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준의 데이터로 세상읽기] 증시 부양만으론 K밸류업 역부족…금퇴족 꿈꾼다면 채권 찜

나현준 기자(rhj7779@mk.co.kr)

입력 : 2025.01.12 16:00:35 I 수정 : 2025.01.12 16:04:46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 주식시장이 국민 부(富)를 축적시키는 새로운 수단이 돼야 한다."

여야 모두 주식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해 12월 상법 개정안 토론회에서 이 같은 취지로 발언했습니다. 여당과 정부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하며 한국 증시 우상향이 필요함을 역설했죠.

당위는 좋지만 많은 사람들이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수도권·서울 부동산 불패는 40년 이상 이어온 일종의 '신화'입니다. 반면 코스피·코스닥은 수년째 '박스권'에 갇혀 있습니다.

문제는 앞으로 한국이 은퇴자가 넘쳐나는 고령화사회라는 점입니다. 2차 베이비부머(1964~1974년생) 약 954만명이 순차적으로 은퇴하고 있습니다.

서울연구원이 2021년 세대별 보유 자산을 조사한 결과, 국내 가계 순자산의 약 46%를 60세 이상이 가지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의 대부분은 부동산이 차지하고 있죠.

'큰손'인 이들이 은퇴하게 되면서 국내 주식시장은 더욱 안 좋아질 전망입니다. 고령층이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주식시장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긴 힘들기 때문이죠.

김세완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와 김경록 미래에셋자산운용 고문이 고령화로 인한 금융시장의 규모 변화를 추정했는데,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2035년에 정점을 찍고 감소세로 전환되며 2060년 이후에는 급격히 축소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한국금융연구원 보고서 발췌). 주식시장 골든타임이 10년 남았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고령화가 진행된 일본은 가계자산의 30% 이상을 예금·현금으로 보유하고 있죠. 이는 우리의 2배에 달하는 수치입니다.

국회, 정부 지도자들이 국내 주식시장을 키우겠다는 취지는 좋습니다. 돈의 부동산 쏠림 현상을 방지하고, 자본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말이죠.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코스피·코스닥이 우상향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산군을 더 늘려야 할까요.





가계자산 중 채권 비중 1%에 불과

논의에 앞서 국내 가계자산이 어떤 포트폴리오로 구성돼 있는지 한번 정리해보겠습니다. 한국은행 대차대조표 및 자금순환표 흐름을 살펴봤습니다. 2023년 기준으로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비금융자산(주로 부동산)은 9744조원에 이릅니다. 반면 금융자산은 5204조원이고, 이 중 예금·현금이 2410조원, 보험·연금이 1457조원에 이릅니다. 주식·펀드는 1127조원인 반면 채권은 167조원에 불과합니다.

즉 개인의 경우는 자산의 65.2%가 부동산, 34.8%가 금융자산입니다. 금융자산을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개인은 현금·예금을 16%, 보험·연금을 9.8%, 주식을 7.5%, 채권을 1.1% 가지고 있습니다.

부동산 쏠림을 막는다는 취지를 살리려면 금융자산을 늘려야 하는데요.

현금·예금 비중을 일본처럼 늘리는 것은 미국, 유럽 등 여타 금융선진국에 비해서 '자금 운용'을 잘 못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은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주가지수 밸류업에 진심인 거고요.

우리도 가계의 주식 보유 비중을 늘려야 합니다. 미국 가계는 약 30%를 주식으로 들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주가 밸류업을 통해 주식 보유를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인들은 유수 자산운용사의 TDF(Target Date Fund·타깃데이트펀드)를 통해 포트폴리오를 관리합니다. TDF는 펀드매니저가 근로자의 은퇴 날짜에 맞춰 주식과 채권 비중을 조절해 운용하는 펀드죠.

결과적으로 미국 가계는 주식·채권에 모두 투자하면서 성장성(주식)과 안정성(채권)을 동시에 추구하는 겁니다. 특히 많은 미국인이 최근 고금리로 인해 채권 금리가 상승하면서(채권가격 하락), 은퇴 후에 TIPS(미국 물가연동국채)에 투자하고 있는 상황이죠.

이를 감안하면 한국도 증권시장 밸류업뿐만 아니라 개인이 채권시장에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도록 채권시장 밸류업을 같이 추진해야 합니다. 특히 금리가 초저금리로 내려가서 채권 투자의 매력도가 떨어지기 전에 말이죠.

국내 채권 발행 잔액은 지난해 약 2827조원. 하지만 가계가 들고 있는 채권 규모는 167조원(2023년 말 기준)이고, 현재도 200조원 남짓으로 추정됩니다. 전체 시장의 10%에 불과합니다. 가계자산에서 채권시장 비중을 더 높여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죠.

채권 역시 최근 들어선 변동성이 늘어났다곤 하나, 우선 국채·은행채 등은 대표적 안전자산으로 은퇴 시 고정수입(Fixed income)을 얻을 수 있는 수단입니다. 은퇴자 포트폴리오 중 일부를 채권으로 구성하면서 예금보다 조금 더 높은 수익을 얻는 것이 가능하죠.

특히 우리가 고령화로 인해 '일본의 길'을 걷게 된다고 한다면, 앞으로는 0~1%대 물가상승률을 경험하게 될 겁니다. 이 상황서 기준금리가 당분간 2~3%대에 머문다면, 향후 금리가 더 인하되기 전에 채권 투자가 충분히 매력적일 수 있습니다.



발 빠른 개인들, 이미 채권 투자

이미 발 빠른 개인들은 채권 투자에 나서고 있습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개인투자자 채권 순매수액은 41조6448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2023년 37조5620억원에 이어서 최대치를 경신 중입니다.

