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노동' 없애야 공직사회 살아나죠
이진한 기자(mystic2j@mk.co.kr)
입력 : 2025.01.12 17:18:27 I 수정 : 2025.01.12 19:11:13
입력 : 2025.01.12 17:18:27 I 수정 : 2025.01.12 19:11:13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 펴낸 서기관 출신 노한동 작가
한국 상징 'K' 한 글자마저도
수장 바뀌면 "넣어라" "빼라"
불신에 보신주의 극에 달해
파일명에 '과수원' '국수원'
증거 남기려는 문화도 팽배
관료 본래 역할 다할 수 있게
낡은 조직 문화 사라져야죠
공직사회가 위기다. 각종 비위로 징계 처분을 받은 공무원은 늘고, 인재 수급을 위한 공채는 외면받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9급 공채 경쟁률은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입신양명'의 상징이던 5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도 2020년 소폭 반등한 이후 다시 급락하고 있다.
반면 재직 기간을 1년도 채우지 않고 퇴직한 국가공무원은 2023년 3021명으로,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난달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출간한 노한동 작가는 2023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퇴직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5급 사무관으로 일한 지 10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경력 말미에는 대통령실 파견 제의도 받은 참이었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그는 퇴직을 결정한 계기를 묻자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며 "다만 오랜 시간 공직사회에서 경험한 다양한 헛짓거리를 통해 얻은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노 작가는 공직사회가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체계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본질적인 일은 치열하게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만든 '가짜 노동'이 대다수의 관료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을 중시하면서도 정부 기조에 맞춰 연극처럼 준비하는 현장 간담회와 과도한 '호치키스 행정', 가독성만을 강조한 보고서 등이 대표 사례다. 호치키스 행정은 타 부처·부서의 정책을 모아 보고하는 일을 일컫는 공직사회의 은어다.
장관이 바뀌면 새로운 수장의 성향에 따라 조직문화가 급변하는 촌극도 소개했다.
노 작가는 "우리말 사랑이 끔찍했던 장관 재임 시절 정부 사업 명칭에 알파벳 'K'를 뺀다고 고생했던 반면, 후임 장관이 인상적인 단어의 사용을 강조하자 이니셜 K가 범람해 'K-챗GPT' 같은 조악한 단어까지 등장했다"며 "개별 공무원들의 능력이나 사명감은 출중하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문재인 정부의 '월성원전 자료 삭제' 사건 등으로 공직사회의 면피 기조가 심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윗선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에게 징계를 넘어 형사처벌을 비롯한 법적 책임까지 물으면서 '보신주의'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상급자가 보고서를 수정하면 파일명에 '과수원'(과장이 수정 지시), '국수원'(국장이 수정 지시) 같은 단어를 추가하며 알리바이를 남기는 행위를 예로 들었다.
노 작가는 "공무원은 공익의 수호자로서 상관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명령을 양심에 따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면서도 "어떤 명령이 대통령의 통치 행위나 재량 행위에 해당하는지 완벽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기조는 공무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공직사회를 재건하려면 이는 집권당과 무관하게 꼭 해결해야 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가 정부를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주체'로 인식하고 있는 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꼽았다. 발전 국가 시기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이 정부와 관료에게 집중됐던 것은 맞지만, 현재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민주화를 통해 그 권한의 상당 부분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 넘어간 만큼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 최소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관료들의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전문성 함양에 걸림돌이 되는 순환보직제도의 무용성도 비판했다. 오히려 1~2년마다 인사과의 명령에 따라 보직을 변경하면서 조직 논리에 순응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노 작가는 "민간과의 유착 등을 예방한다는 제도의 취지는 거의 살리지 못하고 단점만 부각되고 있다"며 "인사 정책을 설계할 때 인사권자의 편의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신간을 펴낸 까닭이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는데, 책을 통해 그 물꼬를 트고 싶다는 것이다.
노 작가는 "공직사회를 개선할 방안으로 급여 현실화와 5급 공채 제도(행정고시) 폐지, 민간 채용 확대 등을 말하지만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결과는 그대로일 것"이라며 "넘쳐나는 가짜 노동과 쓸데없는 규칙을 걷어내야 관료가 본래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 이진한 기자]
한국 상징 'K' 한 글자마저도
수장 바뀌면 "넣어라" "빼라"
불신에 보신주의 극에 달해
파일명에 '과수원' '국수원'
증거 남기려는 문화도 팽배
관료 본래 역할 다할 수 있게
낡은 조직 문화 사라져야죠
공직사회가 위기다. 각종 비위로 징계 처분을 받은 공무원은 늘고, 인재 수급을 위한 공채는 외면받는 상황이다. 실제 지난해 9급 공채 경쟁률은 3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입신양명'의 상징이던 5급 공무원 공채 경쟁률도 2020년 소폭 반등한 이후 다시 급락하고 있다.
