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D-2] 잠재성장률 난제…노동·연금·산업 개혁 없이 미래 없다
고용률 높지만 '일자리 양극화' 심화…새 주력산업 발굴도 요원
민경락
입력 : 2025.06.01 06:31:17
입력 : 2025.06.01 06:31:17

(서울=연합뉴스) 신현우 기자 = 한국 경제 성장률이 역대 처음으로 4분기에 걸쳐 0.1% 이하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20일 한은 경제통계시스템(ECOS)에 따르면 통계가 존재하는 1960년 이후 우리나라 분기 성장률이 이렇게 장기간 0.1% 이하에 머문 적은 없었다.저출생·고령화와 혁신 부족에 따른 생산성·효율성 저하 등으로 경제적 '실력'인 잠재성장률 자체가 낮아진 것이 요인으로 꼽힌다.여기에 지나치게 많은 가계부채 등으로 소비가 위축된 데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문제 등으로 건설 등의 투자도 짓눌려 전반적으로 내수가 너무 허약해진 상태다.사진은 이날 서울 명동거리에서 영업을 준비 중인 식당.2025.4.20 nowwego@yna.co.kr
(세종=연합뉴스) 민경락 기자 = 국가의 최대 성장 능력치인 잠재성장률 자체가 낮아지는 상황은 새 정부가 풀어야 할 중요 과제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 하락의 주된 원인은 인구 감소다.
최근 출생아 수가 증가세지만 뿌리 깊은 저출산 추세를 회복하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노동시장은 고용률과 실업률만 보면 양호한 듯 보이지만 제조업 등 양질의 일자리 비중이 줄면서 질적으로 양극화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산업 경쟁력 혁신 부재도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한국의 주력 산업군은 반도체·조선·자동차 등에 십수 년째 머물러 있다.

(서울=연합뉴스) 원형민 기자 = 8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잠재성장률 전망과 정책적 시사점' 보고서를 공개했다.circlemin@yna.co.kr 페이스북 tuney.kr/LeYN1 X(트위터) @yonhap_graphics
◇ 올해 성장률 0%대 '무게'…이면에 낮은 잠재성장률 1일 한국은행·기획재정부 등 관계 당국에 따르면 새 정부가 출범하는 올해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는 0%대로 하향·수렴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29일 올해 실질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1.5%에서 0.8%로 0.7%포인트(p) 내렸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 해외 투자은행들도 이미 올해 0%대로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한 상태다.
성장률 하락세의 표면적인 원인은 미국의 전방위 관세 부과, 12·3 비상계엄 등에 따른 내수 위축 등이 꼽힌다.
여기에 더해 잠재 GDP 성장률 자체가 하락세인 점도 구조적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잠재 GDP는 한 나라의 노동·자본·자원 등 모든 생산요소를 모두 동원하면서도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생산 수준으로 흔히 한 국가의 기초체력으로 해석된다.
10년 전 3%를 오르내리던 한국의 잠재 성장률은 최근 1%대로 낮아진 분위기다.
KDI가 지난 8일 공개한 2025∼2030년 잠재성장률 추정치는 1.5%였다.
총요소 생산성 하락 등이 반영되면서 2022년 당시 전망(2023∼2027년 2.0%)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내년 한국 잠재성장률 추정치(1.98%)도 2%를 하회했다.
2017∼2026년 10년간 한국의 잠재성장률 낙폭은 1.02%p(3.00→1.98%)로 잠재성장률이 공개된 37개국 중 7번째로 하락 폭이 컸다.

(서울=연합뉴스)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에 참여할 필리핀 노동자들이 6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고 있다.2024.8.6 [서울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인구 감소에 일자리 '양극화'까지…노동시장 과제 산적 한국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주된 요인은 노동 투입, 즉 인구 감소에 따른 고령화다 지난 3월까지 출생아 수가 9개월 연속 증가하는 등 최근 저출산 추세가 다소 회복되는 분위기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 정부 안팎의 중론이다.
1분기 합계 출산율은 0.82명으로 2년 만에 다시 0.8 명대를 회복했지만 여전히 낮다.
인구가 유지되려면 합계 출산율이 2.1명은 돼야 한다.
당장 성과를 내기 어려운 저출산 극복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인구 감소 상황에 맞는 성장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외국인 이민 정책이 대표적이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인구 구조 변화에 잘 적응하고 순응하는 정책도 필요하다"라며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를 유도하는 정책이나 외국인 노동력 유인 정책이 대표적 사례"라고 말했다.

