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매수 '선택의 시간' 앞에 선 MBK 파트너스

입력 : 2024.09.25 15:58:00
제목 : 공개매수 '선택의 시간' 앞에 선 MBK 파트너스

[인포스탁데일리=임재문 기자] 영풍·MBK 파트너스가 고려아연 공개 매수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공개매수 가격을 높일 수 있는 시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자본시장법은에 따르면 공개매수 기간 종료일 전 10일 이내에 정정신고서를 내면, 제출한 날부터 10일이 지난 날에 공개매수가 종료된다. 26일 정정신고서를 내면 10월 6일 공개매수가 끝나지만 10월 5, 6일은 휴일이어서 장이 열리지 않아 공개매수는 기존 종료일인 10월 4일 끝난다. 

따라서, 내일 26일까지 MBK파트너스가 가격 인상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면 공개매수 기간을 추가로 10일 연장한 뒤 또 다시 가격 인상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고려아연 측에 대응 시간을 더 벌어주게 되므로 가격을 높일 수 있는 마지노선은 26일인 셈이다. 

MBK파트너스가 제시한 공개매수가 66만원은 고려아연의 직전 3개월 평균 주가에 28% 할증된 가격이지만 주가는 단숨에 이를 넘어섰다. 한때 75만원대에 거래되기도 했으나 25일 오전 기준 70만원대에서 등락을 펼치고 있다. 여전히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 제시가 보다 주가가 비싼 상태여서 시장에서는 공개매수 인상을 전망하고 있다. 

MBK파트너스는 초기부터 공식적으로 “가격 상향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고 자금적 여유도 충분한 만큼 더 큰 배팅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80억달러(약 10조원)을 목표로 자금모집 중인 바이아웃 6호 펀드에서 재원 절반을 마련하고 NH투자증권으로부터 1조5000억원에 달하는 브릿지론을 빌려 활용한다면 최대 4조원가량을 고려아연에 쏟아부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MBK파트너스가 공개매수 가격을 인상해서 고려아연 경영권을 인수해도 ‘승자의 저주’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상장사 공개매수로 경영권 분쟁을 일으키면서 주가 변동성 을 부추겼다는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또한, 마련한 자금 2조원 중 약 1조5000억원을 내년 6월 만기, 최소 고정 금리 5.7%에 차입하기로 한 상태다. 9개월 후 만기까지 이자만 약 630억원에 달한다. 공개 매수가를 66만원에서 더 높게 올릴 경우 조달 비용 부담이 커져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진다.

MBK파트너스는 지난해 한국타이어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에 대해 이번 고려아연 때처럼 불투명한 지배구조 개선을 내세우며 공개매수를 진행했다. 공개매수 소식에 주가가 오르자 목표 가액을 기존 2만원에서 2만 4000원으로 올리기도 했다. 목표 수량을 전체 유통주식 수의 20.35%로 설정했지만 8.8%만이 공개매수에 응하면서 MBK파트너스의 공개매수는 ‘대실패’ 했다. 

재계 관계자는 “누가 승자가 되든, 경쟁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비용이 향후 고려아연 회사 자체에 반영돼, 자칫 미래 투자에 나설 현금을 끌어다 쓰는 등 회사 가치에 악영향을 주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했다.

한편, 고려아연 지분 7.6%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고려아연 주가가 경영권 분쟁으로 급등하면서 지분 일부를 덜어낼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보유한 고려아연 지분(7.6%) 가치가 1조1000억원(주당 70만원 기준)을 넘어섰다. 

장내 매도 시 지분율 감소 공시를 해야 해 부담과 MBK파트너스 편을 든 것으로 읽힐 위험이 있지만, 수익률 관점에서 움직이는 게 연금 입장에선 최선이라는 분석이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초 엔터테인먼트사인 에스엠 경영권 분쟁 당시에도 지분 절반을 장내 매도로 덜어낸 바 있다. 경영권 분쟁이 격화해 주가가 급등하자, 8.98%였던 에스엠 지분을 4.32%까지 줄여 1200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이러한 시장의 관측에 대해 국민연금 관계자는 “개별 종목 및 개별 투자건에 대해서는 시장과 기업 등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투자정책, 방향, 배경 등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관보다 개인이 눈독 '투기거래 과열 조짐'…기관투자자 움직임 미미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와 영풍이 고려아연의 공개매수를 진행하는 가운데 개인투자자들의 거래가 늘어난 걸로 분석된다. 공개매수의 타깃이 기관투자자인 점을 고려하면 아직까지 MBK파트너스·영풍의 전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모습이다. 주가가 이미 공개매수 가격을 넘어선 가운데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공개매수 가격 조정에 선을 긋는 터라 기관투자자의 유의미한 움직임이 나타날지 이목이 집중된다.

지난 24일 고려아연 주가는 69만9000원에 거래를 마쳤다. 공개매수가 시작된 지난 13일 55만원대에서 주가가 가파르게 올랐다. 지난 20일 장 중 75만3000원까지 상승해 52주 신고가를 새로 쓰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공개매수가 시작된 뒤 5거래일 동안 고려아연의 거래량은 198만2856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개인이 차지하는 매수 비중은 약 56.18%(111만4038주)로 나타났다. 즉, 최근 5거래일 동안의 거래 가운데 절반 넘는 매매가 개인투자자에 의해 진행된 셈이다. 

이는 공개매수를 진행한 MBK파트너스·영풍의 전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MBK파트너스와 영풍은 공개매수의 주된 타깃을 기관투자자로 잡았다. MBK파트너스·영풍이 설정한 공개매수 가격(66만원)이라면 기관투자자가 충분히 응할 거라는 판단이었다.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해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광일 MBK파트너스 부회장은 “기관투자자의 평균 취득 단가가 45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기관투자자 또한 프리미엄을 감안해 공개매수에 응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5거래일 동안 기관투자자의 매매는 42만9463주로 나타났다. 이 기간 동안 거래량의 21.6%다. 

