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파르게 늘던 임차권등기명령, HUG 보증사고 등 올해 들어 감소세전셋값 오르며 보증금 미반환 감소…보증 가입요건 강화 등도 영향HUG 빌라 등 무더기 셀프낙찰에 경매·등기 지표에도 변화
서미숙
입력 : 2025.06.13 06:01:00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 2년여 전 사회문제로 비화했던 역전세난과 전세사기 문제가 점차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전셋값 상승으로 역전세난이 해소된 곳이 증가하면서 올해 들어 임차권등기명령, 전세보증금반환 보증사고 등의 각종 지표들의 수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전세사기의 후폭풍은 경매시장에도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보다 강력한 임차인 보호대책을 약속한 가운데 전세사기 피해가 사라질 수 있을까.
서울 빌라촌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올해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41% 감소…서울·인천은 절반 이하로 줄어 13일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임차인이 집합건물(아파트·다세대·연립·오피스텔)에 대해 임차권등기명령을 신청한 건수는 총 398건으로 올해 들어 최저를 기록했다.
전월(545건) 대비 150건 가까이 감소한 것이면서, 3월 605건을 찍은 이후 두 달 연속 감소세다.
임차권등기는 임대차 계약 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등기부등본에 미반환된 보증금 채권이 있다는 사실을 명시하는 제도다.
임차권등기를 하면 세입자가 보증금을 받지 못 받고 이사를 하더라도 대항력과 우선변제권이 유지돼 보증금을 지킬 수 있다.
이 지표는 보증금을 전액 또는 일부라도 못 받고 이사한 임차인들이 얼마나 많았는지 보여준다.
올해 들어 임차권등기명령의 감소세는 뚜렷하다.
1∼5월 누적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전국 기준 총 1만3천163건으로 작년 동기간 2만2천295건에 비해 41% 감소했다.
역전세난과 전세사기가 사회 문제로 비화한 2022년 1∼5월에 3천414건이었던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2023년 동기간 1만5천9건으로 늘었고, 2024년에는 2만건을 넘겼다.
연간 수치로는 2022년 1만2천38건에서 2023년 4만5천445건으로 증가한 뒤 지난해 4만7천353건으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임대차 계약 기간 종료 후에 신청하는 것임을 감안하면 임대차 2법 시행으로 전셋값이 고점을 찍은 2020∼2021년에 계약한 임차인들이 전셋값이 크게 떨어진 2023년 이후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해 임차권등기를 신청한 세입자가 많았던 것이다.
올해 들어 임차권등기명령이 감소세를 보이는 것은 역대 최고인 작년 대비 '기저효과' 외에도 작년부터 전셋값이 오르며 역전세난이 해소된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사기 문제가 많았던 서울과 인천은 올해 1∼5월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가 각각 2천571건, 1천585건으로 작년 동기(6천112건, 4천401건) 대비 절반 아래로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민사회단체, 주거권 관련 21대 대선 정책 요구안 발표 (서울=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주거권네트워크,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에 참여하고 있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30일 서울 광화문 월대 앞에서 주거권 관련 21대 대선 정책 요구안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2025.4.30 hihong@yna.co.kr(끝)
◇ HUG 보증사고, 대위변제액도 감소세…대위변제건수 2년2개월 만에 1천건 아래로 전세시장 위험도를 판단하는 또 다른 지표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 보증사고도 올해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다.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한 임차인이 줄었다는 의미다.
HUG에 따르면 지난 4월 보증사고 건수는 673건으로 올해 들어 최저를 기록했다.
2023년 2월 이후 매월 1천건을 넘고, 지난해 2월에는 최고 3천건에 달했던 보증사고 건수가 올해 1월(735건)부터 약 2년 만에 1천건 밑으로 떨어졌다.
1∼4월 누적 사고 건수도 지난해 1만9천60건에서 올해 들어선 5천743건으로 급감했다.
HUG가 보증 사고 주택의 전세보증금을 집주인 대신 임차인에게 지급하는 대위변제 건수도 지난 4월 973건을 기록해 2023년 2월(834건) 이후 2년2개월 만에 처음 1천건 이하로 내려왔다.
지난해 3조9천948억원(1만8천553건)으로 4조원에 육박했던 사상 최대의 대위변제액도 올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올해 1∼4월 대위변제액은 9천519억원으로 작년 동기(1조2천675억원)보다 적다.
HUG 관계자는 "전세사기가 사회문제화되면서 전세보증금반환보증 가입 요건을 공시가격의 126% 등으로 강화했고, 최근 전셋값도 회복세를 보이면서 일단 보증사고가 점차 감소하는 추세"며 "앞으로 보증사고를 줄이면서 대위변제액 회수율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지기 전인 2021년 전국 기준 연간 임차권등기 신청 건수가 7천631건에 불과했던 것을 감안하면 아직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전세사기 발생 이전 수준으로 해결됐다고 보긴 어렵다.
감소 추이가 뚜렷한 수도권과 달리 부산은 올해 1∼5월 임차권등기명령 건수가 2천93건으로 작년 동기(2천251건)와 큰 차이가 없다.
서울 등 수도권 다음으로 전세 보증금이 높은 부산은 최근 전세사기 피해자가 늘고 있는 지역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누적 인원은 현재까지 3만명이 넘었다.
