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지역화폐…9조 발행해 2천억 손해

한재범 기자(jbhan@mk.co.kr), 한상헌 기자(aries@mk.co.kr), 류영욱 기자(ryu.youngwook@mk.co.kr)

입력 : 2024.10.03 17:41:17 I 수정 : 2024.10.03 17:46:52
다른곳에 쓰일 재원 끌어다 써
발행액 늘수록 재정적자 쌓여
다른 지역 매출 감소시켜
전국적 경제효과 서로 상쇄




◆ 지역화폐 포퓰리즘 논란 ◆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지역화폐 도입에 나서고 있지만, 당초 지역화폐 도입의 취지와 목적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제도 특성상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취약 소상공인 지원이라는 도입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평가가 많다. 전문가들은 도입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세밀한 경제성 분석과 취약 소상공인에 대한 중점 지원책 마련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3일 학계 의견을 종합하면 국비 지원이 필수적인 지역화폐는 경기 진작 효과에도 불구하고 경제적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지역화폐는 지자체나 중앙정부의 지원을 통해 액면가보다 할인해 판매하다 보니 다른 곳에 쓰일 재원을 끌어다 경기를 진작하는 방식"이라며 "발행액이 늘수록 재정적자도 쌓여 경제적 효과의 총량은 유의미하게 증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견해는 국책연구기관 연구를 통해서도 입증됐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지역화폐 도입이 지역경제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지역화폐 발행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계산했다. 보고서는 2020년 기준 약 9조원이 발행된 지역화폐 중 재정지원액 9000억원을 제외하고서도 2000억원 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지역화폐 발행이 일부 지역 경기에 도움이 되지만 국가 전체의 경기 진작과는 무관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사용 지역이 정해져 있는 만큼 인접 지역에서 쓰일 돈이 사용 가능 지역으로 몰리는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 식 구조란 뜻이다. 조세연은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는 지역화폐는 다른 지역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등 전국적으로 지역화폐가 사용된다고 가정하면 기존 취지인 매출 증가 효과는 상쇄된다"고 했다.

사용처 쏠림 효과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형마트에 흘러갈 돈을 지역 골목상권에 쓰이도록 하는 구조이지만 상대적으로 인기가 많은 업체가 혜택을 누리고 소규모 업체는 소외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정부의 긴급재난지원금이 가구나 의류·잡화 등 내구재 분야 매출에는 도움이 됐지만 대면 서비스, 음식업 등에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고 진단했다. 현금성 재정 지원이 특정 업종에 돈이 몰리는 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역화폐를 대신해 전국적으로 사용이 가능한 온누리상품권으로의 일원화를 통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지역화폐 내실화를 위해서는 사용처 세분화와 경제적 효과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 교수는 "취약 소상공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사용처를 정교하게 타기팅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한재범 기자 / 한상헌 기자 / 류영욱 기자]

증권 주요 뉴스

증권 많이 본 뉴스

매일경제 마켓에서 지난 2시간동안
많이 조회된 뉴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