반면 재직 기간을 1년도 채우지 않고 퇴직한 국가공무원은 2023년 3021명으로,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지난달 '나라를 위해서 일한다는 거짓말'을 출간한 노한동 작가는 2023년 4월 문화체육관광부 4급 서기관으로 승진하자마자 퇴직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해 5급 사무관으로 일한 지 10년 만에 내린 결정이다. 경력 말미에는 대통령실 파견 제의도 받은 참이었다.
최근 매일경제와 만난 그는 퇴직을 결정한 계기를 묻자 "특별한 사건은 없었다"며 "다만 오랜 시간 공직사회에서 경험한 다양한 헛짓거리를 통해 얻은 무기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밝혔다.
노 작가는 공직사회가 겉으로는 공익을 위한 체계를 자처하면서도 정작 본질적인 일은 치열하게 외면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만든 '가짜 노동'이 대다수의 관료를 잠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을 중시하면서도 정부 기조에 맞춰 연극처럼 준비하는 현장 간담회와 과도한 '호치키스 행정', 가독성만을 강조한 보고서 등이 대표 사례다. 호치키스 행정은 타 부처·부서의 정책을 모아 보고하는 일을 일컫는 공직사회의 은어다.
장관이 바뀌면 새로운 수장의 성향에 따라 조직문화가 급변하는 촌극도 소개했다.
노 작가는 "우리말 사랑이 끔찍했던 장관 재임 시절 정부 사업 명칭에 알파벳 'K'를 뺀다고 고생했던 반면, 후임 장관이 인상적인 단어의 사용을 강조하자 이니셜 K가 범람해 'K-챗GPT' 같은 조악한 단어까지 등장했다"며 "개별 공무원들의 능력이나 사명감은 출중하지만 이를 살리지 못하는 조직문화가 '영리해서 무능한' 관료를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문재인 정부의 '월성원전 자료 삭제' 사건 등으로 공직사회의 면피 기조가 심해졌다는 점도 지적했다. 윗선의 지시를 이행한 공무원에게 징계를 넘어 형사처벌을 비롯한 법적 책임까지 물으면서 '보신주의'가 극에 달했다는 것이다.
상급자가 보고서를 수정하면 파일명에 '과수원'(과장이 수정 지시), '국수원'(국장이 수정 지시) 같은 단어를 추가하며 알리바이를 남기는 행위를 예로 들었다.
노 작가는 "공무원은 공익의 수호자로서 상관의 위법하거나 부당한 명령을 양심에 따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한다"면서도 "어떤 명령이 대통령의 통치 행위나 재량 행위에 해당하는지 완벽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 같은 기조는 공무원들의 부담을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공직사회를 재건하려면 이는 집권당과 무관하게 꼭 해결해야 하는 요소"라고 덧붙였다.
한국 사회가 정부를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 대부분에 대한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주체'로 인식하고 있는 점에도 변화가 필요하다고 꼽았다. 발전 국가 시기 의제를 설정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권한이 정부와 관료에게 집중됐던 것은 맞지만, 현재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특히 민주화를 통해 그 권한의 상당 부분이 정치권과 시민사회로 넘어간 만큼 '권한과 의무의 불일치' 최소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관료들의 역량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전문성 함양에 걸림돌이 되는 순환보직제도의 무용성도 비판했다. 오히려 1~2년마다 인사과의 명령에 따라 보직을 변경하면서 조직 논리에 순응하게 만든다는 설명이다. 노 작가는 "민간과의 유착 등을 예방한다는 제도의 취지는 거의 살리지 못하고 단점만 부각되고 있다"며 "인사 정책을 설계할 때 인사권자의 편의가 아니라 개인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변했다.
신간을 펴낸 까닭이다.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려면 심도 있는 사회적 논의가 선행돼야 하는데, 책을 통해 그 물꼬를 트고 싶다는 것이다.
노 작가는 "공직사회를 개선할 방안으로 급여 현실화와 5급 공채 제도(행정고시) 폐지, 민간 채용 확대 등을 말하지만 조직문화를 바꾸지 않는다면 결과는 그대로일 것"이라며 "넘쳐나는 가짜 노동과 쓸데없는 규칙을 걷어내야 관료가 본래의 역할과 책임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 이진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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