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시크는 '파괴神'?…AI 산업 활성화 새장 열어

가성비 오픈소스 AI 봇물…비용 내려 시장 확대 계기 전망한국 SW 기업 입지 '쑥'…美 빅테크 '차별화 고민' 커질 듯
김태균

입력 : 2025.02.01 08:10:00


딥시크 앱 서비스 화면
(AP=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김태균 기자 = 중국이 선보인 생성 AI(인공지능) '딥시크'가 세계 AI 산업과 증시를 발밑에서 흔들고 있다.

최신 AI 반도체 없이 매우 싼 값에 '챗GPT' 등 최정상 AI에 맞먹는 모델을 만들어 'AI 개발은 고비용이 불가피하다'는 업계 통념을 무너뜨렸다.

지난달 20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추론 AI 모델 '딥시크 R1'은 극한의 '가성비'로 돌풍을 일으켰고, 이 여파에 AI 칩 대표주 엔비디아는 같은 달 27일 하루에만 주가가 17% 폭락하며 시가총액 846조원이 증발했다.

기세가 걷잡을 수 없자 시장 일각에서는 딥시크가 AI 시장을 초토화하는 만화속 '파괴 신(神)'이 아니냐는 평까지 나왔다.

한국 증시도 설 연휴가 끝난 직후인 지난 달 31일 한발 늦은 딥시크 충격에 SK하이닉스[000660] 등 반도체 종목이 대거 급락하면서 하락세로 마감했다.

그러나 AI 학계와 금융투자업계의 견해를 종합하면 딥시크는 모든 틀을 망가뜨리는 '종결자'라기 보다는 현 시장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혁신 촉매'에 더 가까워 보인다.

오픈AI의 '챗GPT'와 구글 '제미나이' 등 종전 AI 모델들을 몽땅 대체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이와 관련해 먼저 주목해야 할 딥시크의 특성은 누구나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는 '오픈소스'(개방형 소프트웨어)라는 점이다.

이 AI를 개발한 동명의 기업 딥시크(중국명 深度求索)는 자사 모델의 가중치(weight) 등 핵심 데이터를 인터넷에 공개해, 누구나 이를 가져가 상업적 용도로 활용하거나 개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가중치는 AI의 '인공신경망'을 구성하는 수치 뭉치로, AI의 능력을 발동시키는 '톱니바퀴' 부품에 흔히 비유된다.

이런 오픈소스 AI는 챗GPT나 제미나이 등 폐쇄형 AI와는 전혀 다른 영역의 상품이다.

폐쇄형 AI는 가중치 등 작동 메커니즘을 비공개로 묶어두고 타인 사용 시 요금이나 광고 열람 같은 대가를 요구한다.

오픈소스와 폐쇄형은 시장에서 서로를 대체하지 않으면서 나란히 성장한다.

컴퓨터 운영체계(OS) 시장에서 오픈소스 '리눅스'와 폐쇄형 '윈도'가 함께 전체 파이를 키워온 것이 좋은 예다.

딥시크 출시 전 대표적인 오픈소스 AI로는 페이스북 운영사 '메타'가 내놓은 '라마'(Llama)가 있었지만, 라마는 폐쇄형 AI보다 성능이 떨어져 활용에 제약이 있었다.

이 때문에 AI 업계에서는 챗GPT의 최고급 추론 모델인 'o1'에 맞먹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딥시크가 오픈소스로 풀리면 파급효과가 매우 클 것으로 본다.

AI 서비스 회사나 스타트업이 딥시크를 고쳐 검색·교육·번역·상담 등 작업에 특화한 고도 모델을 대거 내놔 시장에 활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딥시크는 개발과 운영에서 GPU(그래픽카드) 등 전산 자원을 종전 AI보다 훨씬 적게 소모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AI 개발사의 한 관계자는 "예전보다 선택의 폭이 훨씬 넓어졌고 중국 AI가 미국을 바짝 추격했다는 사실에서 놀라움이 느껴진다"며 "딥시크도 파인튜닝(세부조정) 등에 GPU 인프라가 꽤 필요하지만, 이 정도 여건이라면 다양한 AI 제품이 충분히 많이 나올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이런 기대감은 지난달 31일 증시에서도 나타났다.

타사의 AI 모델을 토대로 애플리케이션(응용프로그램) 상품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기업들은 하락장에서도 오히려 몸값이 뛰었다.

네이버[035420](6.13%), 카카오[035720](7.27%), 이스트소프트[047560](11.24%), 더존비즈온[012510](4.25%) 등이 대표 사례다.

특히 지금껏 국내 AI 소프트웨어 업계는 미국 빅테크(대형기술기업)들이 AI 혁신을 독식하며 단순 '팔로워'(시장 추종자)로서 부진이 컸는데, '딥시크 생태계'가 열리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할 공산이 커졌다.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기존 AI 강호들은 오픈소스 강자의 등장으로 새 차별점을 고민해야 할 처지가 됐다.

반면 이를 계기로 이런 AI 빅테크들이 비용을 낮추고 모델 품질을 더 끌어올리는 등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는 해석도 적잖다.

AI 학계의 한 관계자는 "딥시크는 상대적으로 소규모 모델이라 경제성이 좋은 대신 대형 AI보다 환각(엉뚱한 답변을 내뱉는 현상) 리스크가 커질 수 있다.

비유하자면 부품을 사 와 집에서 조립하는 PC가 낫냐, 브랜드 PC가 더 좋냐의 차이인데, 긴장 속에 서로 혁신을 촉진해 '윈윈'(상호이득)이 됐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딥시크 열풍의 가장 큰 피해자는 엔비디아, SK하이닉스[000660], 삼성전자[005930] 등 AI 하드웨어 기업들이다.

딥시크가 'AI 칩을 많이 쓸수록 AI의 성능이 좋아진다'는 불문율을 깨면서 AI 인프라의 과잉 투자에 대해 경계심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반면 금투업계에서는 딥시크란 '메기'의 등장으로 AI 산업의 효율이 높아지면서 장기적으로는 AI 인프라 수요가 더 커질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이때 많이 언급되는 경제 원리가 '제번스의 역설'(Jevon's Paradox)이다.

이는 19세기 영국 경제학자 윌리엄 제번스가 석탄의 소비를 연구하면서 고안한 원리로, 산업의 효율성이 증가하면 자원 소비가 절감되지 않고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이 골자다.

tae@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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