하지만 연간 주택시장에 투자되는 돈만 100조원이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여전히 가계 투자는 부동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이 1100조원에 이른다는 점이 이를 보여줍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우리도 개인들이 증권사 계좌를 통해 채권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시대가 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미 증권사에서도 채권 관련 신상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삼성증권은 2022년 8월 국내 증권사 중 최초로 만기 3년 이하 현대카드·현대캐피탈 여신전문금융회사채(여전채)를 1000억원 규모로 판매했습니다. 월 이자 지급식으로 세전 연 3.7~4.4%의 이자수익을 기대할 수 있었죠. 해당 상품은 은퇴자에게 각광을 받았습니다. 만기가 짧아서 원금 손실 우려가 적고, 월별로 예금 대비 높은 이자수익을 기록했기 때문이죠.

이후에도 지난해 신한은행, 현대카드, 롯데카드, 신한카드, 부산은행, JB금융지주 등이 월 지급식 채권 상품을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개인이 소액으로 국채에 투자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줬죠. 연 3%대 금리를 제시했는데 다만 이자는 만기에 지급하는 형식(복리채)입니다. 올해부터 5년 만기 상품도 출시된 만큼, 여유가 있는 은퇴자는 이를 활용해 자산을 불리는 것도 방법입니다.



기관은 사모대출 눈여겨봐야

고령화되는 가계가 앞으로 자산 포트폴리오를 부동산에서 주식(리츠·배당주도 포함)·채권으로 상당수 조정해야 한다고 한다면, 개인의 돈을 받아 자금을 운용하는 기관투자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들은 조금이라도 더 수익률을 제고해 개인의 노후소득을 보장하면서 동시에 기관의 투자수익도 극대화해야 합니다. 이 지점에서 살펴볼 분야가 바로 '사모대출'입니다.

사모대출 분야에서 대표 사업자는 바로 글로벌 4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입니다. 아폴로는 약 7500억달러에 달하는 자금을 주로 사모대출을 통해 운용하고 있죠.

아폴로의 비즈니스 모델은 미국인의 고령화와 발맞춰 '연금보험'과 '사모대출'을 연결한 것에 있습니다.

아폴로의 자회사인 미국 1위 연금보험사 '아테네'는 매년 고객으로부터 연금보험료 수백억 달러를 받습니다. 그리고 해당 보험료를 기반으로 아폴로는 우량한 회사를 대상으로 '사모대출'을 해줍니다. 사모대출이란 소수의 기관투자자가 우량 상장사 혹은 비상장사에 대출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인 대출 대비 아폴로의 사모대출은 1~2%포인트 더 높은 수익률(연평균으로 치면 6~7%대 수익률)을 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아폴로가 인텔에 110억달러를 대출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사모대출을 받는 기업 입장에서도 장기간 안정적으로 자금 조달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폴로는 공모시장(주식·채권) 대신 사모시장에 집중했습니다. 공모시장이 사모시장과 다른 점은 시장이 크다 보니 즉각적으로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사모시장은 즉각적으로 회수는 쉽지 않지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할 수 있습니다.

사모대출은 연금보험과 어울립니다. 은퇴자 입장에선 2억원을 연금보험에 넣어둔다고 했을 때, 2억원을 중도에 인출하기보다는 안정적으로 4%대 이상 수익을 얻길 원하죠. 아폴로는 환금성(유동성)은 부족하더라도 수익률을 올리는 전략을 택한 것입니다.

이는 은퇴자가 점차 많아지고, 이들의 자산이 계속 쌓이게 될 국내 은행·보험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들의 보수적인 투자 관행(은행은 담보대출, 보험사는 국채 위주 투자)에서 벗어나서 조금 더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공간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신한라이프는 아폴로와 업무협약(MOU)을 최근에 체결하기도 했습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부터 사모대출과 관련한 자산 배분에 나선 것, 국내 1위 재보험사인 코리안리가 공동재보험이란 새로운 영역을 글로벌 사모펀드인 칼라일과 같이 개척하려고 하는 것 등도 이같이 운용자산 수익률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입니다.

PEF업계에선 국내 퇴직연금 시장도 보다 적극적으로 개방돼야 한다고 말합니다. 현재 은행·보험·증권사가 퇴직연금을 운용 중인데, 보수적인 자금 운용으로 인해 1~2%대 수익률을 기록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이는 국민의 은퇴자산을 늘리는 데 퇴직연금이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죠.

이 때문에 여러 포트폴리오(주식·채권·대체투자)를 통해 1988년 이후 연평균 5.92% 수익률을 얻은 국민연금을 퇴직연금 운용사업자로 만들자는 야당 법안 발의(한정애 민주당 의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발의)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 부분은 국민의 노후 대비를 위해 필요해 보입니다.

앞으로 부동산 '몰빵' 시대에서 벗어나 고령화 시대에 맞는 가계 부의 재편이 필요합니다.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이란 '3중 체제'를 바탕으로, 국민연금·퇴직연금은 사모대출 도입을 통한 기관의 안정적인 운용수익률 개선을, 개인연금은 채권·배당주·리츠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이에 맞는 세제 개편(배당소득세 분리과세 등)도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정부는 증시 밸류업만 신경 쓸 게 아니라 '노후자산 밸류업' 관점에서 전체적인 틀을 다시 짜야 합니다.



'나현준의 데이터로 세상 읽기'는 저출산고령화·성장동력 악화에 직면한 대한민국의 바람직한 미래 방향성에 대해서 논의해봅니다.







[나현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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