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30개월↑ 쇠고기·LMO·지도 반출 등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

한미 2차 기술협의서 비관세장벽 해소 요구 공식화상호관세·품목 관세 협상 지렛대 전망…"국민경제·국익 관점서 여론환기 필요"
이슬기

입력 : 2025.06.01 07:00:03


미, 수입소고기 30개월 월령 제한 지적
(서울=연합뉴스) 진연수 기자 =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상호관세' 발표를 앞두고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월령제한 등을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간주하며 사실상 시정을 요구하고 나섰다.미국 무역대표부(USTR)이 공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보고서)에 2008년 한미간 소고기 시장 개방 합의 때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소에서 나온 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을 "과도기적 조치"로 규정하며 "16년간 유지됐다"고 비판했다.사진은 1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미국산 소고기 판매대.2025.4.1 jin90@yna.co.kr

(서울·세종=연합뉴스) 이슬기 차대운 기자 =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한미 관세 협의 과정에서 30개월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유전자변형생물체(LMO) 수입 규제 완화, 구글이 요청한 고정밀 지도 반출 등과 관련한 비관세장벽 완화를 한국 정부에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최근 발표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NTE) 보고서'에서 거론된 사안들과 구글 등 미국 내 이해관계자들의 요구 사항이 한미 정부 간 협의 테이블에서 공식적으로 다뤄진 것이다.

이 사안들은 국민 건강 주권과 국가안보와 직결돼 있어 새 정부 출범 이후 여론 수렴 과정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

통상 전문가들은 향후 한미 간 관세 협상이 본격화할 경우에 대비해 미국의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를 전체 관세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국민 여론을 환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산 LMO 감자 수입 승인 절차 중단하라"
(서울=연합뉴스) GMO(유전자변형농작물)반대전국행동 등 농민단체 회원들이 1일 전북 전주시 농촌진흥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국산 LMO 감자 수입 승인 절차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2025.4.1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북도연맹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1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측은 지난달 20∼22일(현지시간) 열린 한미 2차 기술 협의에서 ▲ 균형 무역 ▲ 비관세 조치 ▲ 경제 안보 ▲ 디지털 교역 ▲ 원산지 ▲ 상업적 고려 등 6개 분야에 걸친 개선 요구 사항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미측은 한미 간 무역수지 불균형이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과도한 비관세 조치'의 대표적인 사례로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를 지목했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미국 오바마 행정부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과 연계된 쇠고기 수입 협상에서 집권 초 '광우병 파동' 이후 국민 여론을 고려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기로 미국 측과 합의했다.

이후 국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한미 FTA 발효 첫해인 2012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5억2천200만달러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22억4천300만달러로 330% 증가했다.

전체 대미 수입액에서 쇠고기가 차지하는 비중도 1.2%에서 3.1%로 3배 가까이로 늘었다.

2026년부터는 30개월 미만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가 전면 철폐될 예정이어서 관련 시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그러나 미측은 한국이 월령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도록 한 것은 '과도기적 조치'라고 규정하고, 최신 NTE 보고서에서 "16년간 유지됐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또한 한국이 월령과 관계 없이 육포, 소시지 등의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는 점도 비관세장벽으로 지적했다.

이에 따라 2008년 한미 합의 이후 16년 만에 쇠고기 수입 재협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관세 협상 테이블의 핵심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관세 정책 (PG)
[김선영 제작] 일러스트

미측은 아울러 LMO 농산물 수입 규제 완화도 주요 요구 사항 중 하나로 언급했다.

정부는 현재 식품용·보건의료용 등의 LMO에 대해 수입 승인 절차를 밟고 있으며, 미승인 LMO의 수입 및 유통을 방지하기 위해 검역 신고를 강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농촌진흥청이 미국 심플롯사의 LMO 감자 대상 작물 재배환경 위해성 협의 심사에서 '적합' 판정을 내린 것을 두고 농민 단체를 중심으로 미측과의 통상 협상을 의식한 결정 아니냐는 비판도 나왔다.

디지털 교역 분야에서는 구글이 신청한 5천대 1 축척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문제가 거론됐다.

구글은 2011년과 2016년 두 차례 지도 반출을 공식 요청했지만 그간 정부는 군사기지 등 보안시설 정보가 담긴 지도 데이터를 해외 서버에 둘 경우 정보 유출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이로 인해 현재 국내에서 구글 지도는 2만5천대 1 축척까지만 제공되며, 실시간 길안내나 예약 기능 등은 사용할 수 없다.



안덕근 장관과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 면담
(서울=연합뉴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무역대표부(USTR) 회의실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 대표와 면담하고 있다.2025.4.25 [산업통상자원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업계 안팎에서는 구글 측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경우 축척 5천대 1 수준의 초정밀 공간 정보가 해외로 반출돼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또한 이 정보가 가상현실(VR), 자율주행 등 첨단 스마트시티 산업의 핵심 정보인 만큼,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당초 지난달 중순 고정밀 지도 국외 반출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지만, 처리 기한을 한 차례 미뤄 새 정부 출범 이후인 오는 8월 중 결론을 내리기로 유보한 상태다.

미국 정부의 이 같은 요구는 다음 달 출범할 새 정부와의 제3차 기술 협의 및 향후 본격화할 관세 협상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가 상호관세 및 자동차·철강·반도체 등 품목 관세 협상과 맞물린 상황에 주목하고 있다.

미측의 비관세장벽 완화 요구를 무조건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인 만큼, 정부가 국민경제와 국익을 기준으로 사안별 중요도를 판별해 전략적으로 협상에 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가장 먼저 무역 협상을 타결한 영국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영국은 쇠고기, 에탄올, 농산물 등의 미국산 제품 수입을 촉진하는 노력을 하기로 한 대신, 미국으로부터 자동차 등 자국산 제품에 대한 일부 관세 인하를 이끌어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통상전문가는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는 미국 시중에 유통되는 비중이 실제로 작아서 이 부분을 개방하는 것은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 중 그나마 적다고 볼 수 있다"며 "그 대신 자동차, 철강, 반도체, 의약품 등 품목별 관세를 철폐하거나 영국 등 수준으로 낮추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과거 이명박 정부 때처럼 쇠고기 수입 이슈 등이 집권 초 예기치 못한 사회적 혼란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국민 건강과 과학 관점에서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국민 여론을 설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wis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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