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세가 주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전국으로 확산되는 역전세 사태와 부실 위험을 키우고 있는 미분양 주택,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으로 여전히 부동산 시장이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한국은행이 고금리 여파에 따른 충격에 이어 한국 경제의 또 다른 뇌관으로 경고하고 나선 이유다. 주택 시장 부진 장기화를 막기 위한 규제 완화와 조정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한은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평균 전세가격이 지난해 3월보다 최소 10~20%까지 떨어진 상황이 지속되면 전세 임대 116만7000가구 중 4.1~7.6%는 보유한 자산을 처분하고 추가로 빚을 내더라도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세가격이 지난 3월 수준을 유지하면 임대가구가 세입자에게 반환해야 할 보증금 규모가 24조2000억원인 상황에서 전세계약 종료 시 약 8만8000가구에 살고 있는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일 염려가 있는 것이다. 한은 관계자는 "지난 3월 기준 전세금은 1년 전보다 약 12% 하락한 상황인데 부동산 시장 반등이 더디면 보증금을 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속출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비수도권을 중심으로 미분양 주택 물량이 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민간아파트의 분양물량 소진율은 작년 84.1%에서 올해 4월까지 78.9%로 더욱 떨어졌다. 미분양 주택이 쌓이면 건설사의 재고 자산과 미수금을 늘려 재무건전성을 저하시킨다. 지난해 건설사의 평균 미수금은 234억7000만원으로 전년보다 34.1%나 올랐다. 한은은 "과거 미분양 주택 급증 시기를 살펴보면 미분양 주택이 증가한 뒤 3년의 시차를 두고 건설사 부실 위험이 크게 높아졌다"고 경고했다.
미분양 주택으로 대표되는 주택 시장 부진은 부동산 PF 대출 부실로 직결된다는 문제도 있다. 작년 말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과 고정 이하 여신 비율은 각각 1.19%, 1.25%로 2021년 이후 상승 중이다. 특히 저축은행은 각각 2.05%, 2.86%로 여타 금융기관보다 높다.
주택 시장 부진은 가계의 재무상태도 악화시켰다. 집값이 하락하며 가계 평균 자산은 지난 3월 말 기준 3억9000만원으로 2021년 말보다 5000만원 하락했다. 자산 대비 부채비율(DTA)이 100%를 넘고,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초과하는 고위험 가구 비중도 같은 기간 2.7%에서 5%로 뛰었다. 김인구 한은 금융안정국장은 "주택 시장 부진 장기화로 부실이 확대되지 않도록 실수요자 위주의 규제 완화, 분양가 조정, 보증금 미반환 리스크에 직면한 세입자 보호 방안이 필요하다"며 "부동산 PF 대출 관련 위험 사업장에 대해선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국내 금융 시스템의 중장기적 취약성을 뜻하는 금융취약성지수(FVI)는 1분기 48.1로 작년 4분기보다 2.1포인트 올랐다. 올해 들어 통화긴축 완화 기대감이 커지고 가계대출이 증가하면서 금융 불균형이 심화된 것이다. 지난달 5대 은행 가계대출은 1년5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늘어나는 빚의 '질'이 좋지 않은 것도 문제다. 자영업자 대출은 1분기 1033조7000억원으로 2019년 말보다 50.9%나 치솟았다. 자영업자 대출은 비자영업자에 비해 부동산 가격 하락에 영향을 많이 받고 일시 상환 대출 비중이 높아 리스크가 큰 것으로 평가받는다.
또 대출이 취약차주나 비은행권 대출자 등을 중심으로 늘어난 것도 위험요소다. 한은의 분석 결과 올해 말 자영업자의 연체 위험률은 3.1%까지 오르고, 취약차주의 연체 위험률은 18.5%까지 치솟을 것으로 조사됐다. 한은은 "자영업자 대출 중 잠재 부실 위험이 높은 대출의 연체 리스크를 적절한 수준에서 관리하기 위해서는 단기적으로 취약차주에 대해 새출발기금 등 채무 재조정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