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100 산단' 본격 추진…'깨끗하지만 비싼 전기' 어떻게
대통령 '전기료 파격할인 검토' 주문…전력기금 등 예산 투입 관측도서남권·울산 등 후보지 거론…재원·24시간 공급방안 등 범정부 차원 해법 숙제
차대운
입력 : 2025.07.13 07:01:07
입력 : 2025.07.13 07:01:07

[촬영 차대운]
(세종=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정부가 태양광·풍력 같은 재생에너지 전기로 100% 가동되는 'RE100 산업단지'를 조성해 글로벌 기업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와 국내외 첨단 산업 기업을 유치하는 방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정부는 재생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서남권 등 지방에 우선 RE100 산단을 짓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시사했다.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를 가로막는 송전 병목 현상 문제 해결과 지역 균형 발전 도모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재생에너지 전기는 평균 전기보다 비싸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이에 기업들이 지방 이전을 감수할 만큼 매력적 가격에 청정 전기를 공급하기 위한 재원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정책의 성패가 달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 피할 수 없는 RE100…'재생에너지 특구'로 대응 13일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0일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를 계기로 RE100 산단 조성 계획 마련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비정부기구(NGO)인 더 클라이밋 그룹이 주도하는 RE100은 2050년까지 주요 기업이 사용 전력의 100%를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하는 민간 캠페인이다.
애플, 구글 같은 글로벌 기업이 다수 참여하면서 각자 자사의 공급망 업체들에도 동참을 요구하고 있다.
이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면 반도체 등 주력 제품 수출길이 막힐 거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한국에서도 삼성전자, 현대차·기아, LG에너지솔루션 등 30여개 기업이 RE100 캠페인에 참여 중이다.
정부의 RE100 산단 조성은 이처럼 재생에너지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 맞춰 기업들이 필요한 만큼 재생에너지를 쓰도록 보장하는 '재생에너지 특구'를 조성해보자는 구상에서 비롯됐다.
지금도 기업들이 공장 지붕에 태양광 패널을 올리거나, 발전 사업자와 직접구매계약(PPA) 등의 방식으로 재생에너지 사용을 늘리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체계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범정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연말까지 'RE100 국가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 내용을 포함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시간표를 제시했다.
앞서 새 정부는 RE100 산단 조성 공약과 관련해 반도체 클러스터인 수도권과 전남 등 지방에 RE100 산단을 복수로 구축하는 방안을 내놓은 바 있었다.
그런데 이번 대통령실 발표에서는 우선 대상지로 전남·전북 등 호남권과 울산 등 지방을 특정해 지목한 것이 눈에 띈다.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10일 "서남권을 비롯해 재생에너지 잠재력이 풍부한 지역이 있음에도 전력 수요는 수도권에 집중되는 등 수요와 공급의 미스매치가 크다"며 "기업은 RE100 달성을 위한 안정적 인프라를 확보하고, 국가는 에너지전환을 가속할 수 있다.
여기에 지역 경제도 활성화하는 일석삼조의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울산도 잠재적 후보지로 거명했다.
지방 생산 재생에너지 전기를 송전망을 통해 수요지인 수도권을 끌어올리는 기존 방식에서 탈피해 재생에너지가 필요한 기업이 재생에너지 생산지로 찾아가는 '지산지소'(地産地消) 방식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재생에너지 확대에는 수요·공급 지역 불일치로 인한 송전망 병목 현상이 큰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38.6GW인데 이 중 약 20%인 7.1GW가 광주·전남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됐다.
수도권에 전기를 보낼 송전망 용량이 부족해 최근 호남권에서는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인위적으로 줄이는 출력 제어도 일상화되고 있다.
만성적 전력계통 부족 문제는 해상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잠재력이 큰 호남권에서 새 재생에너지 발전사업을 내주지 못하는 주된 요인이기도 하다.
따라서 RE100 산단이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이 밀집한 지방에 들어서고 대용량 전기 고객인 기업이 입주한다면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혈로를 뚫고, 지역 경제에 활력도 불어넣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전망이다.

(울산=연합뉴스) 홍해인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20일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울산 인공지능(AI) 데이터 센터 출범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 세리머니에 참여하고 있다.왼쪽부터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 대통령, 아마존웹서비스(AWS) 프라사드 칼야나라만 인프라 총괄 대표,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김두겸 울산광역시장.2025.6.20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hihong@yna.co.kr(끝)
◇ '전기료 할인' 방안찾기부터 24시간 전력공급까지…"국민 공감대 필수" 이 정책의 추진 과정에서 전기요금 책정 문제를 포함한 여러 도전적 과제가 놓여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 대통령은 RE100 산단 기업에 '파격적 전기료 할인 혜택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현실은 반대로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전기는 평균적인 전기보다 훨씬 비싸다.
작년 한전의 평균 전력 구입 단가는 1kWh(킬로와트시)당 134.8원이다.
태양광 단가는 1kWh당 200원대, REC 가중치가 가장 높은 해상풍력의 경우 단가가 1kWh당 400원대에 달한다.
작년 한전의 평균 산업용 전기 판매 단가는 1kWh당 168.2원이었다.
따라서 RE100 산단 기업에 '파격적 할인'이 제공되려면 1kWh당 최소 200원대인 원가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공급되어야 한다.
그만큼 직·간접적 재원 투입이 불가피하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전기요금에 함께 부과해 걷어 정부 예산으로 쓰는 전력산업기반기금을 우선 활용해 재원을 부담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전력 업계 관계자는 "재생에너지 전기가 비싼데 전기를 싸게 공급하는 것은 사실상의 보조금으로 볼 수 있다"며 "정부 예산이 활용된다면 전력기금을 우선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울러 AI 데이터센터나 반도체·이차전지 등 첨단 제조시설은 24시간 가동된다.
시간대와 자연조건에 따라 전기 생산이 들쭉날쭉한 재생에너지만으로 RE100 산단에 어떻게 100% 전기를 공급할지 기술적 문제도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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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저수지'인 배터리 에너지저장장치(ESS)를 대량으로 지어 운영하는 것 같은 대안이 있다.
그러나 1GW(기가와트) 용량에 조단위로 들어가는 건설 비용까지 더해진다면 RE100 산단에 공급될 재생에너지 공급 원가는 1kWh당 500∼600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와 결국에는 재원 부담의 문제로 수렴된다는 지적이다.
이 밖에도 RE100 산단 입주 기업에 낮은 전기요금이 지원될 경우 외국 기업의 반덤핑 제소 등 통상 분쟁 시비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앞서 미국 철강사들이 한국 철강사들이 낮은 산업용 전기요금 지원을 받고 있다면서 자국 정부에 반덤핑 제소를 한 적이 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RE100 산단 추진이 이상적이고 좋은 방향이지만 실현 과정에서 만만치 않은 도전 과제들이 있다"며 "수혜자는 특정 기업들로 정해져 있고, 전력기금의 지원이 됐든 한전의 부담이 됐든 결국 직간접적으로 국민의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국민들의 이해를 구하는 등 충분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추진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cha@yna.co.kr(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