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이 정도라고”…일자리 포기한 대졸자, 중졸 첫 추월, ‘잃어버린 세대’ 시작됐나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입력 : 2025.07.22 13:46:50 I 수정 : 2025.07.22 13:51:19
<매경DB>
대졸 비경인구, 304만명...10년간 60만명 ‘쑥’
‘고학력’ 청년 수용할 일자리 부족 심각
사회문제된 日 ‘취업빙하기 세대’ 전철 우려
“양질 일자리 만들 정책·제도 필요”


대학교 졸업장이 더는 취업의 든든한 보증 수단이 되지 않는 시대다. 학력을 갖추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이들이 통계상 처음으로 중졸층 비경제활동 인구를 넘어섰다. 원하는 일자리는 줄고, 취업 문 앞에서 멈춘 ‘고학력 대기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을 노동시장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정부의 대응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22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기준 대학교 졸업 이상(4년제)의 비경제활동인구는 304만8000명으로, 같은 분기 중졸 학력의 비경제활동인구(303만 명)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비경제활동인구는 ‘취업자도 실업자도 아닌’ 만 15세 이상 인구다. 학업·취업준비뿐 아니라 ‘그냥 쉬었음’ 같은 이유로 노동시장에 나서지 않은 이들까지 포함된다. 실업률 계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고용시장 열기와 구조 변화를 보완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도구로 쓰인다

10년 전인 2015년 2분기 비경인구는 대졸 이상이 238만3000명, 중졸은 341만6000명으로 100만 명 넘는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이후 고령층 중심의 중졸 인구가 완만히 줄어든 반면 고학력 인구는 빠르게 늘었다.

이런 변화는 고학력 청년들이 취업을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구조적 고용 위기에 놓였음을 보여준다. 고학력 구직자들은 대체로 고부가가치 제조업이나 전문 서비스업 일자리를 선호하지만 기대를 충족시킬 만한 일자리는 점점 줄고 있으며 구직 노력도 포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는 것이다.

실제 한국경영자총협회가 3월 발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상시 고용인원 100명 이상인 500개 기업 가운데 신규 채용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0.8%로, 관련 조사 실시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청년 고용을 견인하던 제조업 부진도 이런 흐름을 부추기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분기 기준 전체 취업자 중 제조업 종사자는 15.2%에 그쳐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특히 20대의 제조업 취업자 비중도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낮았다. 기업들은 경기 불확실성과 인건비 부담 속에서 신규 인력을 보수적으로 채용하고 있고, 그 여파가 가장 먼저 청년층에게 미치는 것이다.

이런 흐름이 지속될 경우 고학력 청년층이 첫 일자리를 얻지 못한 채 사회 진입 자체가 지연되는 ‘잃어버린 세대’로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경제 붕괴 이후 비슷한 경로를 밟았다. 대졸자 취업률은 1991년 81.3%에서 2003년 55%까지 추락했고 당시 취업 기회를 놓친 세대는 이후 40~50대가 될 때까지도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 노동당국에 따르면 2014년부터 2023년까지 전체 근로자의 평균 월급은 약 1만 엔 증가한 반면 40대 후반의 월급 상승폭은 1000엔을 소폭 상회했다. 50대 초반은 오히려 감소했다. 또 금융자산이 100만 엔 미만인 40대 비율은 2003년 대비 2023년에 2배 이상 증가해 전체의 14%를 차지했다. 노동시장 진입이 지연되면 이후 소득·자산·소비 능력 전반이 낮아지고 사회 전반의 불안정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한국도 과거 일본과 비슷한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지만 정부의 역할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새 정부는 신산업, 특히 인공지능(AI)에 초점을 맞춘 산업 전략을 추진 중이지만 이 분야는 고용 창출 효과가 제한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국은행은 지난 2월 보고서를 통해 국내 근로자의 51%가 AI 도입으로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고학력 청년의 고용단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청년들이 눈높이를 낮출 수 있도록 일자리 자체의 질과 다양성을 높이는 구조적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근로환경을 개선하고 상대적으로 낙후된 서비스업의 생산성과 고용여력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 같은 상황에서 서비스업의 구조적 전환 없이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렵다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한은에 따르면, 국내 전체 취업자의 65%가 민간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이들의 1인당 노동생산성은 20년 넘게 제조업의 40% 수준에 머물러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서비스업 비중도 약 60%로, OECD 평균(74%)에 크게 못 미친다. 청년정책을 맡는 한 정부 고위 관계자는 “제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며 “청년 고용 수요를 감당하려면 고급 서비스업을 키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도적 기반은 여전히 부족하다. 2011년 처음 발의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서발법)은 14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서발법 입법을 다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정국 혼란으로 진전이 더딘 상태다. 국정기획위원회는 서비스업 중심의 규제 정비와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논의 중이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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