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 모럴해저드] ① '방안의 코끼리' 심사역 개인투자
입력 : 2023.07.12 08:30:07
제목 : [VC 모럴해저드] ① '방안의 코끼리' 심사역 개인투자
품앗이·차명·법인설립까지 천태만상... 스타 심사역에 상대적 박탈감 느껴문제점이 뻔히 보이지만, 건드리면 골치가 아파질까 누구도 얘기하지 않는 문제를 '방안의 코끼리(elephant in the room)'라고 한다. 심사역의 개인투자는 점점 더 빈번해지고 있지만 심사역은 물론 벤처캐피털 임원, 대표들까지 이 문제를 입에 올리기를 꺼려한다. 이들이 심사역 개인투자에 대한 언급을 피하게 된 데는 관련 규제 미비, 심사역 이탈 리스크, 대외평판 하락에 대한 우려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톱데일리] "중간관리자가 룸(개인투자 기회)을 열지 못하면 민심을 잃는다" 얼마 전 만난 한 벤처캐피털 심사역(벤처캐피털리스트)의 말이다. 심사역의 개인투자가 당연시되는 최근 세태를 읽어낼 수 있다.
벤처캐피털은 유망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고 향후 지분을 매각해 수익을 낸다. 심사역은 포트폴리오(피투자기업) 발굴과 투자집행, 사후관리 등 투자 전 과정에 관여한다. 펀드 결성 과정에도 심사역 역할이 꽤 크다. 유한책임출자자(LP)는 출자 과정에서 펀드매니저, 특히 펀드 운용을 총괄하는 대표 펀드매니저의 트랙레코드(투자실적)를 따져본다. 펀드매니저는 심사역이 맡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그만큼 심사역이 벤처캐피털의 중추라 볼 수 있다.
벤처캐피털에 투자 재원을 대는 LP 입장에서 심사역의 개인투자는 눈엣가시다. 심사역이 유망 투자처에 개인 돈을 묻어두는 '체리피킹'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심사역이 특정 기업에 먼저 투자하면 벤처캐피털이 동일 투자처에 투자하기 난감해진다. 펀드의 후행투자는 자칫 심사역의 개인 투자 성과를 끌어올리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 후행투자가 이뤄질 경우 보통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의 기업가치는 이전 투자 수준보다 상승하기 마련이다. 펀드의 운용 성과 극대화가 아니라 심사역 개인 투자 성과를 위해 LP 출자금이 사용된다고 비칠 여지가 있다. 이해상충 논란을 막기 위해 국내 대부분 벤처캐피털이 심사역이 개인투자한 기업에는 펀드로 투자하지 않는 내부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실무적으로 벤처캐피털의 이해상충방지 규정은 쉽사리 무력화된다. 대표적으로 심사역 자신이 투자한 기업을 잠재 투자처에서 배제하는 방식이 있다. 심사역이 기업에 대한 보고를 의도적으로 누락하거나, 그다지 유망해 보이지 않다고 판단하면 해당 기업은 자연스레 벤처캐피털의 레이더망에서 멀어지게 된다. 심사역이 투자집행과 발굴을 동시에 담당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LP가 심사역 또는 벤처캐피털에 '왜 투자를 하지 않았냐'고 따져 묻기는 어렵다. 원칙적으로 LP는 운용사(GP)의 펀드 운용 방식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 LP가 특정 기업에 왜 투자하지 않았냐고 지적한다면 이는 자칫 GP의 권한을 침범하는 월권행위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
벤처캐피털이 비상장기업, 스타트업에 주로 투자한다는 점도 심사역 개인투자가 성행하는 이유 중 하나다. 스타트업은 일정 궤도에 진입하기 전까지 적자를 내는 것이 보통이라 정량적 수치로 기업가치를 산정해내기 어렵다. 스타트업이 속한 산업군, 대표이사의 이력, 직원들 능력 등 정성적 요인이 기업가치 평가에 영향을 미친다. 스타트업 기업가치는 투자자 기대감으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심사역이 스타트업 기업가치 측정에 상당한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배경이다.
일부 심사역은 이런 상황을 악용, 타사 또는 타사 심사역과 일종의 파트너십을 맺고 서로의 포트폴리오를 밀어주는 '품앗이 투자'를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A 심사역이 선행 투자를 한 뒤, 다른 벤처캐피털 소속 B심사역이 동일 기업에 후행 투자를 진행해 A 심사역이 보유한 지분 가치를 상승시키는 방식이다.
가장 악질로 꼽히는 건 "개인 룸을 열어줘야 투자를 진행하겠다"는 반 협박식 투자 방식이다. 차명으로 회사 지분을 먼저 취득한 뒤, 벤처캐피털 펀드를 동원해 자신의 투자 단가보다 높은 수준에서 투자를 집행한다. 문제 소지가 분명하지만 투자 유치가 절실한 스타트업 입장에선 심사역 요구를 내치기는 쉽지 않다. 투자 형태를 띠고 있지만 즉각적 지분 가치 상승이 예정돼 있으므로 사실상 회사가 투자 유치를 대가로 심사역에게 뒷돈을 챙겨주는 셈이다. 최근에는 개인법인으로 투자를 집행해 심사역 개인투자 사실을 감추는 방식도 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벤처캐피털 심사역은 최근 심사역 개인투자가 늘어나는 배경으로 상대적 박탈감을 꼽았다. 플랫폼, 정보·통신(IT) 분야 스타트업 투자 성공으로 막대한 성과보수를 받은 일명 '스타 심사역'들이 등장하면서 개인투자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고 했다.
스타 심사역 대부분은 플랫폼 산업 태동기에 벤처투자 업무를 접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벤처펀드 결성부터 회수까지 통상 6~7년이 걸린다. 저연차 때 투자를 집행했던 포트폴리오가 폭발적 성장세를 보이며 투자 당시 대비 기업가치가 수백 배가량 상승한 것이다.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플랫폼 관련 벤처펀드들이 청산되면서 수십억원대의 성과보수를 올린 심사역들이 나타났다.
스타 심사역보다 불과 수년 늦게 시장에 진입한 세대가 처한 환경은 사뭇 다르다. 이들은 플랫폼 호황기 '끝물'에 진입해 투자 회수에 따른 과실을 거의 받아보지 못했다. 최근 벤처투자시장이 급속히 냉각되면서 이들이 투자한 포트폴리오의 기업가치는 상승은커녕 유지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일확천금의 꿈을 실현해 줄 '제2의 플랫폼' 투자가 가능하리라는 기대감도 희박하다.
몇 년 앞선 선배들은 수익, 트랙레코드(투자 이력) 측면에서 후배들이 영영 넘보기 어려운 존재가 됐다. 연차 차이가 크지 않아 스타 심사역들이 은퇴하기 전까지는 후배 세대의 승진 및 대표 펀드매니저 진급에도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 심사역은 자신들을 '군번 꼬인 세대'로 비유하기도 한다.
타 산업에서 근무하다 최근 벤처캐피털 업계로 적을 옮긴 심사역들의 낭패감도 개인투자를 부추기는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수년간 벤처투자시장이 호황을 맞으며 신생 벤처캐피털 회사가 우후죽순 설립됐고 심사역 수요도 따라 증가했다. 대기업, 회계법인, 증권사 등에 근무하던 이들이 기존보다 높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심사역으로 전직했지만, 호황기는 갑작스레 저물었다. 트랙레코드가 이미 다른 벤처캐피털로 이직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망가져 개인투자로 눈을 돌리는 심사역이 적지 않다는 전언이다.

톱데일리
신진섭 기자 jshin@top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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