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北의 엄마가 간암이래요, 제발 남한의 좋은 약 좀 구해주세요"

"엄마처럼 죽지 않을 겁니다", "아버지 공개처형 직접 봤어요"조명숙 여명학교 교장 "탈북 청소년, 엄마 간식 먹은 적 없어"
윤근영

입력 : 2023.06.30 06:00:00 I 수정 : 2023.08.21 11:11:40
[※편집자 주= 조명숙 여명학교 교장 인터뷰 기사는 세 차례로 나눠 송고합니다.

원래는 두차례로 나눠 송고할 예정이었으나 인터뷰 분량이 많아 3차례로 나눠 송고키로 했습니다.

첫 번째 기사는 지난 26일 "아들아, 된장 물 한 사발만 있으면 나 이렇게 죽지 않을 듯한데"라는 제목으로 송고됐습니다.

오늘(30일) 송고된 기사는 두 번째 인터뷰 기사입니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명숙 교장
[촬영 이건희]

(서울=연합뉴스) 윤근영 선임기자= "나는 엄마처럼 죽지 않겠다" 이는 남한에 온 북한 청소년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남한의 청소년들처럼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조명숙(54) 여명학교 교장은 지난 14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 출신 아이들은 부모가 굶어 죽고, 장마당에서 공개 처형되는 것을 목격했다고 전했다.

이들 아이는 어머니처럼, 아버지처럼 죽을 수는 없다고 판단해 목숨을 걸고 남한으로 왔다고 했다.

조 교장은 남한에 있는 청소년들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통화하는 일이 있는데 어머니가 간암, 폐암, 유방암 등에 걸렸다면서 남한의 좋은 약을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 약들은 의사의 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기에 슬프고 안타깝다고 했다.

여명학교는 서울 남산 기슭에 있는 탈북청소년 중고등학교 과정 대안학교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명숙 교장
[촬영 이건희]

1970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태어난 조 교장은 대학생 시절인 1993년부터 외국인노동자를 도왔다.

1997년에는 탈북민 지원으로 전환했다.

탈북민 문제가 외국인 노동자 문제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편 등과 함께 1997년부터 2년간 두만강 변, 백두산 자락 등에서 탈북민을 구호했다.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탈북민 13명을 이끌고 베트남 주재 한국 대사관에 도착, 이들이 한국에 입국하도록 도왔다.

2003년에는 탈북청소년 야학인 '자유터학교'를 열었고, 2004년에는 탈북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를 제안해 이 학교가 문을 여는 데 기여했다.

그는 이 학교 교감을 거쳐 지금은 교장으로 일하고 있다.

남편은 난민을 위한 시민단체 '피난처'의 이호택(64) 대표다.

조 교장은 2012년 제9회 촛불상과 제24회 아산상 사회봉사상, 2014년 제8회 통일문화대상을 받았고, 2015년에 아쇼카 펠로우로 선정됐다.

저서로는 '사랑으로 행군하다', '여기가 당신의 피난처입니다', '꿈꾸는 땅끝' 등이 있다.

미얀마 아웅산 수치 석방 운동 당시의 조명숙
[본인 제공]

--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약을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데.

▲ 한국에 온 아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북한에 있는 부모와 통화하기도 하고, 돈을 보내기도 한다.

북한에 있는 어머니가 아픈데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간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엄마가 유방암, 간암, 폐암 등에 걸려 남한의 좋은 약을 보내달라고 한다면서 나한테 부탁하는 아이도 있다.

이럴 때는 난감하다.

암에 좋은 약은 항암제인데, 의사처방 없이는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북한 병원은 도움이 안 되는가.

▲ 북한 병원에는 의사는 있으나 약이 없다고 한다.

치료받으려면 환자가 밖에서 약, 수술 도구, 주사기 등을 구해서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의사들이 공식적 의료활동으로 먹고살기 어려워 집에서 몰래 불법 의료행위를 하기도 한다.

-- 한국에서 아이들이 피 뽑는 것을 싫어한다고 하던데.

▲ 건강검진을 위해 피를 뽑는 경우가 있다.

북한에서 온 아이들은 채혈을 무서워해서 도망치기도 한다.

북한에서 아이들은 수혈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영양제가 없는 북한에서는 환자가 아프고 기력이 부족하면 공동체 단위로 헌혈하도록 해서 환자에게 수혈한다.

수혈이 누구한테 도움을 준다면 피를 제공하는 사람한테는 손해가 된다고 인식하는 것이다.



서울 남산기슭에 있는 여명학교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것 같은데 어떻게 푸나.

▲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스트레스를 덜 받는 성격인 것 같다.

학교 아이들과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아이들과 함께 떠들고 논다.

일반적으로 교장 선생님이라고 하면 근엄하고 진지한 인상을 주는데, 나는 아이들과 장난치고 먹을 것을 만들어주곤 한다.

이렇게 생활하니 스트레스가 덜 쌓이는 것 같다.

-- 교장 선생님이 먹을 것을 만들어주나.

▲ 교장실이 아주 작은데, 아이들의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나는 여기에서 달고나도 만들어주고, 호빵도 만들어 먹인다.

간식 시간에 아이스크림도 나눠주곤 한다.

아이들은 엄마가 만들어 준 간식을 먹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래서 나는 엄마가 자식에게 해 주듯 이것저것을 만들어준다.

아이들은 사랑을 받으면 밝아지고 예뻐진다.

연합뉴스와 인터뷰 중인 조명숙 교장
[촬영 이건희]

-- 본인의 삶의 원칙은 무엇인가.

▲ 잘살자는 것, 열심히 살자는 것이다.

나는 죽을 때 나의 삶이 부끄럽지 않고, 민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 아이들 교육의 목표는.

▲ 나는 여명학교 아이들이 일류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

잘 나누고, 사랑받고, 사랑할 줄 아는 아이들로 키워나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 북한 아이들의 성향은 어떤가.

▲ 마음이 따뜻하다.

힘든 삶을 살아와서 그런지 고난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도우려 한다.

튀르키예 지진이 발생했을 때 여명학교 학생들과 졸업생이 며칠 만에 500만 원의 성금을 모아서 주한 튀르키예 대사관에 전달하기도 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이 받은 장학금을 모두 후원했다.

북한 아이들은 똑똑하다.

교육을 잘 받으면 한국의 좋은 일꾼이 될 수 있다.

남과 북을 모두 경험했기에 통일에도 좋은 인적자원이 될 것이다, (취재지원 이건희 인턴기자) keunyou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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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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