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투자압박에…韓제조업, 대기업·중기 분업 생태계 와해 우려"

오수현 기자(so2218@mk.co.kr),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입력 : 2025.02.04 17:16:10 I 수정 : 2025.02.04 19:14:19
이시욱 대외硏 원장의 경고…7일 경제학회 학술대회서 발표
관세전쟁에 대미투자 급증
전기차·반도체 등 핵심기술
美로 통째로 옮겨갈 가능성
美현지법인 본사 배당금을
국내 투자·고용에 활용해야
정부 "비상수출대책 강구"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주요 수출기업들의 생산 거점이 포진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위협이 이어지면서 한국 핵심 산업 생산지의 미국 이전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등 제조업 핵심 산업의 기술과 기반이 통째로 미국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원장은 4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트럼프 정부의 미국 현지 투자 압박과 관련해 "한국 주요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가 늘면서 수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분업 구조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이 원장은 "조 바이든 정부가 미국 인근 국가로 투자를 유도하는 니어쇼어링과 프렌드쇼어링을 강조했다면, 트럼프 정부는 미국 현지에 투자하는 온쇼어링을 압박하고 있다"면서 "결국 우리 기업들은 미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소재·부품까지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미국 현지 투자 활성화 흐름이 국내 산업 생태계를 약화시킬 가능성이 있는 만큼 한국 내 제조 생태계를 지원할 세제·보조금·규제 완화 등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오는 7일 대전 한남대에서 예정된 한국경제학회 학술대회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기조연설을 할 예정이다.

한국의 미국 투자 규모 확대는 최근 수년간 가속화되는 추세다. 2015년 70억5000만달러이던 대미 투자 규모는 2022년 277억7000만달러로 급증했다. 한국 기업들의 미국 현지 신설 법인 수도 2020년 521개에서 2022년 687개로 늘었다.

특히 한국의 대미 투자가 제조기업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한국 제조업의 대미 투자 규모는 2020년 23억6000만달러에서 2022년 80억3000만달러로 크게 늘었다. 2017년 7.2%에 불과했던 대미 투자 내 제조업 비중도 2022년 28.9%로 급등했다.

이근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는 "트럼프 2기 정부는 관세를 많이 부과하는 방식으로 세계 각국의 대미 투자를 유도하려고 한다"며 "우리는 대미 수출 흑자 규모가 큰 터라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려야 해 결과적으로 국내 생산 규모가 줄게 되면서 한국이 러스트벨트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과거 한국 기업들의 중국 현지 생산공장 건설 러시와는 다른 양상이라는 진단이다.

허정 서강대 교수는 "과거 중국 내 생산공장 건설은 한중 간 기술 격차가 있었기 때문에 핵심 기술은 현지로 이전하지 않아도 됐다"며 "하지만 대미 투자는 전기차, 반도체 등 첨단산업의 핵심 기술이 함께 이동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과거와는 양상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미국으로의 제조업 거점 이전이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허 교수는 "미국 현지 법인의 이익을 배당을 통해 한국으로 이동시켜 기업들이 국내 투자와 고용을 지속하는 자본 리쇼어링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며 "미국 투자와 국내 투자가 함께 선순환할 수 있는 제도적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 해외 현지 법인이 국내 본사로 배당할 경우 현지 과세당국에 납부하는 배당세에 대한 세액공제 등 세제 지원 필요성이 제기된다. 예컨대 현대차 미국법인이 본사로 배당할 때 미국 과세당국에 납부하는 세금만큼 환급해주는 식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도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따른 대응책 마련에 속도를 내고 있다.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대외경제현안 간담회를 갖고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최 권한대행은 "멕시코·캐나다에 대한 관세 조치가 1개월간 유예되었으나 금번 관세 부과 조치와 각국의 대응이 이어질 경우 우리 수출과 경제 전반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며 "향후 미국의 관세 조치가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최 권한대행은 "정부는 우리 경제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가능한 수단을 모두 강구해 체계적으로 대응해 달라"고 주문했다.

정부는 우선 수출 최전선에 있는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비상수출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수출기업들에 대한 무역금융 지원을 확대하고,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물류·마케팅 활동 지원, 수출 인증 간소화 방안 등을 담을 계획이다. 또 미국의 관세 부과 대상국에 진출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헬프데스크'를 운영하고 불가피한 생산 조정으로 국내로 되돌아오는 '유턴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도 마련하기로 했다.

[오수현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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