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명품도시' 마드리드의 재조명 ③

성연재

입력 : 2022.12.29 08:00:03
예술의 도시 마드리드 (마드리드=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시대와 장르를 불문하고 최고 수준의 예술을 한 도시에서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 마드리드를 추천하는 경우가 많다.

프라도 거리를 두고 삼각형으로 들어서 있는 프라도 미술관과 레이나 소피아, 티센 미술관 등을 일컫는 '예술의 골든 트라이앵글'(Golden Triangle of Art)을 방문하다 보면 비행기표를 연기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열정 가득한 플라멩코는 처음 보는 사람들의 어깨도 움직이게 할 만큼 매력적이다.


프라도 미술관 앞의 긴 줄 [사진/성연재 기자]

◇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관람은 더 짧다 프라도 미술관 여행 코스 가운데 하나로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끼워 넣는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마드리드의 미술관들은 그 자체가 여행의 목적지가 되는 경우도 많다.

마드리드 역사와 문화가 밀집된 프라도 거리에는 프라도 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디에고 벨라스케스와 프란시스코 고야의 작품 등 8천600점의 회화 작품과 700점의 조각품을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큰 미술관 중 한 곳으로 꼽힌다.

프라도는 다른 유럽의 대형 미술관과 마찬가지로 시대별, 지역별, 사조별로 작품을 모아놨다.

관람객들이 자연스럽게 미술사의 흐름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0층에서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프라도를 대표하는 역작 가운데 하나인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이다.

착상이 기상천외하고 엉뚱한 이 작품은 인류의 영원한 숙제인 육욕과 심판 등을 표현하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쾌락의 정원'[프라도 미술관]

1층 정중앙 8각형의 방 한가운데 자리 잡은 12번 홀에는 관람객의 시선을 한눈에 받는 작품이 있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다.

1657년 완성한 이 작품은 펠리페 4세의 귀염둥이 마르가리타 공주와 시녀 및 광대들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다양한 장치가 숨어 있어 서양 회화 사상 가장 미스터리하면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1980년대 영국 잡지의 설문 조사 결과 서양 회화 역사상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된 일화는 너무나 유명하다.

비밀은 두 가지.

화가로 등장하는 벨라스케스 본인이 마주한 대형 캔버스와 뒤편 거울에 흐릿하게 비친 펠리페 4세 부부의 모습이다.




벨라스케스의 '라스 메니나스'(시녀들) [프라도 미술관]

이 장치는 과연 화가가 그리는 것이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한다.

이런 요소 덕분에 이 그림은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저서 '말과 사물' 첫머리에서 이 그림에 대한 해석에 공을 들이기도 했다.

이 미술관에서 또 관심을 가져야 할 작가는 고야다.

스페인 출신의 고야는 궁정화가로서 나폴레옹 전쟁 전후 시대에 이름을 날리던 화가다.

궁정화가로서 단란한 왕가의 모습을 그린 작품 '카를로스 4세 가족'이 인상적이다.

이 작품 왼편에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고야 자신의 모습인데, 벨라스케스를 존경해 모방한 것이다.

프랑스 군대가 스페인의 민중 봉기자들을 처형하는 모습을 그린 '1808년 5월 3일 마드리드'도 빼놓을 수 없는 역작 가운데 하나다.

이곳에는 고야의 유명한 누드화 '마야'도 있다.

옷 입은 그림과 옷을 벗은 모습이 있는데, 의뢰인은 친구들을 모은 자리에서 옷 입은 마야 그림 아래 숨겨진 누드화를 보여줬다고 한다.

이 그림은 서양미술사에서 여성의 체모를 묘사한 최초의 누드화다.

고야는 당시에 금지된 누드화를 그린 죄목으로 종교재판까지 받았으나 지인들의 탄원으로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

고야 작품은 그가 불우한 시절 그린 작품만을 모아둔 방이 따로 있을 정도다.

말년의 우울한 그는 자신의 집안 곳곳에 기괴하고 암울한 내용의 그림을 잔뜩 그려놨다.

자식을 뜯어먹는 모습을 그린 '사투르누스' 등의 그림은 너무 기괴해 보기에 부담스러울 정도다.

일명 '검은 그림'들이다.

◇ 작지만 강렬하다 티센 보르네미사 미술관 독일·헝가리계 귀족인 한스 하인리히 티센은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가문의 컬렉션을 한곳에 모으고 싶어했다.

그 소문을 들은 수많은 유럽의 도시들은 물론 미국의 게티가문까지 구애 작전을 벌였다.

스페인은 넵튠 분수 가까이 있는 18세기 궁전 비야 에르모사를 전시공간으로 제시했고 결국 마드리드가 낙점됐다.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가 재임 기간 가장 아쉬웠던 일 가운데 하나로 티센 미술관을 놓친 것을 꼽을 정도였다.


티센 미술관 로비 [사진/성연재 기자]

티센 미술관에는 티센 일가가 수집한 다양한 미술품들이 소장돼 있다.

한가지 특징은 이곳에 전시된 소장품은 장르와 시대 구분이 없다는 점이다.

14세기 고딕 미술부터 20세기 모더니즘까지 다양한 미술품들을 볼 수 있다.

티센을 방문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존 앳킨스 그림쇼의 '고요한 글래스고'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아뿔싸.

이 작품은 다른 곳에 대여되고 없었다.

그림쇼는 달빛을 받은 밤 풍경 등을 잘 묘사한 화가 가운데 하나다.

아쉽지만 다른 그림들로 만족해야만 했다.

