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연령 높여 아낀 나랏돈, 정년·연금 개혁 '마중물' 될까
노인 연령 상향 올해 다시 추진…재정 절감 규모·활용 방향 주목
민경락
입력 : 2025.01.20 06:03:02
입력 : 2025.01.20 06:03:02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송정은 기자 = 정부가 올해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을 다시 추진하기로 하면서 현실화 가능성에 관심이 쏠린다.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은 과거에도 평균 수명 연장, 사회적 인식 변화 등을 이유로 수차례 추진됐지만 높은 노인 빈곤율 탓에 지지부진했던 중장기 과제다.
전문가들은 노인 연령 상향은 더 미룰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라며 재정 절감분은 고령화 사회 전환을 위한 '마중물'로 재투자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 노인 연령 올려야 하지만…높은 노인 빈곤율 '발목' 20일 관계 당국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올해 주요 업무추진 계획으로 노인 기준 연령 상향을 제시하고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노인복지법 등에 따른 우리나라 노인 기준 연령을 현행 65세보다 더 높이겠다는 것이다.
노인 기준 연령 조정 방침은 평균 수명 연장, 고령화, 사회적 인식 등 최근 변화상을 반영한 것이다.
노인 기준 연령이 올라가면 정년 연장 논의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대한노인회가 노인 기준 연령을 현재 65세에서 75세로 단계적으로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정부에 건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하지만 노인 연령 기준이 올라가면 그만큼 복지 혜택을 받는 노인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서 사회 안전망 사각지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세계 주요국 중 최고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한국개발연구원(KDI)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처분가능소득으로 계산한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3.4%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OECD 평균 노인빈곤율(13.1%)의 세 배를 웃도는 수준이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질 좋은 일자리와 멀어지는 노동시장 구조는 노인의 빈곤 탈출을 막는 주된 장애물로 꼽힌다.
KDI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보고서 '직무 분석을 통해 살펴본 중장년 노동시장의 현황과 개선방안'에 따르면 연령이 높아질수록 분석·사회·서비스 직무 성향은 낮아지고 반복·신체 직무 성향은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가 많은 노인들이 상대적으로 저숙련·저임금 일자리에서 더 많이 일한다는 의미다.
보고서는 "분석·사회 직무 수행에 필요한 능력이 있는데도 해당 일자리에 채용되지 못하는 중장년층 근로자가 존재한다는 뜻"이라며 "중장년층이 보유한 인적자원이 충분히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65세는 '노인'일까?…"노인 연령 상향은 선택 아닌 불가피한 현실" 노인 상당수가 상대적으로 보수가 낮은 공공 일자리에 의존하는 점도 열악한 노인 일자리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지난 달 정부의 직접 일자리 사업이 종료되자 60세 이상 실업자가 17만7천명(49.2%) 급증하면서 전체 실업률(3.8%)을 끌어올렸다.
공공일자리에 의존한 노인 고용의 취약함이 그대로 드러난 셈이다.
노인 일자리 질을 높일 수 있는 대안으로 정년 연장이 꼽히지만 비용 부담을 이유로 기업들은 소극적인 모습이다.
정년을 연장하면 청년층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하다.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도 늦춰지면서 소득 공백 불안은 더 커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만 62세로 2033년부터는 만 65세로 늦춰진다.
그간 노인 연령 상향이 수차례 추진됐지만 매번 논의가 제자리걸음 한 것은 이런 현실과 관련이 깊다.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2월 발표한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 60~65세인 노인 기준 연령을 65~70세로 높이는 방안을 담았지만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했다.
노인 기준 연령 상향 문제는 문재인 정부가 2019년 9월 발표한 '인구구조 변화 대응 방안'에 다시 담기면서 주목받았지만 결론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노인 연령 상향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는 동안 '65세=노인' 기준과 현실 간의 간극은 더 벌어지고 있다.
노인 연령 상향은 이제 더 이상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닌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지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 연간 6조 넘는 재정 절감 효과…'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나 평균 수명 연장, 노인 빈곤 문제, 정년 연장 등 노인 연령 상향을 둘러싼 고차 방정식은 단순히 '복지 문제'로만 봐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노인 연령 상향은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교육 시스템 개선 등 전 사회 영역과 관련이 있는 만큼 중장기적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인 기준 연령을 상향해 기대할 수 있는 재정 절감분을 '복지 확대'가 아닌 '초고령 사회 전환'을 위한 마중물로 재투자해야 한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령 줄어든 혜택을 다시 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정년 연장을 유도해 노인 일자리 질을 높이고 연금 개혁 등 사회 안전망을 보강하는 데 투자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합뉴스가 입수한 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상향할 경우 2023∼2024년 기준 연평균 기초연금 지출 절감분은 약 6조5천억여원 수준인 것으로 분석됐다.
일자리·사회활동지원 지출까지 포함하면 재정 절감분은 연간 7조원을 넘어선다.
올해 노인 관련 예산(27조4천913억원)의 23% 수준으로, 아동·보육 예산(5조5천억원)을 웃돈다.
최근 역대급 세수 펑크와 긴축 재정 기조 속에서 초고령 사회 전환을 준비하는 의미 있는 종잣돈이 될 수 있는 규모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 재정 지출을 줄이고 절감분을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지 구체적인 방향을 정하려면 충분한 사회적 공감대가 필수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상림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 책임연구원은 "초고령 사회 논의가 복지 확장으로만 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라며 "노인 연령 상향은 정년 연장, 재교육 시스템 마련 등 기존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 문제와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rock@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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