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책위 "숨진 태안화력 노동자, 원청 한전KPS 측 요청으로 작업"(종합)

1차 조사결과 발표…"외주화와 안전시스템 공백이 사고 근본 원인"
이율립

입력 : 2025.06.05 17:09:56 I 수정 : 2025.06.05 17:17:27


사망 노동자 김충현씨가 작업 중이었던 CVP 벤트 밸브 핸들
김충현씨의 작업장에서는 김씨가 절삭가공해 만들어내야 했던 CVP 벤트 밸브 핸들 미완성품이 발견됐다.[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태안·서울=연합뉴스) 이주형 이율립 기자 =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 근무 중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충현(50) 씨가 원청인 한전KPS 측의 요청을 받고 발전설비용 부품을 만들다 사고를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5일 '태안화력 김충현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대책위원회'(대책위) 등에 따르면 김씨는 사고 당일 공작기계로 길이 약 40㎝, 지름 7∼8㎝가량 쇠막대를 'CVP 벤트 밸브 핸들'로 절삭 가공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발전설비 제어 장비의 밸브를 여닫는 손잡이(핸들) 부품으로, 사고 현장에는 김씨의 작업물과 유사한 형태의 부러진 부품과 함께 김씨가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업 도면도 발견됐다.

최진일 대책위 상황실장은 이날 오후 참여연대에서 열린 1차 조사 결과 발표 기자회견에서 "서류들이나 증거들을 볼 때 현실적으로 원청이 업무를 지시했고 임의 작업을 한 게 아니었다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대책위는 사고 당일 김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업 전 안전회의(TBM·tool box meeting) 서류도 공개했다.

이 서류의 작업 내용란에는 'CVP 벤트 밸브 핸들 제작 (#10)'이라고 적혀있었다.

괄호 안의 부호와 숫자는 10호기를 의미한다는 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최 실장은 "사고 당시 10호기는 발전소를 전체적으로 정비하는 오버홀(overhaul·분해수리) 공사 중이었다"며 "오버홀 공사는 한전KPS가 맡아서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기간 발생한 가공 작업은 한전KPS에서 해야 하고 (김씨가 속한 하청업체인) 한국파워O&M 쪽으로 넘어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기계공작실이 한국파워O&M에 떠넘겨져 있지만 실제로는 한전KPS의 작업을 위해 작동하고 있었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고(故) 김충현 씨가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 당일 TBM 일지
[대책위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TBM 일지는 통상 작업 내용과 위험 요인을 파악한 후 작업 전 회의를 통해 작성된다.

일지에는 작업담당자뿐 아니라 서부발전, 한전KPS, 한국파워O&M 관리감독자들의 서명이 이뤄진다.

사고 당일 일지를 살펴보면 한국파워O&M과 한전KPS 관리감독자 서명도 있지만, 대책위는 현장 증언 등을 토대로 서명이 형식적으로 이뤄져 온 것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한국파워O&M 태안사업소 조직도상 선반 업무 작업자는 김씨뿐으로, TBM 회의와 서류 작성, 유해 위험 파악 등도 모두 김씨 혼자 해온 것으로 추정된다는 게 대책위의 설명이다.

이 같은 정황을 토대로 대책위는 사고 당시 사용된 범용 선반의 장비상 문제 등 직접적 원인을 넘어 외주화와 안전 시스템의 부실 등을 사고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한국서부발전에도 책임이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기자회견에 참석한 권영국 민주노동당 대표는 "서부발전이 경상정비 업무를 한전KPS에 발주한 것이라면,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대재해처벌법상 도급인으로서의 책임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족 측은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유족과 대책위, 노조의 참여를 보장할 것과 예방 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 사고를 발생시킨 실질적 책임자를 처벌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

대책위는 오는 6일 서울역에서 김씨의 추모문화제를 연 뒤 관련 대책 마련 등을 요구하며 용산 대통령 집무실까지 행진할 예정이다.

한편 김씨의 사고 현장에서 관계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인 경찰은 "한전KPS 기계팀 소속 직원의 요청을 받고 해당 부품을 만들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한전KPS 측은 김씨의 작업과 관련해 "금일 작업 오더(주문) 되지 않았던 사항"이라고 밝혔고, 김씨 소속 업체 대표이자 현장 소장인 A씨 역시 "사고 당시 작업 지시가 없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또 한국서부발전의 요청이 있어 한전KPS 측은 전달만 했다는 얘기도 있다.

경찰은 작업 전 관리감독자와 작업자들이 모여 작업절차를 의논하고 작성하는 TBM 서류와 작업일지 등 관련 서류를 확보해 사고 전 작업 지시 여부를 중점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당시 한전KPS의 정식 작업 오더가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긴급 요청에 의한 업무를 하다 변을 당했을 가능성도 있는 상황으로 전해졌다.

고 김충현 사망사고 조사발표 기자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윤동진 기자 = 5일 서울 참여연대에서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충현 사망사고 1차 조사발표 기자간담회'가 열리고 있다.2025.6.5 mon@yna.co.kr

coole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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