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론 퇴직금 산정에 이것까지 포함된다고?”…뒤집힌 통상임금 개념 보니

박민기 기자(mkp@mk.co.kr)

입력 : 2024.12.19 21:22:57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19일 오후 전원합의체 선고를 위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 입장해 착석해 있다. 이날 대법원은 지급 시점 기준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 해당 여부, 장애인 접근권 방치의 국가 책임 여부, 친일재산귀속법 관련 사건 관련 선고를 진행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에 대한 개념을 재정립한 것은 2013년 재직 조건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전합 판결이 나온 이후 약 11년 만이다. 대법원은 2020년 한화생명보험 통상임금 관련 사건을 접수한 이후 약 4년간의 심리 끝에 재직·근무 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된다는 새로운 판례를 내놨다.

이 사건 관련 한화생명보험 전현직 근로자들은 회사를 상대로 재직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상임금에 넣어 재산정한 시간 외 근무수당 차액을 청구했다.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벗어나 재직 조건부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현대자동차 전현직 근로자들은 ‘기준 기간 내 15일 미만 근무한 경우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건이 부과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된다고 주장하며 이를 통상임금에 넣어 재산정한 연장근로수당 등 차액을 청구했다. 앞서 1·2심은 근무 일수 조건부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지만, 대법원은 ‘해당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 환송했다.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대가로 근로자에게 지급하기로 정한 임금’을 뜻한다. 연장·야간·휴일근로에 대한 가산임금과 연차·휴가수당 등을 산정하는 데 활용되는 기준임금이다. 통상임금에 대한 노사 관심은 국내에서 특히 더 큰 편이다. 국내 기업은 대부분 기본급에 비해 상여나 수당 등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근로자가 소정근로시간(1일 8시간·주 40시간)을 초과해 연장·야간근무 등을 할 때 통상임금의 1.5배를 가산해서 지급되는 만큼, 근로자 입장에서는 통상임금이 늘면 그만큼 수익이 더 늘어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통상임금에 해당하려면 정기성·일률성·고정성 등 요건이 충족돼야 하는데, 여기서 고정성은 고정적으로 조건 없이 정해진 금액이 확실히 지급되는 것을 뜻한다. 즉 근로를 제공하는 그 순간 지급이 확정되는 수당이다.

이날 선고된 사건의 쟁점은 통상임금의 개념을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지 등이었다. 앞서 자동차 부품업체인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관련 사건을 심리한 대법원 전합은 2013년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경우 해당 요건 중 고정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근로자가 근로를 제공하는 시점에서 퇴직 여부, 근무 일수 충족 여부 등 상여금 지급 조건 성취 여부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고정성이 부정된다는 취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날 전원 일치 의견으로 고정성을 통상임금 해당 요건에서 제외하고 통상임금의 개념과 판단 기준을 재정립하기로 했다. 고정성을 통상임금 해당 요건 중 하나로 보고 재직·근무 일수 등 조건부 정기상여금의 통상임금성을 부정한 2013년 판례를 바꾼 것이다.

대법원은 통상임금에 관한 규정인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 제1항을 비롯한 법령 어디에도 고정성에 대한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다. 법령상 근거 없이 ‘임금의 지급 여부나 지급액의 사전 확정’을 의미하는 고정성을 통상임금 요건으로 요구하면 통상임금의 범위가 부당하게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근로기준법 시행령 제6조는 ‘통상임금이란 근로자에게 정기적·일률적으로 또는 소정근로 등에 대해 지급하기로 한 금액을 말한다’고 규정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통상임금은 소정근로의 가치를 평가한 개념으로, 그 자체의 가치를 온전하게 반영해야 한다”며 “통상임금이 전제하는 근로자는 ‘소정근로를 온전하게 제공하는 근로자’로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다만 대법원은 11년 만에 갑작스럽게 판례가 바뀌면 혼란이 가중될 수 있는 만큼 새로운 법리는 이날 이후 산정되는 통상임금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비슷한 쟁점으로 다투는 통상임금과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는 새로운 판례가 소급 적용된다.

대법원 관계자는 “고정성 개념을 폐기하고 통상임금의 본질인 소정근로 대가성을 중심으로 개념을 재정립한 것”이라며 “새로운 법리가 이 판결 선고 이후 통상임금 산정부터 적용되도록 한 것은 판례 변경에 따른 막대한 파급효과와 종전 법리에 대한 신뢰 보호를 고려해 당사자의 권리 구제 등을 배려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선고를 두고 법조계에서는 고정성의 해석 영역을 확대할 필요성은 있지만, 기존 판례 이후 11년 만에 급하게 법리가 바뀌면 기업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진수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기업들 입장에서는 2013년 대법원이 제시한 기준을 믿고 지금까지 노사 간 임금 체계를 구축해왔는데, 갑작스럽게 무효가 되면 노사 신뢰가 침해될 수 있다”며 “재원이 한정돼 있고 고정지출이 정해져 있는 기업들은 수당 삭감 등 다른 부분에서 감축에 나설 수 있어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근로자에게 100% 유리한 판결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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