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송 이겨봤자 결국 빈손”...대기업한테 기술 뺏긴 중기 6곳중 1곳 망했다
이호준 기자(lee.hojoon@mk.co.kr)
입력 : 2025.07.28 19:13:51 I 수정 : 2025.07.28 21:02:17
입력 : 2025.07.28 19:13:51 I 수정 : 2025.07.28 21:02:17

솔컴인포컴스는 지난해 코오롱베니트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배상금액은 2000만원에 불과했다. 형사소송에서 코오롱베니트 관계자들은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이유에서였다. 고 대표는 “고의성이 없었다는 판결은 지금도 이해가 안 간다”며 “기술탈취를 제대로 판정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 리뷰 서비스 ‘애드캠퍼스’를 운영하는 스타트업 텐덤은 대형 입시정보업체 진학사를 “자사와 업무협약 기간 중 무단으로 유사 서비스를 개발했다”며 특허청에 고발했다. 특허청은 진학사의 아이디어 부정 사용을 인정하면서 금전적 배상을 권고했지만 진학사는 이를 불이행하고, 오히려 텐덤을 상대로 채무부존재 소송을 제기했다. 텐덤은 손해배상 소송으로 맞서면서 2심 법원은 진학사에 손해배상금 2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후 진학사가 상고해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유원일 텐덤 대표는 “회사를 그만둘까 생각도 했지만 폐업을 하면 소송이 더 이상 진행이 안 된다”며 “회사는 사실상 문을 닫았지만 소송을 위해 폐업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종 승소한다고 해도 2000만원으로 그동안 피해가 보상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한국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의 기술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존재하지만 실제로 보호받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기술탈취로 고통받는 중소기업을 위해 정부가 조정·중재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한 번 기술을 탈취 당한 업체는 결국 폐업의 수렁에 빠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기부는 기술분쟁 조정·중재제도를 통해 중소기업이 기술탈취 피해를 입었을 때 분쟁을 해결할 수 있도록 했다. 전현직 법조인과 기술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전문위원회가 분쟁 해결을 지원한다.
절차를 마친 233곳 중 조정이 성립된 중소기업은 57곳으로 25%에 불과했다. 중기부가 만든 조정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거나 갈등이 심해 조정안조차 마련하지 못한 사례가 각각 56건, 120건으로 훨씬 많았다.
결국 기술탈취 피해 중소기업은 소송을 선택해 시간과 비용이 더 커진다. 황혜진 법무법인 디라이트 변호사는 “지식재산권 소송 특성상 원고인 피해 중소기업의 입증 책임 문턱이 더 높고, 형사 고소를 해도 판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려 중소기업에는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황 변호사는 이어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보상금이 얼마되지 않는데다 장기간에 걸친 분쟁 기간 직원이 이탈하고 거래처가 끊기면서 사실상 회복하기 힘든 타격을 입는 중소기업이 대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중기부가 지난해 실시한 ‘기술보호 실태조사’에 따르면 기술침해 민사소송의 피해 기업 승소율은 32.9%에 불과했다. 기업당 평균 18억2000만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에서 받아들인 손해액 비율은 17.5%밖에 안 됐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중소기업 중에는 기술탈취를 당해도 대기업과의 법적 공방이 버거워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기술보호법이나 부정경쟁방지법 같은 법적 보호장치가 있지만 실제 보호받는 중소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기술탈취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예방이 중요하다. 박준영 이성국제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중소기업이 사전에 대비할 수 있도록 대기업이 선도적으로 상생 계약서나 상생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하고, 정부는 이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은 “기술탈취 피해로 중소기업이 폐업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며 “정부 조정·중재 철자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처벌 수위 강화 같은 실효성 있는 제도적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