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이 의미없는 시대 올 수 있게”...새 암호기술 연구하는 교수님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입력 : 2025.06.09 07:57:29
입력 : 2025.06.09 07:57:29
보안 스타트업 ‘크립토랩’ 이끄는 천정희 서울대 교수
암호화된 데이터 쓸 수 있는
동형암호 성과로 세계 주목
의료 분야 질병 데이터 경우
누가 어떤 병 앓는지 모른채
진단명만 파악 가능해 강점
글로벌 빅테크·기업 ‘러브콜’
암호화된 데이터 쓸 수 있는
동형암호 성과로 세계 주목
의료 분야 질병 데이터 경우
누가 어떤 병 앓는지 모른채
진단명만 파악 가능해 강점
글로벌 빅테크·기업 ‘러브콜’

“수학에서 암호학은 이론과 산업을 넘나드는 변화무쌍한 학문입니다. 일선 현장에서 상용화한 것이 새로운 이론적 패러다임을 구축하죠.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으로 개인의 취향은 물론 DNA까지 빅데이터로 다뤄지는 시대가 됐습니다. 이 정보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학자로서의 자부심도 커질 것입니다.”
한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암호학의 대가로 주목받고 있는 천정희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최근 매일경제와 인터뷰에서 암호학의 매력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이미 50여 년 전 등장했지만 기술적인 문제로 상용화되지 못했던 ‘동형암호’ 기술에 오래전부터 주목했다”며 “2011년 이 기술을 본격적으로 현실에 구현하자고 마음먹고 연구한 것이 2018년 ‘크립토랩’ 창업까지 이어졌다”고 밝혔다.
동형암호(同形暗號)란 데이터를 암호화한 상태에서도 계산할 수 있는 암호 기술이다. 암호 처리한 데이터를 활용하려면 암호를 해제하는 복호화 과정을 거쳐야만 했던 기존 방식의 한계를 극복한 개념이다. 의학 분야를 비롯해 개인정보 보호 필요성이 큰 분야에서 특히 관심을 끌고 있다. 양자컴퓨터도 풀지 못하도록 만들어진 암호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한 양자내성암호와 더불어 최첨단 기술로 평가받는다.
천 교수는 “과거 동형암호 기술은 ‘암호의 성배’로 불렸지만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며 “지난 10여 년 동안 연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사활을 걸었다. 핵심은 알고리즘 구조의 간소화”라고 설명했다. 그는 “해결의 실마리는 2015년 크리스마스 이브 때 화이트보드 한 구석에 문제를 써내려가다 잡았다”며 “모바일 환경에서도 실시간 처리가 가능한 수준까지 발전시킨 지금 시점에도 짜릿한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2016년 실제 산업에 적용할 수 있는 동형암호 개발에 성공한 이후 천 교수의 연구 실적은 날개를 달았다. 2017년 국제 유전정보 분석 보안대회(iDASH)에서 암호화된 암환자 900여 명의 유전자 정보를 동형암호 기술로 분석해 암 종류를 분류하는 시합에서 2위(마이크로소프트)보다 30배 빠른 압도적인 격차로 1위에 올랐다. 데이터가 암호화돼 누가 어떤 병에 걸렸는지는 모른 채로 진단명 같은 발병 정보만 빠르게 판단해낸 것이다. 이는 현재 크립토랩의 솔루션 ‘혜안’의 바탕이 되는 기술력으로, 혜안은 당시보다 100배 이상 빠른 알고리즘을 구축하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크립토랩을 찾는 곳도 다양하다. 최근에는 정부의 K클라우드 사업에 협력해 ‘사생활 보호 AI’ 통합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앞서 2020년 국민연금공단, 개인신용평가 전문업체 코리아크레딧뷰로와 함께 개인정보 노출 없이 국민연금을 성실하게 낸 사람의 신용을 높게 평가하는 데이터 통계 모델도 만들었다. 유전자검사를 통해 확보한 DNA 정보를 바탕으로 맞춤형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마크로젠도 협력 파트너다.
챗GPT를 위시로 한 대규모언어모델(LLM) AI의 부상과 함께 인간의 개입 없이 스스로 결정하고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AI 에이전트 시대가 성큼 다가오면서 크립토랩의 보안 기술은 더욱 가치가 높아질 전망이다. AI가 인간 수준에 근접한 판단을 내리려면 금융은 물론 생체 정보를 비롯한 각종 민감한 개인정보를 기본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해야 하는 만큼 강력한 보안 기술의 수요는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SK텔레콤 유심 정보 유출 같은 사고에서는 동형암호 기술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그는 “향후 산업 보안 전략의 핵심은 ‘99.9% 방어율 솔루션’의 결합이 될 것”이라며 “설혹 보안 정보 일부가 유출됐더라도 활용 불가능하게 만들어 해킹의 메리트를 없애야 한다. 지금 수준의 동형암호기술이라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단일 솔루션으로 개인정보를 100%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방법을 만드는 것은 막대한 비용 등의 이유로 어렵다면 ‘보안의 적정 기술화’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현재 크립토랩이 한국과 프랑스, 미국에 지사를 두고 ‘3각 기반’에 매진하고 있다. 회사는 2023년 상반기 프랑스 리옹에 연구소를 개설한 데 이어 같은 해 미국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지사를 마련하고 지난해부터 본격 가동하고 있다.
천 교수는 “한국에서 모든 사업을 총괄하는 가운데 프랑스 지사는 세계적 암호 분야 석학인 데미안 스텔레 프랑스 리옹 고등사범학교 교수를 중심으로 기술 이론 강화에 매진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는 글로벌 빅테크는 물론 세계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AI 분야 스타트업과 협업을 활성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무대 최일선에 선 천 교수에게 국내 스타트업 환경은 어떻게 비춰질까. 그는 무엇보다 활력이 아쉽다고 밝혔다. AI는 물론 다른 산업 분야에서도 스타트업 환경이 침체되면서 기술이 사장되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대학과 정부의 각성을 주문했다. 교원 창업이 성공하려면 창업자가 가진 깊은 기술력에 기업 경영 지원이 패키지로 붙어야 한다는 것이다.
천 교수는 “재무나 투자, 특허 각각의 요소를 배우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막상 누구에게 뭘 배워야 하는지 시작하려면 막막하다”며 “한국이 미국, 이스라엘 같은 스타트업 선진국에 비해 아쉬운 지점”이라고 꼬집었다. 이어 “지난 시간 동안 해외 유수의 기업들이 크립토랩의 기술을 따라오려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꼈다”며 “세계 보안시장에서 이 같은 K열풍을 이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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