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들어 SM엔터테인먼트·오스템임플란트에 이어 주요 금융지주처럼 오너 지분이 낮거나 없는 상장사에 지분경쟁이 붙어 주가가 급등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이 같은 지분경쟁은 대주주 입장에서는 피를 말리는 싸움이다. 하지만 이들 싸움과 관련해 '강 건너 불 구경'하지 않고 미리 매수한 투자자들은 초과 수익률을 거두면서 진정한 승리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작년 8월 이수만 전 SM 총괄프로듀서(작년 9월 말 기준 지분율 18.46%)는 지분 1%를 보유한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의 공격을 받는다.
얼라인 주장은 이 전 총괄이 개인회사 '라이크기획'을 이용해 음반수익을 고정적으로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SM은 2021년 1332억원 규모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하고도 배당금을 주당 200원만 책정해 해당 연도 말 기준 배당수익률이 0.27%에 그쳤다.
H.O.T., 보아, 소녀시대 등 1세대 한류가수들을 키워낸 이 전 총괄은 최대 실적에도 낮은 주주환원으로 회사 안팎에서 인심을 잃게 된다.
특히 새 경영진이 이 전 총괄을 몰아내려고 하자 그는 방탄소년단(BTS) 소속 기업 하이브에 지분 14.8%를 매각하고 지배력을 스스로 낮추게 된다. 낮은 지분율에다 지배력까지 흔들리자 K팝 콘텐츠의 중심이었던 SM은 하이브·카카오 등 외부 세력 지분경쟁의 각축장이 돼버렸다. 마치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서 쫓겨난 양상과 비슷하지만 일반 주주들은 주가 급등(올 들어 14일까지 55.6% 상승)에 표정 관리 중이다.
얼라인은 올 들어서 KB, 신한, 하나, 우리금융 등 금융지주에도 선전포고를 하며 주주들을 웃게 했다. 역대 최고 순이익을 기록한 시중은행 이익이 은행원 등 행내 임직원들에게 돌아가기보다 주주에게 향해야 한다며 투자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냈다. KB·신한·하나금융의 외국인 지분율은 60~70%에 달한다. 반면 이들 금융지주는 오너가 없으며 회장 역시 임기 2~3년이 보통이다.
작년에 매출 1조원을 달성한 아시아 1위 임플란트 업체 오스템임플란트 역시 우호세력 없는 최대주주가 외부에서 공격을 당한 사례다.
오너 최규옥 회장은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지분 매집에 나섰으나 주가가 급등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해 지분율이 20.6%에 불과하다. 최 회장은 지분 6.92%를 보유한 강성부펀드(KCGI)에 지난 1월 후진적인 지배구조라고 대놓고 공격당했다. KCGI는 최 회장이 횡령 등 회사 내부 문제에 대해 책임지고 퇴진할 것과 독립적인 이사회 구성을 요구했다. 2018년 KCGI가 한진그룹을 공격할 때와 비슷하다. 당시 한진칼 2대주주로 올라서면서 최대주주인 고 조양호 회장(지분율 17.8%)을 압박했다.
또 다른 빌미는 형편없는 주주환원이다. 오스템은 작년 사상 최대 실적에도 배당수익률이 0.2%에 그치고 있다. 수세에 몰린 최 회장은 KCGI 대신 또 다른 사모펀드 연합인 유니슨캐피탈코리아(UCK)와 MBK파트너스를 우호지분세력(백기사)으로 끌어들여 경영권 방어에 나섰다. 이에 따라 오스템 주가 또한 올 들어 37% 급등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 수익률(16.1%)을 크게 웃돌았다.
이를 위한 필요조건은 오너의 낮은 지분율과 낮은 배당수익률에 더해 상대적으로 높은 외국인 지분율, 실적 증가 등 '4박자'다.
올 1분기(1~3월) 실적에 대한 증권사 3곳 이상의 추정치가 있으면서 대주주 지분율이 파악되는 상장사 183곳을 분석했다.
