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연금 바꾸자] ① 기금화 논란 확산…새 정부 주요의제 부상할듯
퇴직연금 수익률 2%대로 국민연금 크게 밑돌아…"대형화·전문화로 실적↑"기금화 법안 다수 국회 계류…금투업계 '계약형 現체계 붕괴'에 반발"기금화로 경쟁 촉진해 서비스 품질 향상" vs "시장 충격만 줄 수도"
김태균
입력 : 2025.05.25 07:00:08
입력 : 2025.05.25 07:00:08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퇴직연금을 국민연금처럼 기금화하는 방안이 새 정부의 주요 의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핵심 노후 보장 대책으로 현재 적립금이 400조원이 넘지만, 수익률은 2%대로 국민연금(8%대)의 4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퇴직연금은 현재 근로자 개인이 금융사에 돈을 맡겨 운용 방식을 지시하는 '계약형'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 때문에 정관계와 학계에서는 이런 '뿔뿔이 투자'로는 수익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며, 돈을 한데 모아 전문가가 관리하는 '기금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즉 국민연금공단(NPS)이 운용을 책임지는 국민연금과 비슷한 모델을 도입해 은퇴 자금의 수익률을 높이자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는 기금형 퇴직연금을 현실화하는 법안 여러 건이 계류돼 차기 정부 출범 이후 기금화 도입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할 것이 확실시되지만, 금융투자업계의 반발이 커 난항이 예상된다.
현행 퇴직연금의 관리 주체인 은행·증권·보험 등 금융사들은 급격한 기금화 도입이 업계에 큰 혼란을 불러올 수 있고, 수익률 부진은 기존 제도를 개선하는 수준으로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 퇴직연금 수익률 부진에 기금화 법안 발의 봇물 현재 계약형 퇴직연금은 2005년 말 퇴직급여법이 시행되면서 시작됐다.
기업이 도산하며 사내 퇴직금을 못 받는 경우가 잇따르자 이 돈의 관리를 금융사에 맡겨 안정성을 강화하자는 취지였다.
현재 퇴직연금은 수익률이 큰 문제로 떠올랐다.
대다수 자금이 예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에 묶인 탓에 주식·채권·부동산 등에 분산 투자하는 국민연금과 비교해 운용 실적이 크게 떨어진다.
2019∼2024년 평균 수익률은 퇴직연금이 2.82%로 같은 기간 국민연금 수익률(8.69%)과 비교해 수배의 격차가 난다.
노후에 정기 소득을 제대로 주려면 장기간 원금을 꾸준히 불려야 하는데, 수익률은 '쥐꼬리' 상태고 금융사 수수료만 계속 떼인다는 퇴직연금 가입자들의 불만이 적잖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한 것이 기금화다.
국민연금공단(NPS) 같은 '수탁 법인'이 가입자 돈을 모아 전문적으로 투자처를 찾아 운용하면 수익성을 대거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이 방안의 핵심이다.
기금화 논의는 작년 10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퇴직급여법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이 붙었다.
한 의원안은 NPS가 직원 100명이 넘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기금을 운용할 수 있다고 명시해, NPS의 진입을 허용한 것이 특징이다.
같은 당의 박민규 의원은 올해 4월 기금형 퇴직연금 개정안을 발의했고, 이재명 대선후보 캠프의 정책부본부장인 안도걸 의원도 같은 달 같은 취지의 법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박 의원 법안은 퇴직연금 기금의 수탁 법인으로 고용노동부 산하의 근로복지공단을 제시했고, 안 의원 측은 수탁 주체로 복수의 영리 기관까지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3월 기금형 퇴직연금 도입을 위한 전문가 자문단을 발족해, 6월까지 논의를 진행하고 올 하반기 정부 개정안을 발의할 방침이다.
◇ "시장 자극하는 메기 될 것" vs "혼란만 가중" 기금화 찬성론의 근거로 많이 거론되는 실례는 근로복지공단이 운용하는 '중소기업퇴직연금기금'(푸른씨앗)이다.
푸른씨앗은 직원 30인 이하의 중소기업 근로자만 제한적으로 가입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기금형 퇴직연금으로, 2022년 도입됐다.
푸른씨앗은 2023년 수익률 6.97%, 작년 6.52%의 안정적인 수익을 거둬 기금형 운용의 안착 가능성을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기금화를 제안하는 전문가들은 '메기 효과'도 강조한다.
국민연금이나 근로복지공단 등 기금 사업자가 퇴직연금 시장에 진입하면 경쟁을 촉발해 퇴직연금의 전반적 품질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연못의 메기가 다른 물고기의 긴장감을 높여 생태계의 활기를 불러오듯, 증권사 등 종전 계약형 퇴직연금 사업자들도 자극받아 수수료를 낮추고 더 좋은 상품을 내놓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기금형 퇴직연금이 꼭 높은 수익을 올릴 것으로 단정하기 어렵다는 반론이 적지 않다.
계약형 퇴직연금의 실적 부진은 주식·채권 등 수익성 자산에 제대로 분산 투자를 못 한 것이 원인이지 기금화 여부 탓이 아니라고 금투업계 측은 설명한다.
가입자들이 선택해야 할 기본 투자운용 방안(디폴트 옵션)이 너무 복잡한 탓에 투자 초심자들이 초(超)저위험 예금성 자산에만 몰릴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디폴트 옵션 제도를 고쳐 분산 투자를 유도하는 방안이 정석이지, 성급히 기금화부터 추진하는 것은 해법이 틀렸다는 것이 금투업계의 주장이다.
국민연금 등 공적 기금 사업자의 퇴직연금 진출이 메기 효과가 아닌 시장 혼란만 일으킬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금투업계의 한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수수료 수익성이 낮아 금융사들이 과거 20년 동안 장기 고객 유치를 위한 미래 사업으로 진행해왔다.
기금 사업자로 고객이 대거 이탈하면 지금껏 사업에 투자한 금융사로서는 예측 못 한 불이익을 받게 되기 때문에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퇴직연금의 적립금은 427조2천억원에 달하며, 운용 주체는 증권사 14곳, 은행 12곳, 생명보험사 10곳, 손해보험사 6곳으로 그 범위가 넓다.
금투업계의 다른 관계자는 "퇴직연금은 서로 다른 금융 업종들이 얽혀 있는데 기금 사업자까지 들어온다면 업종 간 구획이 대폭 뒤흔들릴 공산이 크다.
제도와 법규상 혼란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ta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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