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말부터 민간아파트에도 적용…업계, 친환경 설비 등 추가로 분양가 상승 우려주요기업, '가성비' 기술개발 총력…"소비자에겐 긍정적" 시각도
임기창
입력 : 2025.05.18 06:01:06
(서울=연합뉴스) 임기창 기자 = 정부가 내달 말부터 민간 아파트에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인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제도를 의무화할 예정이어서 아파트를 설계·시공하는 건설업계의 걸음도 바빠졌다.
최신 에너지 저감기술을 적용하면 분양가 상승 등 우려가 있지만, 냉난방이나 조명 등 건축물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가 막대한 만큼 이를 줄여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주요 건설사들은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활용뿐 아니라, 건물 내 에너지의 외부 유출을 줄이고 이를 재활용해 효율을 높이는 기술에 이르기까지 온실가스 배출 최소화 방안 마련에 애쓰고 있다.
열회상 카메라로 촬영한 아파트 외벽.
붉은 동그라미 에어컨 실외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 정부, '탄소배출 주범' 건축물 규제 확대…업계는 공사비 상승 우려 건설산업은 업종 특성상 자재 생산부터 해체에 이르는 전 생애주기에 걸쳐 온실가스를 대량 배출하는 산업이다.
건설공사의 핵심 자재인 시멘트와 철강재 생산에서부터 상당한 양의 이산화탄소가 직·간접 배출되고, 공사 현장에는 화석연료로 움직이는 중장비가 지속적으로 투입된다.
특히 완공된 건물이 운영되는 과정에서는 보일러와 에어컨 등을 사용하는 냉난방 공조(HVAC), 상시적으로 전력을 소비하는 조명 등을 통해 더 많은 탄소가 배출된다.
18일 한국건설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준공된 건물 운영 단계에서 배출되는 탄소는 건설산업 전 생애주기 탄소배출량의 65%에 이른다.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세운 정부도 이런 점을 고려해 ZEB 인증 제도를 도입했다.
건축물에 필요한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하고 신재생에너지 등으로 건축물의 에너지 자립률을 끌어올려 궁극적으로는 건물의 에너지 소비량과 생산량을 더한 값을 0으로 만들겠다는 취지다.
이미 공공주택에 대해서는 ZEB 5등급(에너지 자립률 20∼40% 미만) 인증이 의무화됐다.
정부는 여기에 더해 1천㎡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가구 이상 민간 공동주택에 대해서도 ZEB 5등급 수준 설계를 의무화하기로 하고 내달 말 시행을 목표로 규제 심사를 진행 중이다.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 아파트 외벽에 설치된 태양광 모듈 [현대건설 홈페이지.재판매 및 DB 금지]
민간 아파트를 짓는 건설업계에는 ZEB 의무화가 부담으로 작용한다.
업계는 자재비와 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계속 오르는 가운데 ZEB 인증 기준까지 맞추려면 각종 친환경 설비와 자재, 기술을 추가 적용해야 해 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건설업계는 ZEB 5등급 수준을 적용할 경우 전용면적 84㎡ 기준으로 가구당 공사비가 최소 293만원가량 추가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정부도 건설경기 침체 등에 따른 업계 우려를 수용해 제도 시행을 1년 6개월 미뤘다.
그러나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비중이 큰 민간 공동주택에 대한 에너지 규제를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국에너지공단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시스템에 따르면 현재까지 주거용 건축물이 ZEB 5등급을 받은 사례는 예비인증과 본인증을 합쳐 176건이나 대부분 공공주택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태양광, 에너지 저장장치(ESS), 지열 등 ZEB의 핵심 시스템을 갖추자면 초기 투자비용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새로 적용되는 기술들의 표준화가 미비하고 기존 설비와 호환성도 불확실한 점, 건물 자체적 신재생에너지 발전이 일사량 등 기상 조건에 따라 들쭉날쭉한 점 등도 숙제"라고 말했다.
◇ 아파트 예정부지 모델링까지…ZEB 기준 맞출 기술 각축전 다만 주요 건설업체들도 이런 흐름 자체를 거스를 수는 없다고 보고 건축물에 적용 가능한 탄소배출 저감 기술을 다각도로 검토하며 비용 대비 효과가 큰 기술을 찾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건축물에 적용되는 제로에너지 기술은 고성능 단열재와 창호 등으로 건물 내 에너지의 외부 유출을 최소화하는 '패시브'(passive) 기술, 고효율 조명과 냉난방공조(HVAC) 시스템 등으로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액티브'(active) 기술, 태양광이나 지열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자체 에너지 생산으로 구분된다.
심지어 지리정보시스템(GIS)을 활용해 아파트 단지 예정 부지 지형을 모델링하고 해당 지역 기후까지 고려 요소로 반영해 건물 외벽 태양광 모듈 설치를 최적화하는 기법도 개발됐다.
GS건설이 최근 공개한 에너지 절약형 조명도 ZEB 시대에 대응하려는 액티브 기술 중 하나다.
초고효율 발광다이오드(LED)와 사물인터넷(IoT) 기반 스마트 제어 기능을 갖춰 종전 대비 에너지 소모를 30∼50% 줄여 전기료 절감과 더불어 탄소배출 감소 효과를 실현했다.
GS건설이 개발한 에너지 절약형 조명 [GS건설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GS건설 관계자는 "고성능 단열재와 창호, 향상된 기밀성능, 고효율 LED, 신재생에너지 관련 시스템 등 에너지 자립률을 높일 기술을 다방면으로 개발 중"이라며 "ZEB 5등급에 해당하는 탄소배출 저감 기술을 이미 개발한 상태이며 4등급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현대건설이 2019년 준공한 인천 송도 '힐스테이트 레이크 송도'는 다양한 제로에너지 기술을 적용해 에너지 자립률 23.37%를 달성, 국내 최초로 고층형 ZEB를 인증받은 사례다.
건물 외피의 단열·기밀 기능을 강화하고 고효율 HVAC 시스템과 태양광 발전 설비 등을 갖추는 한편, 인공지능(AI) 기반으로 운용되는 스마트 건물에너지관리시스템(BEMS)으로 건물 내 에너지 자체 생산량과 소비량을 실시간 관리해 에너지 효율을 높였다는 점에서 정부로부터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이 단지의 전기 소비량은 인천 공동주택 평균 대비 51%, 난방에너지는 43% 절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DL이앤씨는 기술개발 거점인 대전 건축환경 연구센터에서 신재생에너지 활용, 단열, 냉난방공조 등 에너지 자립도와 효율을 높일 각종 기술을 연구개발 중이다.
주요 건설기업들은 이미 정부 주도 공공개발 등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저마다 ZEB 5등급 인증을 받은 사례가 있는 만큼 민간 아파트에까지 제도 적용이 확대되면 업계 내 기술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분양가 상승 우려에도 ZEB 적용 확대가 나쁘지만은 않다는 시각도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초기 투자비용이 높아 분양가가 오를 가능성은 있지만 신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경우 시간이 지나면 손익분기점을 넘어 건물 유지비를 실제로 아끼는 효과가 발생할 것인 만큼 소비자에게는 유리할 수 있다"며 "실제 ZEB 인증 단지 입주자들의 만족도는 높은 편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