(인천=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21일 인천광역시 부평역 북광장에서 열린 집중유세에서 연설하는 가운데 한 배달라이더가 헬멧을 착용한 채 유세를 지켜보고 있다.2025.5.21 [공동취재] utzza@yna.co.kr
노동시장도 고용률·실업률 등 헤드라인 지표는 양호하지만 질적인 측면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2013년 17.0% 수준이었던 제조업 취업자 비중은 지난해 15.6%까지 하락했다.
제조업 일자리는 상대적으로 보수가 높고 고용 안정성이 높은 편이다.
반면 같은 기간 보건업·사회복지서비스업 비중은 각각 6.2%에서 10.3%로 급상승했다.
운수·창고업 취업자 비중은 5.6%에서 6.0%로 뛰었다.
이들 산업은 돌봄·공공 일자리, 플랫폼 배달 라이더 등 상대적으로 저임금·저숙련 일자리가 많은 분야다.
플랫폼 산업이 커지면서 일자리가 양극화하는 흐름도 감지된다.
고임금직인 시스템 개발자·기술자 등이 늘어나는 동시에 배달 라이더 등 단순 노무직도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취업자 중 관리자·전문가 비중은 2013년 21.2%에서 작년 23.9%로 2%포인트(p) 가까이 상승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단순노무직 비중도 12.8%에서 13.9%로 커졌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최근 발간한 책 '왜 좋은 일자리는 늘 부족한가'에서 이런 일자리 양극화 문제를 노동시장의 구조적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플랫폼을 개발하고 관리하는 고임금 직종도 늘었지만 이런 최첨단 기술이 창출한 일자리의 대부분은 역설적으로 배달이나 창고 관리와 같은 전통적 일자리였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TV 제공]
◇ 공급망 등 대외불확실성 짙어져…제조업·서비스업 혁신도 지체 자국 우선주의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분절도 새 정부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숙제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과 동시에 쏟아낸 무분별한 관세 정책도 자국 중심의 공급망 확보가 최종 목표 중 하나다.
수입품에 거대한 관세 장벽을 세워 중국·베트남 등에 산재한 해외 생산시설을 미국으로 끌어들이고 투자도 유치하겠다는 발상이다.
중국도 최근 첨단 기술 제품 생산 확대 등을 골자로 한 국가 산업 전략을 검토 중인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인도·인도네시아 등 신흥국과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제조업 혁신이 지체되면서 인공지능(AI)과 같은 기술 진보가 무색하게 총요소 생산성도 정체하는 모습이다.
한국의 주력산업은 10년이 넘도록 선박·석유제품·승용차·반도체 등에 머물러 있다.
시스템 반도체 등 일부 첨단 기술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이 글로벌 공급망을 미국 중심으로 가져가려고 하는 것에 대한 대응, 중국 특수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오는 상황"이라며 "열이 나는데 해열제만 먹이지 말고 왜 열이 나는지 뜯어보고 대응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이해관계와 규제 탓에 제자리걸음 하는 서비스 경쟁력도 해결 과제다.
한국의 서비스 수출 규모는 전 세계 15위 수준으로 상품 수출(6위)에 비해 국제적 위상이 낮다.
취약한 서비스 경쟁력은 한국 수출이 반도체 등 '상품'에 과도하게 편중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대 갈등 논란이 가시지 않은 연금 개혁도 차기 정부의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최근 18년 만에 이뤄진 국민연금법 개정은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소득대체율(받는 돈)을 40%에서 43%로 올리는 모수 개혁이 핵심이다.
이번 개정으로 국민연금 기금 소진 시기를 2056년에서 2064년으로 8년 늦췄다고 정부는 강조한다.
하지만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더 받는 개정안은 여전히 미래 세대의 부담을 가중한다는 '세대 갈등'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모수 개혁을 넘어 연금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구조개혁의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노령화 사회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다루는 것이 새 정부의 장기적인 과제"라며 "노동·복지정책·국민연금 개혁, 은퇴연령 연장 등을 종합 과제로 한꺼번에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rock@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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