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공시 먹튀·기업사냥꾼… 국세청 27社 적발 … 하이브도 세무조사 대상 작전세력 허위공시 판치고 차명 법인과 공급계약 맺고 수주 호재 흘려 시세조종 매출 1500억 넘는 기업도 연루 내부정보 악용·공금유용도 사채 끌어들여 상장사 인수 알짜자산 담보로 영끌 대출 회삿돈으로 고급 외제차 구입
시세조종꾼 A씨는 바이오·헬스케어 사업을 영위하는 코스닥 상장사 B사를 사실상 지배했다. A씨는 B사가 연 매출의 5배를 넘는 대규모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는 허위 공시를 내고 주가를 8배나 띄웠다. 이후 그는 차명 법인을 통해 보유하고 있던 B사의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고 이를 시장에 매도해 수백억 원의 차익을 챙겼다.
또 A씨는 차명 법인과 B사의 가짜 물품 공급 계약을 통해 추가로 수백억 원을 빼돌리는 방법으로 B사의 자금을 부당하게 유출했다. B사의 자금을 대여한 것처럼 거짓으로 회계를 처리하고 회삿돈을 사적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B사는 허위 공시로 인해 주가가 폭락했고 곧이어 거래가 정지됐다. 국세청은 A씨의 주식 명의신탁 등에 대한 증여세와 법인자금 유출에 따른 소득세 등 수백억 원을 세금으로 추징하고 그를 고발했다.
29일 국세청이 주식 시장을 교란해 부당하게 이익을 얻고도 정당하게 세금을 내지 않은 불공정 행위 탈세자에 대한 세무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허위 공시로 주가를 조작해 시세 차익을 챙기거나 상장사를 사유화해 소액주주의 이익을 침해한 기업·관련자를 대상으로 칼을 빼든 것이다.
임광현 국세청장이 취임 후 첫 세무조사로 주식 시장 불공정 행위를 정조준한 것이다. 부동산에 쏠린 유동성을 자본 시장으로 돌려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증시 부양 기조 연장선으로 풀이된다.
이번 세무조사 대상은 주가 조작 목적의 허위 공시 기업, '먹튀' 전문 기업사냥꾼, 상장사 사유화로 사익을 편취한 지배주주 등 총 27개 기업과 관련자들이다. 이 중 24곳은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로, 매출액이 1500억원을 넘는 중견 규모 이상 기업도 5곳 포함됐다. 국세청은 이들의 탈루 혐의 금액이 총 1조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임광현 국세청장
주가 조작 허위 공시 조사 대상 9개 기업은 허위 공시 이후 평균 64일 만에 주가가 400%가량 치솟은 뒤 폭락해 68일 만에 고점 대비 3분의 1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공시를 믿고 투자한 소액주주들만 회복 불가능한 피해를 입었다.
한 시세조종꾼은 자신의 법인을 통해 전기차 부품 상장사를 인수하고 신사업을 추진할 것처럼 허위 홍보를 하면서 주가를 띄웠지만 실제로는 상장사 지분을 5%만 매입해 인수 의사는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그는 주가가 3배 이상 급등하자 상장사 지분을 전량 매각해 막대한 시세 차익을 얻고 양도소득세를 신고하지 않았다. 주가 조작 세력들은 조합원 정보가 노출되지 않는 투자조합을 설립해 친인척이나 지인 명의로 분산 취득하는 방식으로 대주주 양도세 납세 의무를 회피했다.
상장사를 인수해 회삿돈을 빼돌리고 껍데기만 남긴 기업사냥꾼의 교란 행위도 세무조사 선상에 올랐다. 기업사냥꾼 C씨는 상장사 D사를 차명 법인을 이용해 사채를 빌려 무자본으로 인수하고, 자신의 배우자를 D사 대표 자리에 앉혔다. 이후 D사가 보유한 알짜 자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수십억 원을 차입하고, 이 차입금을 D사 대표인 배우자에게 다시 대여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빼돌려 호화 생활을 했다.
C씨는 D사 명의로 고급 외제차를 구입해 사적으로 사용하고 법인카드로 유흥을 즐기면서 정상적인 경비인 것처럼 신고해 세금을 축소했다. D사는 고액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고 경영난에 빠져 거래가 정지됐으며, 소액주주들은 큰 손실을 입었다. 국세청은 기업사냥꾼에 대해 증여세와 법인세, 소득세 수백억 원을 추징·과세했다.
내부 정보를 남용해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준 상장 기업 지배주주들도 덜미를 잡혔다. 의약품 제조 상장사인 E사 사주는 호실적 발표를 앞두고 주가 상승이 예상되자 싸게 사놓은 전환사채를 자녀가 지배하고 있는 법인이 투자한 사모펀드에 취득 금액 그대로 양도했다. 이후 E사 주가가 60% 이상 급등하자 사모펀드는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해 수백억 원의 차익을 얻었고, 차익 중 수십억 원이 자녀 법인에 투자수익으로 분배됐지만 세금은 신고되지 않았다. 이에 국세청은 전환사채 저가 양도와 펀드 투자 수익 등에 대해 법인세를 추징했다. 이번 조사 대상자의 자녀들은 증여받은 재산 가액의 91.5%를 축소해 8.5%만 신고하고 세금을 탈루한 것으로 분석됐다.
국세청은 상장 과정에서의 사기적 부정 거래 혐의로 수사 중인 하이브에 대한 세무조사에도 착수했다. 업계에 따르면 비정기 특별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이날 서울 하이브 본사에서 서류 확보 등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이 밝힌 27개 세무조사 대상에 하이브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방시혁 하이브 의장은 하이브 상장 전 기존 투자자들에게 기업공개 계획이 지연될 것처럼 속이고, 하이브 임원들이 출자·설립한 사모펀드가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에 지분을 팔게 한 혐의로 이미 경찰 등의 수사를 받고 있다. SPC는 하이브 상장 후 보유 주식을 매각했고, 방 의장은 주주 간 계약에 따라 매각 차익의 30%를 받았다.
국세청은 이 같은 거래 과정에서 세금 탈루가 있었는지를 조사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와 관련한 내용은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민주원 국세청 조사국장은 "이번 세무조사를 통해 주식 시장 질서를 훼손하고 소액주주 등 투자자들에게서 이익을 부당하게 편취한 불공정 거래 탈세 혐의자에 대해 철저히 검증할 것"이라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주식 시장 불공정 탈세 행위 등에 대해 공시하는 방안도 관계기관과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