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수백 곳과 일년내내 임단협해야 할 판”...반기업법 통과 임박, 산업계 비상

박승주 기자(park.seungjoo@mk.co.kr), 안두원 기자(ahn.doowon@mk.co.kr), 최예빈 기자(yb12@mk.co.kr), 이윤식 기자(leeyunsik@mk.co.kr)

입력 : 2025.07.29 20:28:19
손경식, 국회 문닳도록 호소했지만
정치권 노란봉투법, 상법 강행에
재계 8단체 공동호소문 내놔


손경식 경총회장이 지난 24일 서울 마포구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방문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과 대화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하도급이 수백 개가 넘는데 산술적으로 하루에 몇 곳씩 임금·단체협약(임단협)을 타결해도 1년이 지나간다. 현실적으로는 임단협이 해를 넘겨 진행될 수밖에 없고 시간에 쫓기다 보면 노사 모두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대형 기계 제조업 임원)

“정치권이 노동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일거에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부작용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정치적인 논리도 있지만 기업과 경제적 관점에서는 매우 걱정되는 상황이다.”(조선업 관계자)

기업의 책임을 하도급 근로자까지 확대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2·3조 개정안)의 국회 통과가 임박하면서 산업 현장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특히 노조의 영향력이 큰 기업들의 경우 경영 활동이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경제단체들은 문이 닳도록 국회를 찾아가 ‘반기업법’ 자제를 호소했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형국이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회를 여러 차례 찾아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 등을 만나며 재계의 우려를 전달했다. 손 회장은 지난 28일 환노위 야당 간사인 김형동 국민의힘 의원도 만나 입법 저지를 호소했지만 결국 법안은 환노위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2024년 8월 국회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이 통과되고 있다. [김호영 기자]


노란봉투법은 사용자 범위 확대, 노동쟁의 개념 확장,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 등 3가지 독소 조항을 품고 있다는 평가다. 재계는 다단계 하도급 구조를 지닌 국내 산업 생태계에 마비를 초래하고 한국 경제와 기업 활동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것이라며 심각성을 호소한다.

특히 ‘사용자 범위의 과도한 확장’을 통한 경영 간섭 가능성을 문제 삼는다.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닌 원도급도 실질적으로 지배력이 있다는 이유로 수많은 하도급 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단계 협업 체계가 일반화된 자동차, 조선, 철강, 건설업 등에서는 교섭 혼란이 벌어질 수 있다.



‘노동쟁의 개념 확대’ 역시 쟁점이다. 현행법은 임금·복지 등 근로 조건에 한정해 쟁의행위를 허용하는 데 반해 개정안은 징계나 부당해고를 비롯해 구조조정, 투자 결정 등 경영상 판단까지 교섭·쟁의 대상에 포함시킨다. 경영계는 “기업의 핵심 결정권을 무력화시켜 자율적이고 신속한 의사 결정을 방해하고 혁신을 저해할 것”이라고 반발한다.

불법 쟁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책임 제한도 논란이다. 개정안은 조합원의 ‘가담 정도’에 따라 책임 범위를 다르게 하고 조합원이 노조 결정에 따라 행동한 경우에는 개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책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


중소기업들은 특히 ‘사용자 범위 확대’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추문갑 중소기업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하도급 근로자들이 원도급인 대기업에 단체교섭까지 요구하면 해당 대기업이 계속해서 일을 주겠느냐”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원·하도급 관계가 분명한 현실에서 노조법 개정안이 처리·시행될 경우 실질적인 책임과 손해보상 부담은 결국 하도급인 중소기업 대표에게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거센 반발 속에서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란봉투법에 대해 “노사 대화 촉진법이자 상생의 법”이라는 종전 입장을 고수했다. 고용부가 경제계 혼란을 반영해 제시한 수정안은 대부분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원안에 가까운 형태로 국회 문턱을 넘었는데도 김 장관은 이를 “진짜 성장법”이라고 평가해 논란이 일었다.

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노조법 개정은 산업 현장의 절박한 요구”라며 이미 두 번 거부된 법안인 만큼 국회가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조속히 입법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의 우려에 대해선 “정부가 불확실성 제거를 위해 권리 분쟁 부분을 제외하는 등 최선을 다했다”고 답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2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등을 담은 상법 추가 개정안도 기업 경영 활동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경제 8단체는 “상법 추가 개정은 사업 재편 반대, 주요 자산 매각 등 해외 투기자본의 무리한 요구로 이어져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과 새로운 성장동력 확충을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

재계는 법안에 기업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을 계속해 나갈 방침이다. 대한건설협회, 대한석유협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등 주요 업종별 단체들은 30일 노란봉투법 개정 중지 촉구 성명을 공동으로 발표하고, 손경식 경총 회장은 31일 기자회견을 열어 마지막 호소를 이어 갈 예정이다.

앞으로도 기업에 부담을 주는 법안들이 다수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가 낮췄던 법인세율과 대주주 기준을 원상 복구하려는 당정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법정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법안이 국회에 다수 계류돼 있다. 주 4.5일 근무제 논의도 조만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나 규제들이 동시에 쏟아질 경우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고 경영 불확실성이 커져 생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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