이곳에는 프랑스 인상파 거장 카미유 피사로의 1897년 작 '오후의 생토노레 거리, 비의 효과'가 있다.

피사로가 자신이 묵고 있던 호텔 객실의 창문에서 비 오는 거리를 그린 이 그림은 한 유대인이 사들인 뒤 독일을 탈출하는 과정에서 나치 관리에 강제로 빼앗겼다.

이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뀐 뒤 독일 기업가이자 미술품 수집가였던 한스 하인리히 티센 보르네미사 남작에게 넘어갔고, 이곳에 소장됐다.

최근 이 작품이 티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대인 가족이 반환을 요구하는 소송을 걸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티센 미술관 전경 [사진/성연재 기자]

2019년에는 미 캘리포니아 연방법원이 스페인 법에 따라야 한다면서 미술관의 손을 들어줬으나 대법원은 캘리포니아 법으로 봐야 한다고 결정해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그러나 외신들은 대법원의 결정 자체가 그림의 소유권이 유대인 가족 측에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기엔 어렵다고 전했다.

논란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라, 그 과정에 얽힌 이야기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논란의 가운데 섰던 작품 앞에서는 때마침 한 무리의 그룹이 몰려 그림에 대한 스토리를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미술 여행은 이런 재미를 안겨준다.

수많은 작품 하나하나에 소소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티센 미술관에서 가장 인상적인 미술품은 의외로 숱한 예술작품이 아니라 고야의 누드 작품을 패러디한 것이었다.

유방암으로 가슴을 잃어버린 환자의 모습을 묘사한 작품은 사회적인 반향을 일으켰다.

1층 오른편에서는 피카소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려야 했다.

게르니카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고야의 누드 작품을 패러디해 유방암 환자의 모습을 그려 사회적 반향을 일으킨 작품 [사진/성연재 기자]

◇ 게르니카가 있는 레이나 소피아 마드리드의 3대 미술관 가운데 하나인 레이나 소피아를 빠뜨릴 순 없다.

1975년부터 2014년까지 재위한 소피아 스페인 왕비의 이름을 따온 이 미술관은 19세기부터 현대까지의 미술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피카소, 달리, 미로 등 20세기의 뛰어난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티센 미술관 인근에 있었지만, 다음날 방문해야 했다.

귀국 비행기를 타야 했기에 시간이 없어 호텔에서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다시 레이나 소피아로 달려갔다.

이곳에는 피카소의 명작 '게르니카'가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의 야만성을 폭로한 작품이다.




게르니카 [레이나 소피아]

피카소 회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피카소는 1937년 4월 26일 프랑코 군을 지원하는 나치 비행기가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작은 마을 게르니카를 폭격해 2천여 명의 시민을 숨지게 한 폭력을 캔버스에 표현했다.

구체적인 참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단조로운 색상으로 아이의 시체를 안고 절규하는 여인, 부러진 칼을 쥔 채 쓰러진 병사, 미친 듯 울부짖는 말 등 어둡고 절망적인 모습들이 잘 나타나 있다.

프랑코의 독재가 계속되는 한 조국과 화해할 수 없다고 한 피카소의 신념으로 인해 이 작품은 1981년에야 스페인으로 반환돼 프라도 미술관에 보관됐다가 보관상의 문제로 1992년 개관한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이곳에는 수많은 작품이 전시돼 있으나, 시간이 부족해 다 둘러보지 못했다.

아쉬움이 가득했다.

레이나 소피아의 소장품도 훌륭하지만, 입구의 카페와 서점도 매력적이다.




코랄 데 라 모레리아의 플라멩코 공연 [사진/성연재 기자]

◇ 정열의 상징 플라멩코 스페인 미술과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전통무용인 플라멩코다.

이 춤은 기타 연주와 노래, 손가락 튕김, 박수와 함께 공연된다.

스페인 집시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고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에서 특히 많이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관람을 한번 한 경험이 있던 터여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플라멩코 공연을 볼 수 있는 마드리드 왕궁 근처의 레스토랑 '코랄 데 라 모레리아'를 찾았다.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이곳은, 명성 덕분인지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워낙 유명한 곳이다 보니,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등 수많은 인사가 이곳을 찾았다.

뉴욕타임스가 소개하는 '죽기 전에 가야 할 1천 곳' 가운데 하나로 소개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공연 시작 전 음식이 나오는데, 플라멩코 공연 중심의 레스토랑이라 맛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지만 기대 이상이었다.

전채 요리는 시키지 않았지만 옆자리 동료의 경우 수프도 꽤 맛있었다고 한다.




코랄 데 라 모레리아의 플라멩코 연기자들 [사진/성연재 기자]

주요리는 대구 요리로, 스페인에서 먹었던 어떤 곳보다 맛있었다.

동료가 주문한 돼지 목살구이도 꽤 만족스러웠다고 한다.

공연 시작 후 5분간만 사진 촬영이 허락된다.

이후에는 공연 감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사진 촬영이 금지돼 있다.

공연은 모두 1시간 10분가량 진행되는데 몰입감이 엄청났다.

쿵쿵 발을 구르는 소리는 북소리를 울리는 것만큼 사람들의 심장을 고동치게 한다.

우리나라 사물놀이를 처음 접하는 외국인들이 큰 거부감 없이 빠져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남녀 출연자들의 움직임은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더욱 빨라지며 관객들도 함께 감정이 고조된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공연과 식사였기에 그 만족도는 몇 배 더했다.

팬데믹이 다 끝난 것이 아니었기에 입추의 여지 없이 꽉꽉 들어찬 모습이 더 놀라웠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2년 1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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