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컬처 플랫폼 운영하는 남선우·장동현 공동대표 前대표 비위로 위기 맞았지만 결제 후 먹튀·저작권 준수 등 덕질하며 직접 겪은 문제 보완 회원수 1년 만에 50% 늘어 음지 취급받던 소수의 취미서 K컬처의 한축 자리매김할 것
서브컬처 플랫폼을 운영하는 쿠키플레이스의 장동현(왼쪽), 남선우 공동대표. 이충우 기자
특정 분야의 광적인 마니아를 뜻하는 일본말 '오타쿠'의 한국식 표현 '덕후'는 한때 음지의 단어였다. 일부의 극단적인 행위 탓에 이들은 사회성이 결핍된 사람의 전형으로 폄하됐다. 이들의 '덕질'이 집약된 '서브컬처(하위문화)'에 대한 배척도 빈번했다. 하지만 '덕질 시장'은 어느새 국내만 5000억원 규모에 이를 만큼 커지고 있다.
국산 서브컬처 플랫폼 '크레페'는 최근 이 같은 덕질의 산업화를 이끄는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영화, 게임은 물론 K팝, 소설을 비롯한 모든 문화 콘텐츠의 2차 창작물 제작과 관련한 수요자와 창작자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맡으면서다. 과거 SNS에서 알음알음 이뤄지던 콘텐츠 거래를 양지로 끌어올려 전문화하면서 '사기당할 수 있다'는 우려를 최소화한 것이다.
크레페를 운영하는 쿠키플레이스의 남선우·장동현 공동대표는 최근 매일경제와 만나 "2022년 서비스 시작 이후 크레페를 통해 이뤄지는 거래는 급증하고 있다"며 "지난해 4월 20억원 수준이던 거래액은 올해 같은 달 35억원을 넘기면서 75% 늘었다"며 "전체 회원 수도 32만여 명으로 지난해 대비 50%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이어 "회사 직원 17명 모두 크레페를 애용하다 보니 소비자의 마음에서 서비스를 혁신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두 대표는 스스로를 경영자이기 이전에 덕질에 빠진 덕후라고 소개한다. 한영외고를 나와 홍익대 예술학과를 졸업한 남 대표는 큐레이터로 일하다가 덕질을 찾아 쿠키플레이스의 세 번째 직원으로 입사했다. 대구과학고를 나와 울산과학기술원(UNIST) 인간공학부를 중퇴한 장 대표도 록음악 마니아로 덕후 문화에 익숙하다. 그는 다수의 스타트업 운영 경험을 바탕으로 경영 전문성을 쌓았다.
이들은 회사 창업자가 배임, 횡령 등의 논란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여파를 수습하고자 2023년 손을 잡고 지금까지 왔다. 장 대표는 "회사에 처음 왔을 때 의사결정권자가 비즈니스 환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사실상 대표가 없었던 상황에서 당시 직원이던 남 대표가 쿠키플레이스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남아달라고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공동대표 체제로 돌입한 이후 크레페는 사용자들의 가려웠던 부분을 본격적으로 긁었다. 창작자가 의뢰인의 돈만 받고 달아나는 '커미션론'을 예방하기 위해 안전결제인 에스크로 시스템을 도입했다. 창작자의 실력에 따라 결과물이 나오면서 생길 수밖에 없는 서비스 만족도 문제는 다수의 로펌과 정기 자문 계약을 맺고 제도화한 분쟁 조정 체계를 통해 대응했다.
남 대표는 "소비자와 창작자 간 분쟁 유형 중 가장 까다로운 것은 부분 환불 시 환불률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같은 문제라도 어떤 분야의 작품인지에 따라 진행 방향이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며 "결국 사람의 심리가 절대적으로 개입할 수밖에 없는 영역인 만큼 문화로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저작권 준수도 면밀하게 살피고 있다. 디즈니를 비롯해 일부 콘텐츠 제작사들은 2차 창작 자체를 엄격하게 금지하기 때문에 애초부터 거래되지 않도록 플랫폼을 관리하고 있다. 장 대표는 "저작권 준수는 2차 창작 시장에서 플랫폼의 존재 이유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라며 "K팝 등 엔터 시장의 경우 2차 창작물이 시장의 크기 자체를 키운다는 인식이 있다. 크레페가 '윈윈' 사례를 만들고자 하는 영역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까닭이기도 하다. 챗GPT의 지브리풍 그림 전환과 같이 저작권 침해 논란이 어떻게 튈지 모르기 때문이다. 남 대표는 "특히 창작자의 노력이 쉽게 약탈되지 않도록 크레페상에서 AI의 학습을 막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쿠키플레이스는 올해부터 해외 매출 확장도 본격화할 계획이다. 현재 전체 이용자 중 해외 이용자가 8~10%인 상황에서 해외 결제액은 매달 7~8%씩 성장하고 있다. 특히 북미 지역을 중심으로 소비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장 대표는 "현재 이용자의 절대다수가 10~30대 여성"이라면서 "한국 창작자들의 개성이 해외 시장에서도 통하는 만큼 국내 창작자 지원에 집중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