이 중 오너 등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0% 미만인 곳은 57곳으로 좁혀진다. 지분율 30%는 최대주주의 지배력에 대한 최소 요건이다.
공정거래위원회 지주회사 요건에서는 지주회사가 상장 자회사를 지배하려면 지분 30% 이상을 보유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30%를 밑돌면서 그 지분율이 외국인 지분율(2월 13일 기준)보다 낮은 곳은 35곳으로 추려진다.
높은 외국인 지분율은 오너에게 배당 등 주주환원 압박의 원동력이 된다. 얼라인과 같은 행동주의펀드가 압박하는 근거 중 하나는 상대적으로 낮은 배당수익률이다.
이에 따라 추려진 상장사 35곳 중 배당수익률이 시중은행 예금금리(4%)보다 낮고 배당을 줄 만큼 올 1분기 실적이 작년 1분기보다 늘어나는 곳으로 좁히면 최종 8곳이다.
한솔케미칼 배당수익률은 1.05%에 그쳐 외국인눈높이를 맞추지 못하고 있다. 한솔그룹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맏딸 이인희 고문이 별세한 후 한솔제지와 한솔케미칼 중심의 형제경영이 이뤄지고 있다.
고 이인희 고문의 맏아들 조동혁 회장은 한솔케미칼을 맡고, 셋째 아들 조동길 회장은 한솔홀딩스를 중심으로 계열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 중 한솔케미칼은 행동주의펀드가 추가 주주환원을 노릴 만큼 실적도 좋다. 올 1분기 매출과 순이익은 각각 2323억원, 495억원으로 1년 전 대비 4.6%, 12%씩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오너가 최대주주도 아니다. 조동혁 회장의 한솔케미칼 지분율(11.65%)은 최대주주인 국민연금(12.06%)에 비해 낮고 외국인(40.27%)에는 한참 밀린다. 이런 지분 구조는 한솔케미칼이 지속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돼 있다는 경고를 듣는 이유다. 외국인은 올 들어 13일까지 주식을 206억원어치 순매수했다.
외부 세력의 보이지 않는 위협은 한솔케미칼과 같은 중견기업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창업자 이해진 총수의 지분율이 3%대로 낮은 네이버는 2017년 이후 우호지분 확보에 혈안이 돼 있다. 2017년 6월 미래에셋증권(1.71%)을 시작으로 2020년 CJ그룹, 2021년에는 신세계그룹·카페24 등과 자사주를 거래하면서 우호지분 3.6%를 추가했다. 콘텐츠 분야의 전략적 동맹 관계인 하이브도 네이버 우군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이 정도 우호지분은 최대주주 국민연금(8.03%)과 2대 주주 미국 사모펀드 블랙록(5.05%)에 못 미치는 수준이다.
네이버의 올 1분기 예상 순익은 1년 새 34.2% 급증한 2032억원으로 추정되지만 배당수익률은 0.42%에 그치고 있다.
박진영 프로듀서(지분율 15.2%)가 이끄는 JYP엔터 역시 K팝 인기에 따라 올 1분기 실적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올 1분기 순익은 202억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20.6% 늘어날 전망이다. 배당수익률은 현재 0.54%로 2019년 이후 0%대 배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업계 경쟁자인 SM이 주주환원이 약하다며 행동주의펀드의 공격을 당했는데도 JYP엔터가 SM의 전철을 밟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은 박 프로듀서보다 2배 이상 많은 지분(38%)을 보유하고 있어 JYP엔터의 부족한 배당 의지가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2021년 기준 JYP엔터와 SM의 배당성향은 각각 18.1%, 3.5%에 그쳤다. 순이익 중 20%도 주주 배당에 쓰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들이 속한 코스닥 상장사의 평균 배당성향 26.9%(2021년 기준)에도 미달되는 수치다.
그럼에도 두 종목 모두 올 들어 주가가 상승세다. 외국인 등 많은 지분을 보유한 외부 세력에 의해 주주환원이 강화될 것이란 기대감이 미리 반영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