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물가 상승이 이어지는 데다 외식 물가가 급등하면서 물가 공포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관세폭탄에 따른 환율 변수가 수입물가를 자극할 수 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남지역 대형 산불에 따른 농축산물 수급 불안정으로 생활물가가 다시 뛰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먹거리 품목별 수급 점검과 공공요금 인상 자제를 통해 물가 방어에 나서겠다는 입장이다.
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16.29로 1년 전보다 2.1% 올랐다. 물가 상승률은 작년 9월부터 4개월간 1%대를 유지했지만, 연초 국제유가 상승으로 1월(2.2%), 2월(2.0%)에 이어 지난달까지 3개월째 2%대를 기록 중이다.
지난달엔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가 상승하며 최종 물가를 끌어올렸다. 가공식품 물가는 3.6% 상승했는데, 2023년 12월 이후 15개월 만에 최대폭 증가다. 가공식품 물가는 올해 들어 식품기업들의 가격 인상이 줄을 이으며 3개월 연속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빵(6.3%), 커피(8.3%) 등 원재료 가격이 오른 품목들의 인상폭이 두드러졌고 김치(15.3%), 햄·베이컨(6.0%) 등도 큰 폭으로 올랐다.
외식 물가도 상승폭을 키우고 있다. 지난달 3% 인상돼 2개월 연속 3%대다. 생선회(5.4%), 치킨(5.3%) 등이 많이 올랐는데 각각 19개월, 13개월 만에 오름폭이 가장 컸다. 여기에 전기·가스·수도요금도 3.1% 상승했고, 등록금 인상 여파에 지난달 사립대 납입금은 5.2% 올랐다.
다만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가격은 상승폭이 2월 6.3%에서 3월 2.8%로 내려갔고, 농축수산물은 0.9% 상승하는 데 그쳤다.
1분기 물가 상승률은 2%로 일단 한국은행의 물가 목표치에 있지만 잠재적 상승 요인이 이어지며 물가를 압박하고 있다. 이두원 통계청 경제동향심의관은 "이달에도 라면이나 맥주 등 일부 가공식품 출고가가 인상된 만큼 수개월에 걸쳐 소비자물가에 추가적으로 반영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경북 지역 대형 산불이 농축산물 공급에도 차질을 줄 수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산불 피해 지역은 사과, 양배추, 마늘, 양파, 소고기 등의 주산지로 공급 물가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금융위기 이후 최저치로 추락한 달러당 원화값도 불안 요인이다. 달러당 원화값은 전날 종가 기준 1472.9원을 기록해 2009년 3월 이후 16년 만에 최저점을 찍었다. 고환율이 지속되면 수입물가를 자극해 최종 물가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발 관세전쟁이 물가 상승을 부추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레이팅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정책으로 자국 물가가 최대 0.7%포인트 상승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국가별 보호주의가 강화되며 유럽, 중국 등 주요국이 모두 재정을 통한 부양 정책을 시사하고 있어 시장 내 유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한국이 저성장과 고물가가 겹치는 스태그플레이션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물가 상승과 고환율 상황, 관세전쟁으로 인한 무역수지 악화 등 성장률 둔화가 이어지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