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전 세계 기업의 화두가 되면서 AI가 자동화(automation)에 그칠지, 증강(augmentation) 효과로 이어질지 경영학계의 오랜 논쟁이 다시 소환됐다. 자동화로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할 것이란 1차원적 논쟁은 이미 철 지난 얘기다. 자동화와 증강 효과가 함께 나타나기 때문에 그만큼 AI 활용 능력이 기업의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 최근 트렌드다. 전미경영학회(AOM)에 모인 한국 경영학자들은 ‘AI를 장착한 기업은 초기 부진을 딛고 폭발적 성장을 한다’는 J커브 이론에 힘을 실었다.
27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85회 전미경영학회에선 AI가 화두였다. 4000개에 달하는 세션 상당수는 AI를 제목으로 달았고, AI를 입힌 세션에는 청중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27일(현지시간) 덴마크 코펜하겐 벨라센터에서 전미경영학회(AOM) 연례회의가 열린 가운데 한국경영학회가 주최한 세션에서 양희동 한국경영학회장(왼쪽 넷째), 이동렬 주덴마크 대사(왼쪽 다섯쩨)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임성현 기자
한국경영학회가 주최한 ‘AI 비즈니스 과제와 시사점’ 세션에선 참석자들이 AI 후발국으로서 기업의 성장은 물론 생존까지 담보할 AI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김양민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AI의 효과는 빠르게 적응한 기업, 특히 출발부터 AI로 설계된(Born-AI) 기업일수록 컸다”며 “AI의 투자수익률(ROI)은 J커브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과거 개인용 PC나 철도와 같은 혁신적 범용 기술이 확산될 때와 유사한 산업적 파급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국내 AI 기업의 대표적 예로 AI 진단 업체 ‘루닛’을 소개했다. 김 교수는 “루닛은 영상의학의 진단 정확도를 높이는 솔루션을 개발했다”며 “시가총액이 10억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하는 유니콘 기업이 됐다”고 평가했다. 루닛의 진단 솔루션을 채택한 병원 수가 2020년에 100곳에서 지금은 1만곳을 넘어섰다. 올해 1분기 매출은 1년 전보다 300% 가까이 급증했다.
AI를 빠르게 적용한 기업(Fast adopter)의 경우 AI가 기업 전반에 확산되기보다는 기술 전문가인 최고경영자(CEO)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역시 성과는 훌륭했다. 국내 광고회사인 ‘포도 미디어 네트워크’가 대표적이다. 대형 디지털 옥외광고판 등을 제작하는 이 업체는 처음에는 AI와 무관한 기업이었지만 직원들에게 AI 교육을 시킨 뒤 놀라운 성과를 이어 갔다. 김 교수는 “코딩은 물론 영어도 못하는 직원들이 강도 높은 AI 교육을 거친 이후에는 AI를 활용해 에러 디버깅, 코드 재작성, 데이터 분석 등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AI는 고객 지원, 컨설팅,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등에서 생산성을 크게 높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저숙련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이 더 가팔랐다.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AI 적용과 결과를 연구한 논문에 따르면 AI에 일정 수준 이상의 과감한 투자를 해야만 매출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는 “개별 기업 차원에서 AI 활용의 성과가 다를 수 있는데 그 차이를 만드는 핵심 요인이 바로 AI 교육”이라고 주장했다.
AI를 통한 업무 지시가 기업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이승혜 경북대 교수는 “AI 기반 지시는 불필요한 활동을 줄여주면서 임직원들이 더 가치 있는 업무에 에너지를 집중할 수 있도록 한다”며 “기업 생산성에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는 것이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다만 인간 기반 지시가 상호 간 신뢰 관계 구축에 용이하기 때문에 상호 보완적으로 활용돼야 한다는 것이 이 교수의 분석 결과다.
특히 AI와 인간 기반 지시를 조화하는 데 있어 ‘AI 넛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AI 넛지는 개인을 침해하지 않고 부드럽게 특정 방향으로 행동을 유도한다”며 “인간 기반 지시에 AI 넛지를 결합하면 시너지를 통해 생산성과 효율성을 함께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세션에는 신관식 KT 상무와 에디 장 LG CNS 상무가 참석해 각 사의 AI 기반 서비스의 우수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장 상무는 “AI 발달로 이제 완전 자율주행차처럼 기존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AX(AI transformation·AI 전환) 시대로 가고 있다”며 “기업들 입장에서 AI 에이전트를 몇 개 도입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고 기업들의 혁신을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