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천억 손해봐도 개선점 찾으면 박수” 이건희의 배짱… 한국이 기다리는 ‘이재용 웨이’는 [송성훈 칼럼]

송성훈 기자(ssotto@mk.co.kr)

입력 : 2024.10.31 11:14:07
2004년 삼성전자 반도체 라인을 직접 점검하고 있는 이건희 선대회장. <사진제공 삼성전자>


“생산 현장에 나사가 굴러다녀도 줍는 사람이 없는 조직”

“3만 명이 만들고 6000 명이 고치러 다니는 비효율, 낭비적인 집단인 무감각한 회사”

1993년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에서 고(故) 이건희 선대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하면서 당시 삼성의 모습을 이렇게 진단했다. 참담함과 비장함이 진하게 묻어있다. 이후 그는 매순간 ‘이건희 모멘텀’을 이끌어면서, 동북아 변방에 있던 로컬기업을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품질경영에서 인재경영, 디자인경영, 창조경영으로 화두를 달리하며 돌파구를 찾아냈다.

이건희를 소환한 것은 최근 한국 산업계 전반의 위기감 때문이다. 후진 정치와 낡은 규제만 탓하기엔 너무나도 다급한 상황이다.

최근 이건희 선대회장 별세 4주기를 맞아 그의 목소리를 공유해본다. 수많은 어록이 있지만, 2003년 10월 반도체사업현장 방문때 유난히 길게 남긴 발언과 지시사항은 지금봐도 생생하다.

그는 당시 일본 메모리반도체업체들 부진을 이렇게 분석했다.

“사장·회장이 투자하는 것을 회피하고, 투자해서 실패하면 사장을 쫓아버리니 그 밑 사람이 기가 죽고, 그러니 투자를 안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다가 사장, 회장이 S급, A급 기술자를 스카우트하라고 고함치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삼성은 다를 것임을 자신했다.

“크고 어려운 투자를 빙빙 돌리지 말고, 책임이 나중에 자기에게 올까봐 겁내지 말고 경영자로서 결정하면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그게 월급장이의 가장 약한 점이고 단점인데, 그걸 초월하면 진짜 경영자가 되는 것이다. 몇천억 손해를 봐도 실수를 인정하고 개선할 점을 찾았다면 박수를 쳐줄 것이다”

삼성의 1등 마인드를 옅볼 수 있는 대목도 있다. 일본에선 투견을 훈련시킬 때 챔피언을 마치고 은퇴한 투견하고 싸움을 시킨다고 했다.

“(은퇴한 챔피언이 훈련견을) 잡아서 누를려고 하면 떼어놓고, 절대 지게 안한다. 2년간 훈련 시킨다. 그리고나서 한 번도 안 져본 개를 투견장에 내보내는데, 한 번도 안 졌다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감이 있어야 한다”

그러면서 그는 당부했다.

“여러분들에게 있어서 앞으로의 대적(對敵)이 무엇인가. 방심이다. 너무 똑같은 일, 똑같은 토론만 하면 긴장이 풀리고, 방심하다가 크게 한번 다치게 된다. 한번 다칠 수도 있는데 문제는 고치는 것이다. 방심에서 오는 병은 잘 안 고쳐진다. 제일 앞서왔고, 고칠 때 지도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꼭 부탁하고 싶다”

지금도 가슴뛰는 이건희 선대회장의 발언을 되짚어보는 것은 그를 따라하자는 의도는 아니다. 정답은 아니더라도 점검해봐야할 기본들을 충실하게 전할 수 있어서다.

산업계에 왜 이건희처럼 못하냐는 지적이 들린다. 특히 이재용 삼성 회장도 ‘프랑크푸르트 선언’ 같은 특단의 쇄신안을 발표해야하지 않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과연 그게 돌파구가 될지는 사실 조심스럽다. 글로벌 초일류기업을 서둘러 따라잡아야하는 ‘패스트팔로워’ 삼성 시절에는 이건희 모멘텀이 먹혀들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다를 수 있어서다.

1974년 삼성 내부 경영진의 극심한 반대에 맞서 사재를 털어 한국반도체를 인수했던 이병철 창업회장은 “내한테는 돈 냄새가 난다”며 반도체를 향한 무모한 도전을 시작했다. “마누라 자식 빼고 다 바꾸라”했던 이건희 선대회장은 1987년 취임사에서 다짐했던 세계 초일류기업을 일궈냈다. 이재용 회장 앞에 놓은 과제는 ‘사업보국’을 넘어 ‘인류’에 공헌할 수 있는 기업으로 발돋움해야할 과제를 안았다. 성급한 선언적 승부수보다는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는 이재용만의 방식으로 돌파해야한다. ‘이재용 웨이’를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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