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경영권 방어엔 역부족 …"美·日처럼 '포이즌필' 필요"

강두순 기자(dskang@mk.co.kr), 조윤희 기자(choyh@mk.co.kr)

입력 : 2023.02.16 17:44:13 I 수정 : 2023.02.16 19:25:32
황금낙하산 챙기는 기업들
3%룰 포함 상법 개정으로
주주요구 2년만에 5배 급증
배당·자사주 확대는 긍정적
기업 방어수단 보장 미흡
"불균형한 제도 방치 안돼"






다음달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주주행동주의자들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배당 확대와 함께 분리 상장, 이사회 참여 등 다양한 주주 제안을 쏟아내는 모습이다.

적극적인 주주 활동으로 배당 확대, 지배구조 개선 등 주주친화 정책을 이끌어낸다는 점에선 주주행동주의 활동이 긍정적이란 평가다. 하지만 적대적 인수·합병(M&A) 등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위협하는 공격에 대한 기업 방어 수단은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경영 행태를 지적해 시장의 주목을 받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은 올해 주총에서 은행계 금융지주들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특히 JB금융지주에 주주환원 정책이 부족하다며 주당 900원 결산 배당을 요구하고, 추천 인사를 사외이사로 추가 선임하는 주주제안을 했다.

또 다른 행동주의 펀드인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CP)와 안다자산운용은 KT&G를 대상으로 한국인삼공사 분리 상장을 제안했다. 태광산업, BYC의 주요 주주인 트러스톤자산운용은 배당 등 주주환원 확대와 이사회 선진화를 통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과거 국내 시장에서 활동하던 행동주의 펀드들은 엘리엇, 소버린, 헤르메스, 칼 아이컨 등 외국계가 주를 이뤘으며 대부분 '기업사냥꾼' '먹튀' 등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주식시장 저변이 확장되는 과정에서 토종 행동주의 펀드들이 속속 등장하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들은 적극적인 주주 권리 행사에 나서 배당 확대와 지배구조 개선 등 순기능을 앞세워 소액주주들의 지지를 얻게 됐다.

특히 2020년 말 개정된 상법은 행동주의펀드들에 날개를 달아줬다는 평가다. 당시 개정안은 상장회사 주주제안을 6개월 이상 지분 보유 요건 없이 가능하도록 개정하고 3%룰을 강화하는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등의 내용을 담은 점이 대표적이다.

실제 인사이티아 집계에 따르면 행동주의 주주의 공개적인 요구를 받은 건수가 상법 개정 전 2020년 주총에서는 10건, 지난해 주총에서는 47건으로 무려 5배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행동주의 펀드는 국내 주식시장이 주주가치 제고보다 기존 지배 주주 이익을 우선시해왔다는 세간의 인식 속에 선진적 주주환원 정책 도입에 앞장서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불식된 것은 아니다.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적은 지분율로 여론몰이를 하며 기업 경영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한 이들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며 당장의 주가 상승만 기대하는 일부 투자자들의 인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대해 대표적 주주행동주의자인 강성부 KCGI 대표는 "행동주의 펀드가 제 역할을 했는지 여부는 결국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기업가치 증대에 얼마나 기여를 했는지에 따라 판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KCGI가 거버넌스 문제를 제기해 대주주의 경영권 매각을 촉발시킨 오스템임플란트의 경우도 그렇고 최근 이슈가 된 SM엔터테인먼트도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가치 훼손 원인으로 지목됐던 라이크기획과의 계약 조기 종료를 이끌어내는 등 기업가치 제고와 거버넌스 문제 개선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나치게 행동주의 펀드에 유리할 수 있는 상법 등 규제 불균형 문제로 인해 기업들이 장기 발전과 성장을 훼손할 수 있는 행동주의자들 요구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등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행동주의자들이 적극 활용하고 있는 주주제안 제도의 경우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엄격하게 제한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직접적으로 이사나 감사위원 후보를 추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주주총회 소집청구권 제도도 마찬가지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의 경우 주주총회 소집을 청구할 수 있는 주주 권한을 엄격한 요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미국 모범회사법의 경우 25%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야 소집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일본 역시 3% 이상 주식을 6개월 이상 보유한 경우에 한해 청구가 가능하다. 반면 한국은 3% 이상 주주이거나 1.5% 지분율을 6개월 이상 보유하면 자격이 주어져 상대적으로 지나치게 완화된 규정이 적용되고 있다.

최대주주 의결권을 제약한 제도를 도입한 나라 역시 주요 국가 중 한국이 유일하다는 지적이다. △감사(위원) 선임 시 3% 의결권 제한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집중투표제 정관 변경 시 3% 의결권 제한처럼 미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보니 힘든 제도가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최대주주를 압박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이에 반해 국내 기업들은 효율적인 방어 수단이 없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주요국은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권을 공격할 경우 차등의결권, 황금주, 포이즌필 등 방어 수단이 제도적으로 마련돼 있다. 반면 한국은 이 중 단 한 가지도 상법상 허용되지 않았다.

그나마 중견·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정관상 규정으로 황금낙하산, 초다수결의제, 시차임기제, 이사자격제한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대기업의 경우 효과가 미미하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주주제안권 등 소수주주권 관련 제도를 개선해 주주행동주의자가 기업의 잠재성장률, 즉 기업의 본원적 가치를 최대한으로 키우는 데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재혁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정책1본부장은 "기업 지배권에 관한 불균형한 제도를 방치하면 경영권 분쟁으로 기업의 자원과 시간이 소모되고, 결국 국내 자본시장 발전에도 부정적 영향이 우려된다"며 "경영권 방어 관련 제도를 개선해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는 균형 잡힌 제도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용어

황금주:보유한 주식의 수량이나 비율에 상관없이 기업의 주요 경영 사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주식.

포이즌필:적대적 M&A나 경영권 침해 시도가 발생하는 경우에 기존 주주들에게 시가보다 싼 가격에 지분을 매입할 수 있도록 미리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

[강두순 기자 / 조윤희 기자]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

07.12 22:07 더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