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이민 120주년] 존재감 커진 한인…테킬라시장 첫 K브랜드

까다로운 테킬라 진입장벽 넘은 이종훈 대표 "현지 호평에 자부심"
이재림

입력 : 2025.01.05 07:01:03 I 수정 : 2025.01.06 04:27:30


한인 최초 테킬라 브랜드 만든 이종훈 대표(왼쪽)와 아란다스 그룹 CEO 및 관계자
[촬영 이재림 특파원]

(아란다스[멕시코 할리스코주]=연합뉴스) 이재림 특파원 = 에네켄 농장의 막일꾼으로 멕시코에 첫발을 내디딘 한인들은 120년간의 이민 역사 속에서 멕시코 사회의 각 영역에 뿌리를 내리고 존재감을 키우며 나름의 '성공 신화'를 써왔다.

대표적인 케이스 중 하나로 테킬라의 본고장 멕시코에서 K-브랜드로 도전장을 내민 '카사파나' 이종훈 대표(45)가 꼽힌다.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을 향해 차로 5∼6시간을 달리면 멕시코 전통 음악 밴드 '마리아치'를 낳은 할리스코주(州)에 닿는다.

멕시코 주요 도시 중 한 곳인 과달라하라를 품고 있는 이 지역은 정열의 나라를 대표하는 또 다른 상징, 테킬라의 본고장이기도 하다.

테킬라는 자란 지 7년 정도 되는 아가베(선인장과의 용설란)를 원료로 만드는 술이다.

할리스코를 비롯해 일부 특정 지역에서 나고 자란 아가베(블루 아가베)로 제조한 주류만 테킬라라는 명칭을 얻을 수 있을 정도로 까다로운 요건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텃세'도 만만치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일례로 멕시코에서는 현지 당국의 검사관이 매일 제조 공장에 출근 도장을 찍을 정도로 품질 유지를 중시하고 있다.

지난달 할리스코주 아란다스에 있는 아란다스 그룹의 테킬라 증류장에서 만난 이종훈 대표는 'K-테킬라'를 표방하며 멕시코 시장 공략에 나선 자신에 대해 "멕시코 사람이 한국에 정착해 전통 소주나 막걸리 브랜드를 만든 것과 같다"고 웃으며 자신에 대해 소개했다.

카사피나는 멕시코에 정식 등록된 테킬라 상표(브랜드)로, 한인이 현지에서 자신만의 테킬라 브랜드로 멕시코 시장에 도전장을 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우아한 집, '고급스러운 집'으로 번역할 수 있는 상표명에 대해 이 대표는 멕시코의 '미 카사 에스 투 카사'(Mi casa es tu casa·내 집이 네 집이라는 뜻) 문화를 언급하며 "좋은 사람을 집에 초대해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자리에 함께 곁들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멕시코 할리스코 아가베 농장
[촬영 이재림 특파원]

눈을 돌리면 사방천지에서 블루 아가베를 만날 수 있는 아란다스의 테킬라 증류장에 들어서니 달콤하면서도 묵직한 피냐 특유의 향이 후각을 깨웠다.

피냐는 블루 아가베 잎을 베어내고 남은 단단한 부분이다.

증류장 직원들은 피냐를 찐 뒤 압착해 섬유질에 밴 당분을 짜낸 즙으로 테킬라를 만드는 일련의 작업을 순서에 따라 진행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잘 증류된 테킬라를 숙성시키는 참나무통(오크 배럴) 수천통이 그늘진 보관 시설 안에 줄지어 늘어서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아란다스 증류장 측과 협의를 통해 테킬라를 제조하는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 방식으로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증류장 곳곳을 소개해준 니콜라스 마르티네스 아란다스 그룹 최고경영자(CEO)는 "카사피나는 우리 증류장 신생 대표 브랜드 중 하나"라며 "훌륭한 작품"이라고 강조했다.

테킬라 숙성실의 오크 배럴
[촬영 이재림 특파원]

실제 카사피나는 부드러운 목 넘김과 풍미로 테킬라 평가에 깐깐한 북미 현지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미국 뉴욕 주류 품평회(New York International Spirits Competition)와 샌프란시스코 주류 품평회(San Francisco World Spirits Competition)에서 잇따라 상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품질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종훈 대표는 "멕시코만큼이나 거대 시장인 미국에서 호평받은 것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며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본고장의 높은 진입장벽을 넘어 테킬라를 론칭하기 위해 노력한 부분이 헛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라고 했다.

테킬라 마에스트로와 원액 품질 확인하는 카사피나('CASA FINA') 이종훈 대표
[촬영 이재림 특파원]

이 대표는 어릴 때 부모를 따라 아르헨티나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20여년 전 멕시코에 정착했다.

멕시코시티 내 자발적 봉사단체에서도 활동하는 그는 "낯선 환경에 정착해 뿌리를 내린 이민 1세대의 노고에는 비교할 수 없겠지만, 근면하고 모범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첫발을 내디딘 양질의 K-테킬라로 멕시코 주민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고 힘줘 말했다.

지난해 말 온라인을 중심으로 시범적으로 대중과 만난 한인 첫 테킬라는 올해 한인 이주 120주년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콧대 높은' 주류 오프라인 시장을 두드린다.

walde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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