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참사 한 달, 본격 시작된 '분석의 시간'…남은 쟁점은

항철위, 원인 밝힐 '거대 퍼즐' 맞추기…사고 직전 8분 초 단위 재구성조류 충돌 영향·복행 판단 배경·공항 시설·시스템 적정성 조사 지속국토부, 공항 시설·항공사 전반 점검…4월 항공 안전 혁신방안 발표
임성호

입력 : 2025.01.29 06:00:01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 방위각 시설 둔덕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임성호 기자 =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29일로 한 달을 맞았다.

사고 직후부터 현장에서 이뤄진 초기 현장 조사는 지난 20일부로 마무리됐다.

꼬리날개와 엔진을 비롯한 동체 잔해 등도 모두 정밀 조사가 가능한 별도 장소로 옮겨졌다.

이제는 그간 확보한 정보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분석의 시간'에 접어든 것이다.

최소 수 개월 이상의 지난한 분석과 검증이 필요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고 원인을 둘러싼 의문을 해결할 실마리가 점차 나타날 것으로 관측된다.

향후 조사는 조류 충돌로 인한 사고기 엔진 손상이 어떻게 랜딩기어 미작동과 블랙박스 기록 중단으로 이어졌는지 밝히는 데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기가 충돌한 공항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규정에 맞게 설치됐는지 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항공안전 담당 주무부처인 국토교통부는 사고 조사와 별개로 공항 시설과 항공사 등을 전반적으로 점검 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종합적인 항공 안전 혁신 방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사고 항공기 잔해 수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블랙박스 4분 '먹통'·양쪽 엔진 조류 충돌 확인…전방위 조사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국토부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항철위)는 그간 거대한 퍼즐 조각을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꿰맞춰 나가는 것과 유사한 전방위 조사 작업을 이어왔다.

항철위 조사관들은 지난달 29일 사고 직후 현장으로 달려갔다.

당일 항공기 잔해에서 우선 비행기록장치(FDR)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 등 블랙박스를 확보했다.

이후 이달 초까지 인양 작업을 거쳐 엔진과 랜딩기어, 조종 계통 스위치 등 주요 부품을 수거해 정밀 분석에 착수했다.

또 운항·정비 및 관제 자료를 확보하고, 공항 폐쇄회로(CC)TV와 현장 목격자의 촬영물, 인터뷰 등을 통해 사고 직전의 상황을 시간대별로 동기화하는 데 역량을 모았다.

항철위는 사고 사흘째인 지난달 31일부터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및 연방항공국(FAA), 기체 제작사인 보잉과 약 2주간 합동 현장 조사를 진행했다.

지난 14일부터는 엔진 제작사인 프랑스 항공사고조사위원회(BEA)와도 공조하고 있다.

[그래픽] 제주항공 사고기 블랙박스 충돌 4분 전부터 기록 정지
(서울=연합뉴스) 이재윤 기자 = 제주항공 사고기의 블랙박스인 비행기록장치(FDR)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 둘다에 충돌 전 마지막 4분간의 기록이 저장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항공 운항 전문가들은 사고기가 조류와 충돌한 이후 양쪽 엔진이 고장 나 기체가 전원 셧다운(공급 중단) 상태에 빠지면서 기록이 끊겼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yoon2@yna.co.kr X(트위터) @yonhap_graphics 페이스북 tuney.kr/LeYN1

예상치 못한 복병도 있었다.

항공사고 원인 규명에 핵심적 역할을 하는 블랙박스가 매우 이례적으로 사고 직전 기록이 중단된 것이다.

CVR의 음성 파일 녹취록을 작성해 보니 항공기 충돌 약 4분 전부터 음성 기록이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NTSB와 교차 검증한 결과 CVR과 FDR 모두에 충돌 직전 4분 7초간의 기록이 처음부터 저장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항철위는 블랙박스 대신 확보 가능한 모든 직간접 증거물에 대한 전방위 조사를 통해 원인 규명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사고 당일 항공기와 무안공항 관제탑과 처음으로 교신한 오전 8시 54분 43초부터, 충돌이 일어난 오전 9시 2분 57초까지 8분 14초간은 초 단위로 재구성해 들여다보고 있다.

항철위는 "확인할 수 있는 범위의 FDR, CVR 및 관제 교신 기록 등 자료를 시간대별로 동기화해 분석 중"이라며 "사고기의 운항 상황 및 외부 영향, 기체·엔진 이상 유무 등을 파악하기 위한 작업"이라고 밝혔다.

지난 4일 진행된 수색 작업과 엔진 인양 작업
[연합뉴스 자료사진]

◇ 엔진 꺼지고 무슨 일 있었나…'둔덕' 설치·조류 퇴치 적정했나 짧아도 몇 달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는 후속 정밀 조사 과정에서는 사고의 1차 원인으로 지목되는 조류 충돌이 기체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가 보다 명확하게 드러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사고기는 조류와 충돌한 이후 양쪽 엔진이 고장 나면서 전원 셧다운(공급 중단) 상태에 빠졌으리라는 것이 다수 전문가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정윤식 가톨릭관동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사고 당시 두 엔진이 모두 고장 나면서 일단 유압 계통에 이상이 생겨 랜딩기어가 작동되지 않았고, 셧다운되면서 전기로 랜딩기어를 내릴 수 있는 장치도 먹히지 않았을 것"이라며 "수동으로 랜딩기어를 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항공기의 블랙박스 기록과 전파 기반 항공기 추적 시스템인 ADS-B는 모두 오전 8시 58분 50초를 마지막으로 작동을 중단했다.