정점은 지났다 해도 현재도 월 800∼1천명 단위로 신규 피해자들이 나온다.
임대인의 실제 사기 고의성 여부를 떠나서 여전히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임차인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정부는 최근 전세사기 특별법을 2027년 5월31일까지 2년 더 연장하면서 올해 6월 1일 이후 신규 계약은 전세사기 피해 지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이달부터 갱신 계약이 아닌 신규로 전세 계약을 맺는 임차인은 피해 구제 대상이 아닌 만큼 임차인 스스로 권리관계 등을 명확히 파악해 임대차 계약을 맺어야 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전세보증금반환보증 보증 사고 주택에 대해 채권 회수에 들어가면서 다세대·연립 등 빌라 경매 시장의 큰손이 됐다.
LH처럼 공공임대 운영이 가능해지면서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대위변제 대상 주택을 직접 강제경매에 넘기고 무더기로 '셀프낙찰'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낙찰한 주택은 '든든전세'라는 이름으로 다른 임차인에게 전세를 놓는다.
HUG가 경매에 직접 참여하기 시작한 작년 5월부터 올해 5월까지 1년간 셀프낙찰한 다세대·연립·오피스텔 등은 총 3천134건이다.
이 기간 수도권에서 낙찰된 빌라와 오피스텔 등 1만3천971건 가운데 HUG의 낙찰 지분이 22%가 넘는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HUG가 채권회수와 든든전세 사업을 위해 경매 신청한 빌라와 오피스텔 규모는 지난해 7천건을 넘겼고, 올해도 상반기에만 1만건이 넘을 전망이다.
이 때문에 법원은 지난 3월부터 전세사기 피해가 집중된 서울 강서구와 경기도 부천·김포, 인천 등지의 경매 업무를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서울남부지법과 인천지법, 부천지원 등 3곳에 HUG 사건 전담 경매재판부를 설치했다.
HUG의 경매 참여는 빌라 낙찰가율과 낙찰률 상승을 가져왔다.
법원경매전문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초까지 70%대였던 서울지역 다세대·연립 낙찰가율은 HUG의 경매 참여 이후 평균 80%대로 높아졌다.
지지옥션 이주현 전문위원은 "과거에는 보증사고 주택을 경매에 넘기더라도 제삼자가 낙찰받을 때까지 기다려야 해서 유찰이 거듭되고, 낙찰가율이 떨어졌는데 HUG의 셀프낙찰이 가능해지면서 일반 투자자가 참여할 빌라 물건 수가 줄고 낙찰가율이 오르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며 "HUG로 인한 일종의 착시현상"이라고 말했다.
HUG의 셀프낙찰과 든든전세 사업은 법원 등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강제경매로 인한 집합건물 소유권이전 등기 신청 건수는 전국적으로 5천78건에 달했다.
2023년 동기간(1∼5월) 1천795건, 지난해 3천96건에서 올해 들어 2천 건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임차권등기나 보증사고 등 전세사기 관련 징후들은 감소하는데 반대로 강제경매로 인한 등기가 증가한 이유가 뭘까.
시장에선 HUG의 셀프낙찰 영향을 주시한다.
대법원 통계를 보면 강제경매로 소유권 이전등기한 집합건물을 '법인'이 매수한 경우는 작년 1∼5월까지만 해도 서울 기준 41건에 불과했으나, 올해 동기간은 766건으로 급증했다.
임차인의 경매 신청도 늘고 있다.
지지옥션 집계 결과 올해 경매 진행 건 가운데 주거시설의 임차인이 직접 경매를 신청한 경우는 지난 3월 299건에서 4월 497건, 5월 536건으로 두달 연속 증가했다.
이는 일정 부분 LH의 전세사기 피해주택 매입과 관련이 있다.
LH는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으로부터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피해 주택을 경·공매로 낙찰받고, 피해자에게 공공임대 주택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때 낙찰은 LH가 받지만 경매 신청은 임차인 본인이 해야 해 임차인 경매 신청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LH의 임차인 우선매수권 양수는 2년 전부터 가능했으나 계속 지지부진하다 지난해 11월 LH가 낙찰대금에서 경매로 생긴 차익을 임차인에게 주는 것으로 법이 개정되면서 최근들어 우선매수권 양도 임차인이 증가하는 추세다.
국토부에 따르면 작년 11월 이후 올해 5월까지 LH에 경매 우선매수권 행사를 요청한 전세사기 피해주택은 700건이 넘는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근 빌라 시세가 오르면서 선순위 임차인이 직접 경매 신청 후 셀프낙찰까지 받으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며 "다만 시기상 LH에 우선매수권 행사 요구가 늘어나고 있는 점이 더 큰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역전세난과 전세사기 문제가 주춤한 상태지만 전셋값이 급등락할 경우 전세 사고는 언제든지 되풀이될 수 있는 만큼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주택정책과 시장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공약으로 "전세사기 특별법을 개정해 피해자 구제를 확대하고, 가해자 처벌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세부 방안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법무법인 명도 강은현 경매연구소장은 "지금도 안양 등 일부 지역에선 신축 빌라 한 동이 전체 경매에 나오는 등 전세사기 문제가 여전히 발생하고 있다"며 "통계상의 지표는 정점을 지났지만 전세 시장 안정과 임차인 보호를 위한 정책 발굴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