이에 MBK파트너스·영풍의 전략과는 다른 흐름으로 공개매수가 진행되고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의 최근 주가가 급등하면서 개인투자자의 관심이 높아진 모습”이라며 “공개매수로 인해 매매가 과열이 되며 점차 투 기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연합인포맥스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신용잔고는 지난 24일 8만8946주(약622억)이다. 공개매수 시작 전인 지난 12일 신용잔고가 3만6006주(약200억)인 점을 고려하면 매우 가파르게 신용잔고가 불어났다. 신용잔고가 10억원을 웃도는 유가증권시장 종목 가운데 가장 큰 폭의 상승으로 집계됐다. 즉, 빚을 내어 투자하는 투자자가 급격히 늘어난 걸로 풀이된다. 또한, 개인 투자자들의 손바뀜도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공개매수가 시작된 뒤 5거래일 동안 고려아연의 거래량 56.18%를 차지하고 있으나, 순매수 기준 개인은 7만3468주를 순매세를 기록 했다.  

일각에서는 기관투자자의 움직임이 크지 않을 수 있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미 주가가 공개매수 가격을 웃돈 만큼 공개매수의 유인이 높지 않다는 의견이다. 다른 IB 업계 관계자는 “MBK파트너스·영풍 측이 공개매수 조정 가능성을 일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굳이 공개매수에 응할 필요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최근 고려아연 측과 MBK파트너스·영풍 측 사이의 법적 공방이 본격화되는 등 경영권 분쟁의 장기화 조짐이 보이고 있다”며 “주가가 더욱 오를 조짐이 보이기 때문에 현재 공개매수의 매력도는 더욱 낮아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 5거래일 간 기관투자자는 순매수 기준 7만6360주를 매수 했다.


고려아연 주요 주주. 자료=금융감독원. 사진=각사. 그래픽=인포스탁데일리


◇영풍·MBK 공개매수 타깃은 기관투자자…국민연금·현대차·LG화학·한화 등 핵심

고려아연의 공개매수가 본격화된 가운데 공개매수의 핵심 타깃인 기관투자자의 향방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해 현대차·LG화학·한화 등의 의사 결정에 관심이 집중된다. 경영권 분쟁의 판이 커지는 분위기 속에 기관투자자의 셈도 복잡해 질 거라는 전망이다.

영풍과 MBK파트너스가 밝힌 공개매수 타깃은 기관투자자다. 기관투자자의 평균 취득 단가가 45만원인 점을 감안했을 때, 공개매수 가격(66만원)은 충분히 매력적이라는 게 영풍·MBK파트너스 연대 측의 입장이다.

공개매수의 타깃을 기관투자자로 특정하면서 기존 주주들의 의사결정에 시선이 집중되는 분위기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을 비롯한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한 대기업들이 어느 편에 설 지에 시선이 쏠린다. 고려아연의 올 상반기 보고서에 따르면 국민연금공단은 고려아연 지분 7.83%를 보유하고 있다.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의 대립이 분명해진 가운데 이번 경영권 분쟁에 있어 주요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공단의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며 “이번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에 각계각층의 목소리가 나오는 터라 국민연금공단에서는 복잡한 손익 계산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뿐 아니라 고려아연이 자리한 울산시를 비롯한 지자체까지도 고려아연에 힘을 싣고 있다. 장 씨 일가와 손을 잡은 MBK파트너스를 적대적 M&A 세력으로 정하고 강력하게 대립하는 구도다.

고려아연의 지분을 들고 있는 대기업들에도 시선이 가고 있다. 현재 고려아연의 지분을 들고 있는 대기업은 △현대차그룹(지분율 5.05%) △㈜한화(7.75%) △LG화학(1.89%) 등이다. 이들 모두 사업적 제휴를 기반으로 한 전략적 협업 차원에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한화와 LG화학은 2022년 각각 이사회를 열고 고려아연과 자사주를 맞교환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각 사가 보유한 자사주를 시간외매매를 통해 거래했다.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배터리 전구체의 핵심 소재인 니켈로 고려아연과 의기투합했다. 2023년 현대차그룹은 고려아연과 △전기차 배터리 핵심 소재인 니켈의 공동 소싱 △가공 및 중간재 안정적 공급 △폐배터리 재활용을 비롯한 신사업 모색 등 니켈 밸류체인 전반에 관한 MOU를 체결했다. 더불어 지분 매입도 이루어졌다.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가 공동투자해 설립한 해외법인인 HMG Global이 고려아연이 단행한 제3자 배정 유상증자에 참여 지분 5%를 취득했다.

시장에서는 대기업들과 협업을 주도한 쪽이 최 씨 측인 만큼 이번 경영권 분쟁에서 최 씨 일가에 힘을 실어줄 걸로 내다보고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고려아연은 장 씨 일가와 최 씨 일가가 최근 적잖은 대립을 보이며 지분율 경쟁이 일었던 기업”이라며 “본래 장 씨 일가의 지분율이 우세했지만 최근 최 씨 일가가 역전한 모습이며 이러한 흐름의 핵심에는 최 씨 일가가 대기업들을 끌어들이며 지분율을 높인 전력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기업들 사이에는 암묵적인 끈끈함이 있기 때문에 단기간 내 스탠스를 바꾸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기존 대기업 주주들은 최 씨 일가에 편에 설 걸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임재문 기자 losthell@infostoc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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