항공기의 전원이 나가면서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장치가 한꺼번에 먹통이 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조종사가 조류 충돌로 인한 비상 선언(메이데이)을 한 뒤 복행(착지하지 않고 고도를 높이는 것)한 배경을 밝히는 일도 숙제로 꼽힌다.

사고 기종인 B737-800의 조종사 교육 매뉴얼에는 착륙 시도 도중 새 떼와 부딪히면 복행하기보다는 그대로 착륙할 것을 권장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근영 한국교통대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항공기 상태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조류 충돌 이후에는 계속 착륙을 시도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곧바로 내리지 못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가창오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사고가 발생한 무안공항의 로컬라이저 등 시설과 시스템상 문제에 대해서도 조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항철위 관계자는 "로컬라이저가 위치한 (콘크리트) 둔덕이 규정에 맞게 설치됐는지, 사고의 피해에는 얼마만큼의 영향을 미쳤는지 분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콘크리트 둔덕의 시공과 보강 경위를 비롯해, 이 둔덕과의 충돌이 항공기 폭발에 미친 영향 등을 면밀히 살핀다는 방침이다.

또 무안공항의 조류 충돌 예방 대책 등이 적절했는지도 따져볼 계획이다.

사고기는 겨울 철새인 '가창오리'와 충돌한 것으로 조사됐는데, 이는 겨울철 무안을 비롯한 국내 갯벌과 습지 등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철새다.

무안공항은 주변에 철새 서식지가 4곳이 있고, 실제 조류 충돌 발생률은 지방 공항 중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하지만 조류 퇴치반 규모는 가장 적은 수준인 4명에 불과했고, 사고 당시에는 현장 근무자가 1명뿐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항철위 관계자는 "전문적인 조사·분석이 필요한 로컬라이저 둔덕 및 조류 영향 부분은 별도의 용역을 통해 연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토부, 공항시설 안전 개선방안 발표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후속 대책으로 전국 공항에서 항공기 비상 착륙 때 우려되는 위험 요소를 전면적으로 손본다.무안국제공항을 비롯해 활주로 근처에 '위험한 시설물'이 발견된 전국 7개 공항에 대해 우선 안전 개선에 나선다.활주로 종단 안전구역이 국내외 권고 기준보다 짧은 경우 이를 늘리거나 항공기 제동 효과를 내는 특수 시설 도입을 검토한다.사진은 김해국제공항 로컬라이저.2025.1.22 [국토교통부 제공.재판매 DB금지] photo@yna.co.kr

◇ 국토부, 항공 안전 혁신 추진…"소 잃었지만, 외양간 확실히" 국토부는 이번 참사의 후속 대책으로 항공 분야 전반의 안전 체계 혁신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국토부는 우선 사고 이후 전국 공항의 모든 시설에 대해 특별안전 점검을 거쳐 무안공항을 비롯해 총 7개 공항의 9개 방위각 시설을 개선하기로 했다.

이들 시설은 기초대를 지하화하거나 부서지기 쉬운 경량 철골 구조로 교체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개선 완료 시점은 올해 상반기 내, 늦어도 연내 완료를 목표로 서두른다.

가덕도신공항을 비롯해 현재 건설이 추진 중인 지방 신공항은 설계 단계부터 안전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보다 근본적인 공항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공항 시설 설치·운영 기준 등 제도와 안전관리 체계도 개선한다.

국토부, 공항시설 안전 개선방안 발표
(서울=연합뉴스) 정부가 무안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의 후속 대책으로 전국 공항에서 항공기 비상 착륙 때 우려되는 위험 요소를 전면적으로 손본다.무안국제공항을 비롯해 활주로 근처에 '위험한 시설물'이 발견된 전국 7개 공항에 대해 우선 안전 개선에 나선다.활주로 종단 안전구역이 국내외 권고 기준보다 짧은 경우 이를 늘리거나 항공기 제동 효과를 내는 특수 시설 도입을 검토한다.사진은 인천국제공항 로컬라이저.2025.1.22 [국토교통부 제공.재판매 DB금지] photo@yna.co.kr

조류 충돌 예방을 위해서는 전국 공항 주변의 조류 유인 시설을 조사해 다음 달 중 개선 계획을 발표할 예정이다.

또 이달 말까지는 전국 공항의 18개 관제 시설에 대한 특별 안전 점검을 통해 관제사 인력난 등의 문제를 살핀다.

저비용항공사(LCC)를 포함한 항공사에 대한 종합 안전 점검도 실시한다.

항공사들의 안전 기준 준수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강력히 제재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는 공항과 항공사 등 분야별 안전 점검 결과를 바탕으로 오는 4월까지 항공 안전 혁신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14일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대책을 논의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토부는 '소는 비록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확실히 고치자'라는 각오가 있다"고 말했다.

sh@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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