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 지난 9월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춘천시 레고랜드 테마파크 기반조성 사업을 맡았던 강원도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법원에 회생을 신청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가파른 긴축 정책과 부동산시장에 대한 우려로 돈줄이 말라가던 자금시장은 강원도의 발표를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받아들이면서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정부가 '50조원+α'의 긴급 시장안정 대책을 내놓고 강원도가 보증채무 2천50억원을 긴급히 편성해 상환했지만 '레고랜드 사태'는 시장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이에 연합뉴스는 레고랜드 사태의 촉발 계기와 수습 과정을 되짚고, 레고랜드의 경제 유발효과 등을 분석하는 세 편의 기사를 송고합니다.]
레고랜드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연합뉴스 자료사진]
(춘천=연합뉴스) 박영서 기자 =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해 회생 신청을 하려고 한다"(2022년 9월 28일), "조금 미안하다.
어찌 됐든 전혀 본의가 아닌데도 사태가 이런 식으로 흘러오니까 미안한 마음이 든다"(10월 27일), "오늘 오전 10시 25분 레고랜드 보증채무를 상환했다."(12월 12일) 새 도정이 들어서면서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사업 추진을 위해 GJC가 BNK투자증권으로부터 빌린 2천50억원을 대신 갚는 사태를 막고자, GJC의 경영난을 타개하려고 꺼내든 '기업회생' 카드가 결과적으로 '자충수'가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 지사는 도가 채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부연했지만, 시장은 이를 채무불이행(디폴트)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고금리에 부동산 경기 침체 우려가 불거지던 시기 경제의 변방에서 발표한 회생 신청 방침은 지방자치단체에 국가신용등급에 준하는 높은 신용도를 부여해온 시장의 신뢰를 흔들며 자금시장을 순식간에 소용돌이로 빠뜨렸다.
지자체의 신용보장도 신뢰할 수 없는 불안감이 시장에 확산해 투자심리가 위축되고, 기업들이 줄줄이 회사채 발행에 실패하며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돈맥경화'로 이어졌다.
김 지사가 "처음부터 보증 채무를 확실하게 이행하겠다고 했다"며 항변하는 사이 시장은 악화 일로를 걸었다.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시장 불안에 극에 달하자 정부는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50조원 플러스알파(+α) 규모의 시장안정 대책을 내놨다.
김 지사는 보증채무를 내년 1월 29일까지 갚겠다며 긴급 진화에 나섰으나 사태는 사그라지지 않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은 김 지사는 결국 베트남 출장길에 올랐다가 예정보다 하루 이른 10월 27일 귀국해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상환일을 12월 15로 앞당기겠다며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처럼 레고랜드발 국내 자금시장 경색 사태로 일컬어지는 '레고랜드 사태' 자체는 불과 두세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지만,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레고랜드가 개장하기까지 11년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사업 추진과정이 자리하고 있다.
2014년 11월 28일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기공식 [연합뉴스 자료사진]
◇ 불완전한 출발에 문화재 암초까지…예고된 빚더미 레고랜드 사태로 도와 함께 GJC 역시 비판의 중심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도 출자기관으로서 레고랜드 개발 목적으로 설립된 GJC는 대표이사의 비위와 사업의 불투명성 등으로 인해 레고랜드 사업 전반에 뿌리 깊은 불신을 초래한 전력이 있는 데다 이번 사태의 도화선이 'GJC의 빚덩이'였기 때문이다.
2012년 8월 GJC 설립 당시 회사의 간판은 '엘엘개발'(LL Development)이었다.
도는 2011년 9월 영국 멀린엔터테인먼트그룹과 5천683억원을 투자해 중도 유원지 일대 도유지·시유지 132만2천㎡에 테마파크 등을 조성하는 투자합의각서(MOA)를 체결했다.
이에 레고랜드 개발을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인 엘엘개발을 설립하고, 2013년 10월 멀린그룹과 본 협약(UA)을 했다.
그리고 약 3개월 뒤인 12월 중순께 엘엘개발은 특수목적법인 'KIS춘천개발유동화주식회사'를 통해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발행, 사업비 210억원을 대출받았다.
당시 발행 주관사는 한국투자증권이었다.
애초 GJC 출자 규모를 600억원으로 계획했으나 실제 출자액은 221억8천200만원에 불과해 해당 자본금 규모로는 사업 진행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에 강원도가 210억원에 대한 채무보증을 섰다.
210억원이었던 대출금은 불과 1년 만인 2014년 11월 말 2천50억원으로 10배 가까이 불어났다.
레고랜드 사업 시행자로서 야심 차게 첫 삽을 떴지만, 2014년 고인돌(지석묘) 101기 등 1천400여 기의 청동기 시대 유구 발견이라는 암초를 만나면서 문화재 발굴 등에 쓰일 사업비가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출 규모가 2천50억원으로 늘어나면서 강원도의 보증채무 규모도 2천50억원으로 덩달아 불어났다.
오늘날 레고랜드 사태의 씨앗이 된 바로 그 '2천50억원'이다.
춘천 중도서 확인된 고인돌 [연합뉴스 자료사진]
◇ 매년 이자 수십억…새 도정 '눈엣가시' 된 GJC 문화재 발굴과 대표이사의 비리 사건에 자금력 부족 문제까지 겹치면서 레고랜드 사업은 첫 삽을 뜬 지 7년이 지나도록 허송세월했다.
그사이에도 갚아야 할 이자는 차곡차곡 쌓여 GJC의 숨통을 조였다.
GJC가 레고랜드 사업을 위해 빌린 돈은 총 2천140억원으로, 2013년부터 올해 9월 말까지 대출 이자로만 518억원을 냈고 대출수수료까지 합한 금융비용은 612억원에 달한다.
2014년부터 하루 600만∼2천만원 상당의, 1년으로 따지면 20억∼50억여원에 이르는 이자를 냈다.
그러나 당시에는 레고랜드 사업 추진 여부가 불투명했기에 '빚 문제'는 뒷전으로 밀렸다.
표류하던 레고랜드 사업이 변곡점을 맞은 건 2018년이다.
강원도와 멀린사, 엘엘개발은 그해 5월 레고랜드 사업 주체를 엘엘개발에서 멀린사로 바꿔 사업을 추진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총괄개발협약'(MDA)를 맺었다.
그렇게 엘엘개발은 레고랜드 사업 시행자 지위를 멀린사에 넘기고, 막대한 빚으로 인해 자금난에 허덕이며 2019년 1월 회사명을 지금의 GJC로 바꿨다.
2020년 10월에는 특수목적법인 아이원제일차를 통해 ABCP를 재발행하고 금리를 낮추고자 발행 주관사를 BNK투자증권으로 바꿨다.
하지만 레고랜드 주변 부지 매각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여전히 자금난에 허덕였고, 우여곡절 끝에 레고랜드가 올해 5월 개장했으나 GJC가 주목받을 자리는 없었다.
오히려 6·1 지방선거를 통해 새 도정이 들어서면서 GJC는 레고랜드 개장 공신이 아닌 도민 혈세를 낭비케 한 역적으로 인식됐다.
전임 도정에서 추진한 레고랜드와 알펜시아 사업과 관련해 재검토하겠다는 뜻을 공공연하게 밝혔던 김 지사는 취임 약 3개월 만인 9월 28일 발표한 GJC 회생 신청을 발표했다.
회생 신청이라는 '작은 공'이 신용으로 돌아가는 채권시장에 '불신 폭탄'으로 떨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결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