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건설경기 환란 후 최악…영끌 믿은 과잉투자에 韓경제 발목
한은 올해 건설투자 -6.1% 예상…1998년 -13.2% 이후 최저GDP대비 건설투자 비중 14.2%, OECD평균 11.5% 크게 웃돌아 한은 "시멘트 덩어리 늘리는 부양 불가능"…전문가 "확실한 구조조정 필요"
신호경
입력 : 2025.06.01 06:05:01
입력 : 2025.06.01 06:05:01

(서울=연합뉴스) 김성민 기자.2025.5.19 ksm7976@yna.co.kr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올해 건설 경기가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뒷걸음치면서 전체 경제의 뇌관이 될 것으로 우려된다.
건설투자 부진의 주요 원인으로는 고금리, 자재·인건비 등 공사원가 상승, 지방 부동산 경기 위축 등이 거론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과거 수년 동안 특히 주택 부문에서 지나치게 과잉 투자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 등 레버리지(차입) 투자를 기대하고 국내 자원·재원의 상당 부분이 건설·부동산으로 쏠린 결과, 부작용으로 이제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얘기다.
◇ 건설투자, 네분기째 역성장…올해 성장률 사상 세번째로 낮을듯 1일 한국은행의 수정 경제 전망에 따르면 올해 건설투자 성장률은 -6.1%로 예상된다.
한은의 경제통계시스템(ECOS) 시계열상 1998년 외환위기 당시 -13.2% 이후 최저 수준이고, 1956년(-6.7%)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낮다.
건설투자의 분기 성장률(직전분기 대비)도 지난해 2분기(-1.7%)부터 3분기(-3.6%)와 4분기(-4.5%)를 거쳐 올해 1분기(-3.2%)까지 네 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17년 4분기(-2.8%)부터 2019년 1분기(-0.9%)까지 여섯 분기 뒷걸음친 이래 최장 역성장 기록이다.
하지만 마이너스 폭을 비교하면 최근 네 분기(1.7∼4.5%)가 2017∼2019년 당시(0.1∼2.8%)보다 월등히 크다.
그만큼 건설경기 침체의 골이 역대 가장 깊다는 뜻이다.
이처럼 부진한 건설 경기는 올해 한국 경제 전체를 주저앉힐 것으로 우려된다.
한은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가 2월 1.5%에서 0.8%로 불과 석 달 새 0.7%포인트(p)나 낮아졌는데, 하락 폭(0.7%p) 가운데 절반이 넘는 0.4%p가 건설투자 침체 때문이라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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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공사비 상승에 지역간 수급불균형·과잉투자·고령화 등 겹쳐 역대급 건설 경기 악화에는 높은 금리와 건설비용 등 단기 경기 요소들과 인구 감소에 따른 주택수요 부족, 2017∼2022년 과잉투자, 해소되지 않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위험 등 중장기 구조적 문제가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지호 한은 조사국장은 지난달 29일 수정 경제 전망 브리핑에서 "건설업의 부진엔 경기적 요인도 있는데, 원자재 가격·인건비가 오르면서 건설비 상승률이 소비자물가 상승률보다 높다"며 "그동안 금리가 오른 영향도 있고, 계엄 등 정치적 불확실성에 건설사가 분양과 건설투자 등을 미룬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조영무 NH금융연구소장도 "건설 경기 악화는 2022년 레고랜드 사태(자금·신용경색)부터 시작됐다고 봐야 한다"며 "이후 근본적으로 금리가 올랐고, 인건비·자재비 등 공사 원가 상승까지 겹쳤다.
최근에도 정책금리는 1%p 가까이 낮아졌지만, 기업·가계대출 금리는 떨어지지 않고 고금리 환경이 유지되면서 건설 경기 호전을 기대할 뚜렷한 변화가 없다"고 진단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는 가장 큰 원인으로 과잉투자를 꼽았다.
