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레이더] 지역화폐 증액 "마중물" vs "재정부담"…'양날의 검' 되나
정부 방침과 달리 야당 단독 처리로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 2조원 반영 지역경제 활성화 기대 더해 지자체 간 '상대적 박탈감' 야기 등 우려도
최수호
입력 : 2024.11.28 06:01:02
입력 : 2024.11.28 06:01:02
(전국종합=연합뉴스) 정부가 제한된 기대 효과 등을 이유로 단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던 내년도 지역화폐(지역사랑상품권) 예산이 국회 다수인 야당 주도로 올해보다 대폭 증가할 가능성이 보이자 전국 지자체 반응도 엇갈린다.
정부 지원이 많아질수록 시민·소상공인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늘 것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국비 증액분에 맞춰 관련 지방비 투입을 무작정 늘리기에는 재정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다는 등 부정적인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지역화폐 사업은 지역 자금 역외 유출을 막고 소상공인 터전인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등에 돈이 돌게 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
행정안전부 등에 따르면 지역사랑상품권을 발행하는 지자체는 2007년 17곳에 불과했지만, 현재 190곳으로 급증했다.
지역민들은 지류(종이)·카드·모바일형으로 발행되는 지역화폐를 구입해 전통시장 등에서 물품을 사면 대체로 결제금액의 7∼10% 정도의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주민들이 받는 할인 금액에 대한 예산을 일정 비율로 분담하고 있다.
당초 이 사업은 지자체가 자체 예산을 편성해 실시했으나, 정부는 2018년 고용위기 지역인 경남 고성 등 4곳에 국비 100억원을 지원했다.
이후 2019년 884억원에서 2020년 6천690억원, 2021년 1조2천522억원까지 정부 지원이 확대됐다가 2022년 8천50억원, 2023년 3천522억원, 2024년 3천억원 등으로 그 규모가 점차 줄어들었다.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시행하고 효과 또한 개별 지역에 한정되는 사업에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에 따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부는 2025년도 예산안에도 관련 예산을 아예 편성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20일 더불어민주당이 다수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이른바 '이재명표 예산'으로 불리는 지역화폐 예산 2조원 신규 반영 등을 골자로 한 내년도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했다.
이는 예비 심사를 마친 상임위별 예산 중 단일 항목으로는 가장 큰 증액 규모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측은 "경기 침체기에 확실한 마중물을 부어야 한다는 취지"라고 밝혔다.
정부 예산안을 둘러싸고 여야 간 공방이 지속하는 탓에 아직 내년도 지역화폐 예산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올해보다 6배 이상 많은 국비가 내년도 지역화폐 사업에 풀릴 가능성도 있어 지자체들은 국회 예산심사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간 다수 지자체는 지역화폐 국비 예산이 계속해서 줄어들자 임시방편으로 지역사랑상품권 할인율을 낮추거나 발행 규모를 줄이고, 1인당 구매 한도 등도 축소해왔다.
인천시는 야당이 추진한 이번 지역화폐 예산 증액을 두고 "정부 지원이 활성화하면 시민·소상공인 등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늘어난다"며 찬성했다.
앞서 인천시는 정부의 지역화폐 축소 기조로 국비 지원이 줄어들자 가맹점 연 매출에 따라 캐시백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역화폐인 이음카드 사용 혜택 범위를 줄였다.
그 결과 이용자 이탈 현상이 발생해, 해당 카드 결제액은 2022년 4조5천억원에서 지난해 3조2천억원으로 급감했다.
인천시 관계자는 "이음카드 이용률은 캐시백 비율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며 "국비가 증액되면 캐시백 비율 상향 등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전남도와 충북도, 수원시·안산시 등 경기지역 기초단체 등도 "지역경제가 순환하려면 소상공인이 힘을 내야 하며, 가장 성과가 좋은 정책은 지역화폐"라는 등 이유로 환영 의사를 밝혔다.
반면 한계에 이른 자체 재정이나 인구감소 등 영향으로 지역화폐 사업을 확장할 수 없는 곳도 다수라, 정부의 관련 예산 확대가 오히려 지자체 간 '상대적 박탈감'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실제 강원도 원주시는 줄어든 지방교부세 등으로 2년 연속 재정에 빨간불이 켜진 상황이라,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지역화폐 발행 축소 기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원주시 측은 "다른 분야 예산을 삭감해 세수 결손에 대비하는 상황이라 불가피하게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지역화폐 사용이 활성화되지 않은 시·군에서는 국비 지원 증액이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질지도 미지수다.
지난해의 경우 충북 제천시와 보은군은 지원받은 지역화폐 관련 국·도비를 모두 사용하지 못해 일부를 반납했으며, 이를 재분배 받은 인근 청주시와 옥천군이 반사이익을 누린 사례가 있다.
이밖에 정부 예산 증액으로 지역화폐가 과다하게 발행되면 지역 물가 교란, 부정 유통 등 기존에 목격된 부작용들이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최근 충북 옥천군은 지역화폐가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시중보다 싼 가격에 금을 사들일 수 있는 '금테크' 수단으로 악용될 기미가 보이자 단속을 강화한 바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지역화폐 정부 예산이 살아난다면 반길 일이지만 그 규모가 2조원으로 최종 확정된다면 재정 부담이 너무 커지는 걱정도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역화폐가 활성화되고 재정 여건이 좋은 지역으로만 증액된 국비가 몰릴 가능성도 있어 국비·지방비 분담 비율 조정 등 대책 마련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전창해 김상연 형민우 이정훈 허광무 이재현 최종호 고성식 최수호 기자)(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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