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로 빚어진 가족의 비극…"사회안전망 불신 범행 부추겨"

채무·병간호 못이긴 40대 가장, 일가족과 함께 바다로 돌진
김혜인

입력 : 2025.06.11 15:02:59 I 수정 : 2025.06.11 15:05:07


일가족 탑승 차량 인양하는 해경
(진도=연합뉴스) 2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 인근 해상으로 빠진 일가족 탑승 차량이 인양되고 있다.2025.6.2 [목포해양경찰서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daum@yna.co.kr

(광주=연합뉴스) 김혜인 기자 = 생활고와 병간호, 채무에 시달린 40대 가장이 가족을 숨지게 한 사건을 두고, 사회안전망에 대한 불신이 그 배경으로 지목되고 있다.

11일 광주 북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모(49)씨는 노동청 조사와 채무 압박, 아내의 조울증 병간호 등에 심리적 압박을 느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오랜 기간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가족 생계를 책임져 왔으나, 최근 공사대금을 받지 못하면서 본인을 비롯한 인부들의 임금을 지급하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카드빚과 대출이 2억 원가량으로 불어나 연체되기 시작했고, 조울증을 앓는 아내를 간병하느라 안정적으로 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는 더 이상 수입이 없고, 감당해야 할 책임만 늘어나는 현실 속에서 '가족을 더 고통스럽게 내버려 둘 수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결국 아내와 함께 범행을 계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지씨는 "혼자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빚 때문에 힘들어할까 봐 함께 죽고자 했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했다.

생활고에 시달렸지만 지씨는 채무 조정이나 복지제도 등에 대해 아는 바가 없어 지원받지 못했고, 목숨을 끊는 것으로 금전적·심리적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 지씨는 개인회생이나 상속 포기 등 채무 관련 제도를 알지 못했으며 자기 형에게도 경제적 어려움을 털어놓거나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던 것으로 확인됐다.

위기가정을 식별할 수 있는 행정 시스템에서도 지씨 가족의 절박한 상황은 파악되지 않았고, 생계비나 간병비 지원 신청 내역도 없던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지씨가 다중 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회안전망과 제도를 잘 알지 못한 데서 비롯된 불신을 문제로 꼽았다.

최아라 광주대 아동학과 교수는 "지씨가 범행 동기로 밝힌 채무 압박과 간병 부담은 매우 현실적인 문제지만 그가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사회적 지원을 받지 못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내가 죽으면 남은 가족들이 잘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결국 정부의 도움이나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 사회가 위기가정을 지원하고 보호하는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에 벌어진 참극"이라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복지 사각지대 속 벌어진 비극이지만 한편으로는 고등학생 자녀 두 명을 살해한 점에서 절대 용납될 수 없다"며 "가족의 문제는 가장이 해결해야 한다는 잘못된 책임감에 죄 없는 자녀를 끌어들인 것은 명백한 범죄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씨는 지난 1일 오전 1시 12분께 전남 진도항에서 가족이 탄 차량을 몰고 바다로 돌진해 두 아들과 아내를 숨지게 한 혐의로 구속 송치됐다.

지씨는 홀로 차량에서 탈출해 도주했으나 44시간 만에 광주에서 경찰에 붙잡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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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액 채무 때문에 힘들어서"…바다로 돌진해 처·자식 3명 살해한 40대 가장/ 연합뉴스 (Yonhap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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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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