그는 "2017∼2022년 저금리 바탕의 아파트 가격 상승기에 특히 지방을 중심으로 과잉 공급이 발생하면서 미분양이 속출했고, 중소 건설사들이 파산하면서 건설 경기가 크게 위축됐다"며 "여기에 더해 재건축 역시 비용 상승과 기대수익 저하로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토목투자 부문에서도 공항과 철도 건설 등 정부 주도 인프라 투자가 제한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한은 역시 고령화에 따른 주택수요 감소, 지역 간 주택 수급 불균형 등 구조적 문제 탓에 주택 부문 건설이 많이 늘어나기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비주택 부문의 경우도 인프라 투자 성숙, 상업용 건물의 만성적 공실, 기업의 유형 투자에서 무형 투자로 전환 등 때문에 과거처럼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이 국장은 "2024년 기준 우리나라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이 14.2%(OECD 통계 기준)인데, 건설경기가 안 좋다고 해도 선진국이나 주요 국가와 비교해 여전히 비중이 큰 편"이라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OECD 국가들의 평균 건설투자 비중은 11.5%에 불과하다.
주요국의 비중을 봐도 독일(10.8%)·프랑스(12.1%)·영국(9.7%)·이탈리아(11.8%·이상 2024년 기준), 미국(8.8%)·일본(12.1%·이상 2023년 기준)이 모두 우리나라를 크게 밑돈다.
그만큼 주요 선진국들보다 우리나라의 건설 투자가 전체 경제 규모를 고려할 때 여전히 지나치게 많다는 뜻이다.
주요국 명목 국내총생산(GDP) 대비 건설투자 비중 비교(단위: %) ※ 한은 제공 OECD통계. OECD평균·미국·일본만 2023년 기준. 나머지 2024년 | ||||||||
한국 | 미국 | 일본 | 독일 | 영국 | 이탈리아 | 프랑스 | OECD 평균 | |
건설투자비중 | 14.2 | 8.8 | 12.1 | 10.8 | 9.7 | 11.8 | 12.1 | 11.5 |
하지만 건설 투자 부진의 구조적 문제에는 사실상 뾰족한 해답이 없는 상태다.
우선 건설 경기 부양에 초점을 맞춰 금리를 계속 낮출 수가 없다.
다시 저금리 레버리지 투자로 서울 집값만 뛸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유동성 공급이 기업 투자나 실질 경기 회복보다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며 "금통위원들도 서울 지역 부동산 가격과 가계부채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데 같은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 국장은 "건설 경기 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큰데, 필요 없는 시멘트 덩어리를 짓는 게 이후 성장에 무슨 도움이 되나"라고 반문했다.
조 소장 역시 "서울 등 집값 상승 지역에만 금리를 올릴 수도, 주택 초과 공급 지역에만 금리를 낮출 수도 없다"며 "따라서 매크로(거시경제) 수단인 정책금리 조정으로 현재 건설이나 부동산 경기에 대응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 건설업을 살리려면, 단기적 고통이 불가피하더라도 좀 더 확실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
박 이코노미스트는 "건설산업 구조조정을 더 빨리 진행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잠재 부실과 위험이 줄어야 성장도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전문가도 "건설투자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주는 것은 부동산 PF인데, '옥석 가리기' 얘기만 무성하지 제대로 가려지지 않은 상태"라며 "영끌 등 수요만 믿고 비싸게 땅을 산 시행사가 사업을 추진하다가 금리와 공사원가가 올라 어려움에 닥치면, 해당 시행사는 망하고 그 땅이 싼값에 나와야 옥석 가리기의 물꼬가 터진다.
하지만 일부 중소 건설사나 사업장 이외 망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국장 역시 "건설이 2017년 정점이었고, 이후 (경기가) 내려오는 과정에서 조정이 이뤄지다가 멈칫멈칫했는데, 제대로 조정이 되지 않은 것"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아울러 한은은 인공지능(AI) 관련 발전소 등 꼭 필요한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규제를 완화해 공장 건설 등을 뒷받침하는 방안 등을 건설 경기 대책으로 제시했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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