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마이닝] ② 검은 도시서 환골탈태한 독일 루르…재건 꿈꾸는 폐광지(끝)

친환경 에너지·문화관광 도시 전환 성공 요인은 중앙과 지방의 의기투합패러다임 전환 필요…김진태 지사 "산업 구조 바꿀 예타 사업 통과" 촉구
이재현

입력 : 2025.07.24 06:30:02


독일 탄광지역 도시재생 사례
에센 졸페라인 광산 수영장·보훔 광산 박물관·뒤스부르크 타이거 앤 터틀·도르트문트 피닉스 호수(시계방향) [독일 폐광연구센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보훔·춘천=연합뉴스) 이재현 기자 = 1970년대 초까지 53개 탄광에서 연간 1억t의 석탄을 생산했던 보훔 등 독일의 탄광 도시들은 어떻게 환골탈태에 성공했을까.

19세기 중반 이후 유럽 산업화를 견인한 대표적 석탄 생산국인 독일은 루르 지역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탄광 산업을 발판으로 세계 제1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석탄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잃자 남은 것은 완전히 황폐해진 환경뿐이었다.

죽음의 검은 도시에서 생명의 도시, 문화관광의 도시로 대변신에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은 중앙과 지방정부가 함께 힘을 모아 적극적으로 산업구조를 전환했다는 점이다.

친환경 에너지 산업과 석탄 유산 활용을 활용한 산업 구조의 전환이 거의 동시에 추진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 에센 졸페라인 탄광 모형
[연합뉴스 자료사진]

◇ 끊임없는 연구조사와 중앙·지방의 적극적 협력…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1900년대 초 루르 지역의 탄광은 한 때 1천여개에 달하며 석탄 사업 전성기를 구가했다.

1950년대에도 탄광 수는 150∼170개로 줄었지만, 대형화·기계화로 생산량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1950년대 이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변화와 경쟁력 약화로 석탄 산업이 점차 쇠퇴하자 독일 정부는 보조금 지원을 통해 단계적 폐광을 유도했다.

2018년 12월 마지막 탄광 '프로스페르-하니엘'(Prosper-Haniel)의 폐광을 끝으로 독일 내 모든 석탄 광산은 공식적으로 문을 닫았다.

독일은 폐광 전부터 '포스트 마이닝' 시대를 착착 준비했다.

우선 황폐해진 환경을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를 통해 얻은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친환경 에너지산업으로 전환의 틀을 잡아 나갔다.

이어 중앙은 물론 지방 정부와 대학이 연계해 지역개발의 통합 전략을 추진했다.

석탄 유산 가치에 관한 내재적 탐구를 통해 이뤄낸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관광수요를 증가시켰다.

독일 보훔 광산 박물관
[촬영 이재현]

이를 통해 단순한 환경복구를 넘어 재생에너지, 수소 산업, 문화관광, 첨단기술산업 등 다양한 대체 산업이 육성되고 석탄산업 유산을 활용한 문화공간으로 전환에 성공했다.

제철소 부지를 인공호수로 바꾼 도르트문트의 피닉스제(Phoenix-See), 탄광을 예술과 교육의 거점으로 바꾼 졸페라인, 시민들이 참여하는 에너지 공유 마을 '보트로프'는 독일식 전환정책의 정수로 꼽힌다.

독일의 포스트 마이닝 전환 정책에는 우리나라의 파독 광부 서사와 맥이 닿아 있다.

폐광 절차를 진행하면서도 당장 탄광 산업을 멈출 수 없었던 독일 정부는 이민 노동자 유입이라는 해법을 선택했다.

같은 시기, 우리나라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추진과 맞물리면서 외화 확보 차원에서 정부 차원에서 이뤄진 파독 광부의 역사가 시작됐다.

1963년 12월 22일 첫 파독 이후 1977년까지 75차례에 걸쳐 모두 7천936명이 광부가 독일로 건너가 고된 삶을 살면서 흘린 땀방울로 조국 근대화에 힘을 보탰다.

삼척 도계광업소와 태백 장성광업소에서 독일 광산 작업에 필요한 실습을 거쳐 독일로 건너간 파독 광부들은 독일 현지에서 강원 폐광지역의 경제적 부흥을 응원하고 있다.

파독 광부·간호사들과 만난 김진태 도지사
[촬영 이재현]

◇ "석탄산업은 끝났지만, 탄광 도시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독일의 폐광지 재생 모델은 대체 산업 육성이라는 폐광지역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 중인 강원 탄광도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95년 '폐광지역 개발지원에 관한 특별법' 제정 이후 30년 가까이 이어진 지원에도 정선, 태백, 삼척, 영월 등 폐광지역은 여전히 고령화, 인구 감소, 경제 침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폐광지역을 단순한 지원 대상이 아닌 미래산업 전환을 위한 차별화된 전략 마련 등 정책 패러다임의 변경을 주문하고 있다.

독일 사례처럼 적극적인 전환 정책이 적용된다면 폐광지를 탈바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재영 강원연구원 탄광지역발전지원센터장은 "이제는 피해 보상 중심의 지원을 넘어서, 지역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독일의 성공 노하우도 중요하지만, 중앙정부의 적극적인 협력과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파독광부기념회관에 전시된 광차
[촬영 이재현]

강원도 역시 총사업비 7천168억원이 투입되는 폐광지역 경제진흥사업에 거는 기대가 크다.

이 사업은 태백을 청정메탄올 생산 중심의 에너지 전환 클러스터로 전환하고 삼척을 중입자 가속기 기반의 첨단 의료 복합도시로 조성하려는 대체 산업 육성 전략이다.

여기다 영월은 상동광산을 활용한 텅스텐 기반의 산업단지 및 드론 클러스터, 정선은 강원랜드 글로벌 복합리조트 및 가리왕산 국가 정원 조성 등 포스트 마이닝 시대의 빗장을 여는 전환 사업을 추진 중이다.

김진태 강원지사는 "새 정부에서 말하는 특별한 희생에 강원 폐광지역을 빼놓을 수 없다"며 "산업 구조를 바꿔서 독자 생존할 수 있는 체제로 전환하는 폐광지역 경제진흥사업의 오는 8월 예비 타당성 조사 통과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석탄산업은 끝났지만, 탄광 도시의 삶은 끝나지 않았다.

독일은 그 길을 보여줬고, 이제는 강원도가 빗장을 풀어 젖힐 차례다.

폐광이라는 과거의 흔적 위에, 지속 가능한 전환이라는 미래의 그림을 그릴 시간이다.

뒤스부르크 타이거 앤 터틀
[독일 폐광연구센터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jlee@yna.co.kr(끝)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8.05 23:46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