사 신용이 투자 부적격 등급인 비우량 기업이 발행하는 고위험·고수익 채권을 말한다.

정크 본드 중에서도 비교적 투자 수요가 몰리는 경우는 이른 바 ‘뜨는 별(라이징 스타)’이나 ‘타락 천사’ 다. 뜨는 별은 현재 투자 부적격이지만 투자 등급으로 상향될 가능성이 높은 성장기업을 주로 가리키고 타락천사는 투자 등급에서 투자 부적격 등급으로 강등된 기업을 말한다. 해당 회사채를 보유한 투자자들로서는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 수익뿐 아니라 추후 기업 신용등급 상향으로 채권 가격이 상승하면 시세 차익을 기대할 수 있다.

미국 국채 ETF
지난 달 5일 이후 최근 한 달 새 TMF 시세 흐름
채권 시장이 들썩인 가운데 한국 투자자들은 저점매수를 염두에 두고 최근 한 달 동안 국채 관련 ETF 를 앞다퉈 사들였다.

4일 예탁결제원 집계를 보면 지난 달 5일 이후 한 달 간 국내 투자자들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 상위 종목 중 4위가 디렉시온 데일리 20+년 미 국채 불 3X ETF (TMF), 6위는 아이셰어스 20+년 미 국채 엔화 헷지형 ETF, 20위는 아이셰어스 1~3년 미 국채 ETF(SHY), 21위는 아이셰어스 20+년 미 국채 ETF(TLT)다. 엔화 헷지형을 제외하고는 셋 모두 뉴욕증시에서 거래된다.

이 중 TLT 는 만기가 20년 이상인 미국 장기 국채 가격 상승에 베팅하는 ETF 이고 TMF 는 여기에서 나아가 3배 레버리지로 베팅하는 고위험·고수익 상품이다. 최근 한 달 새 TLT 시세는 9.05% , TMF 는 26% 떨어진 상태다. 반등을 기대한 저점 매수에도 불구하고 국채 가격이 연일 급락한 탓에 관련 ETF 투자 손실도 늘어난 셈이다.

최근 한 달 새 블랙록 주가 흐름
미국 국채시장이 약세를 이어가면서 블랙록을 비롯한 글로벌 대형 자산운용사들 주가도 덩달아 낙폭을 키우는 모양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가격이 2007년 8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진 3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는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BLK↓2.73%)과 찰스슈왑(SCHW↓4.20%) 등 주요 자산운용사를 비롯해 부유층 대상 투자 자문서비스에 주력해온 모건스탠리(MS↓2.97%)와 스티펠 파이낸셜(SF↓4.23%) 주식 매도세가 두드러졌다.

블랙록의 경우 로버트 카피토 공동창업자 겸 사장이 지난 7월 실적 발표 자리에서 “채권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것이며 이는 채권 시장에서 한 세대에 한 번 오는 기회”라면서 “금리가 정점에 달했다는 판단 하에 약 7조달러가 채권 시장에 흘러들 채비를 하고 있다”면서 채권 반등 기대감을 표한 바 있지만 상황이 정 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일례로 국제 유가가 꾸준히 올라 ‘배럴 당 100달러 시대’를 내다보는 등 인플레이션 압박이 수그러들지 않는 데다 일자리 시장 열기가 여전하자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비롯한 연준 인사들은 기준 금리 추가 인상 가능성을 언급해왔다.

이에 더해 글로벌 신용 평가사인 무디스가 연방 정부 셧다운 위기와 관련해 미국 통치체계가 약화되는 조짐을 보인다고 경고했음에도 3일 워싱턴DC 정가에서는 미국 사상 첫 하원의장 해임이 이뤄지는 등 정국 혼란이 가속화된 점도 국채 수요를 누르고 있다.

찰스슈왑은 유동성 리스크가 다시 부각됐다. 뉴욕 주식·채권 시장이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는 탓에 고객들이 투자 목적으로 유지하던 계좌 잔고를 수익률이 5% 대 머니마켓 펀드로 옮기는 이른 바 ‘현금 분류’ 가 다시 늘어날 것이라는 예상이 다시 돌기 때문이다. 채권 및 자산운용사 주식과 관련해 스티브 소스닉 인프랙티브 브로커스 최고 전략가는 “아무도 떨어지는 칼을 손에 쥐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단기 비관론을 강조했다.

앞서 3일 재무부 집계를 보면 대표적인 단기물인 3개월 만기 국채 수익률은 전날과 같은 5.62%에 거래됐지만 기준금리에 민감한 2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3bp(=0.03%p) 오른 5.15% 에 마감했다.

‘시중 장기금리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는 10년 만기 국채 수익률은 12bp 뛴 4.81%를 기록해 2007년 8월 이후 최고치였으며, 만기가 가장 긴 30년 만기 국채 수익률도 14bp 뛴 4.95% 에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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