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분투칼럼] '좌초한 카누' 세네갈 젊은층의 목숨 건 유럽행 현장

임기대 부산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연구소장
우분투추진단

입력 : 2025.05.29 07:00:05


임기대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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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자 주 = 연합뉴스 우분투추진단이 국내 주요대학 아프리카 연구기관 등과 손잡고 '우분투 칼럼'을 게재합니다.

우분투 칼럼에는 인류 고향이자 '기회의 땅'인 아프리카를 오랜 기간 연구해온 여러 교수와 전문가가 참여합니다.

아프리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분석하는 우분투 칼럼에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우분투는 '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반투어로, 공동체 정신과 인간애를 나타냅니다.] 아프리카 젊은이들의 유럽행은 주로 튀니지와 리비아, 알제리 같은 소위 북아프리카 국가들을 통해 이뤄진다.

그러나 유럽연합(EU)의 지원을 받은 튀니지와 리비아가 '지중해 루트'의 통제를 강화한 이후, 아프리카 청년난민 유입은 많이 감소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EU가 2023년부터 튀니지 등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국경관리를 강화한 이유로 재정 지원을 시작한 데 따른 결과다.

튀니지 정부는 EU의 재정지원을 받아들이고 권위주의 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EU와 튀니지는 불법이민 차단조건으로 10억유로(약 1조5천700억원)에 상당하는 재정지원을 하는 '포괄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지중해 루트가 차단당하면서 이들은 불법 이민자가 됐다.

이후 이들이 쫓겨간 곳은 주로 알제리, 니제르, 리비아 일대의 사하라 지역이다.

이 지역은 인권 사각지대로 변모해가고 있다.

특히 알제리와 리비아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니제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유린이 심각하다.

지중해 루트가 사실상 차단되면서 유럽을 향하는 아프리카 청년들의 이주는 서아프리카를 거치는 경로로 전환되고 있다.

실제로 서아프리카의 세네갈은 정국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면서 청년들의 난민행이 다소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청년이 유럽행의 기회만을 엿보며, 서아프리카 항로를 통해 스페인령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고 있다.

세네갈에서는 이민, 특히 불법이민과 관련된 주요 문제가 경제·사회·정치적 요인 등이 작용한 구조적 문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부르키나파소는 테러로 인한 사망자가 가장 높은 지역이다.

반면 세네갈은 이주로 인해 희생자가 많은 국가다.

많은 이가 높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불법 이주를 시도한다.

그 주된 이유는 젊은이들의 일자리가 부족하고 미래 전망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세네갈 통계청(ANSD)에 따르면 매년 30만명의 청년이 일자리 시장에 진입한다.

그러나 많은 청년이 이주를 선택하고 있다.

일할 청년 수에 비해 겨우 3만개의 일자리만 창출되기 때문이다.

빈곤 증가와 공공 정책의 실패로 상황이 악화하는 환경도 청년들 사이에서 이주에 대한 매력이 커지는 이유다.

많은 이주민은 카누를 포함한 불법적이고 위험한 경로를 통해 유럽으로 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튀니지나 리비아, 알제리 등이 주요 이동 경로의 중심지였다.

최근 몇 년 사이 카나리아 제도를 통해 유럽으로 진입하는 주 경로로 떠오르고 있다.

청년층의 대규모 이주 선택은 결국 국내 노동력 감소로 이어졌다.

경제가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비교적 사회적 안정성을 유지해온 세네갈에서도 이러한 사회적 문제가 발생해 청년들을 좌절하게 만들고 있다.

대서양의 카누
세네갈 음부르(Mbour) 항에서 청년들이 카누에 올라타 대서양으로 향하고 있다.저자 촬영.[임기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그렇다면 세네갈 청년층은 국가 정책의 빈곤이라는 이유를 제외하고 어떤 이유로 이주를 선택하는 것일까.

이에 대해서는 몇 가지 사회 현상을 짚어볼 수 있다.

첫째, 세네갈 사회에서는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해외에 거주하는 성공적인 가족 구성원이 더 존경받는다.

이러한 이유로 청년들이 이주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력을 강하게 받는다.

해외의 축구 선수, 엔지니어 등이 아니라도 유럽 등에서 가족 구성원이 보내주는 돈은 국내에서 더 좋은 차와 집을 살 수 있다.

또 더 좋은 식당에서 식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러움의 대상이 된다.

세네갈의 토착어(월로프어)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인 '바르셀로나 아니면 죽어라'(Barca wala Barsax)는 이러한 결기를 잘 보여준다.

'유럽에 가면 성공, 아니면 죽음'이라는 의미는 청년들의 극단적 이민 열망과 사회적 절망감을 동시에 담고 있다.

그렇다 보니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부모가 직접 지원해가며 모험을 감행하는 것이다.

부모들은 자신의 소유물과 가축, 보석 등을 팔아 자식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불법 이주라 할지라도 서슴없이 이런 식의 이주를 선택한 사람들은 중간 브로커에게 일정 수준의 돈을 지급한 후 바다로 혹은 사막으로 먼 여정을 떠난다.

그들 앞에 펼쳐진 현실은 너무도 뻔하게 우리가 언론 속에서 종종 마주하는 모습이다.

둘째, 각종 밀매를 조장하는 마피아와 같은 집단이 활개 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청년들의 꿈과 희망을 이용해 돈을 버는 전문 브로커 집단이다.

지난 4월 필자가 방문한 세네갈의 음부르(Mbour)항은 수도 다카르 근처에서 불법 이민이 급증하는 곳이다.

2024년 9월에는 유럽으로 가려던 배가 침몰해 39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연령대는 대개 10대에서 40대 사이였다.

2024년 초부터 100명 이상이 실종되거나 사망한 바다를 선택한 이유는 더 나은 삶을 꿈꾸기 위한 것이다.

이곳 사람들은 카누 제작 담당자, 사람 모집 담당자, 연료 판매 담당자, 이주 기획자 등이 체계적으로 조직됐다.

이들은 마치 사슬처럼 연결 고리를 형성하면서 밀수업자, 모집업자, 인신 매매업자의 일을 하고 있다.

세네갈에서는 이주자 인신매매가 범죄다.

법률에 따라 5년∼10년의 징역과 100만∼500만 세파프랑(CFA·약 240만∼1천2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하지만 경제가 어렵고 지도자들의 부패가 심해지다 보니 이런 일이 흔하게 발생한다.

실제 바닷가로 진입하다 보면 브로커가 곳곳에 여럿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지중해에서 좌초한 카누
튀니지 마흐디아(Mahdia)항에서 지중해를 건너다 좌초한 카누.저자 촬영 [임기대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4월 바시루 디오마예 파예 대통령이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취임했다.

12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낸 그는 서아프리카 민주주의의 모범국가로서 이미지를 지켜냈다.

그는 청년들에게 더 나은 삶을 약속했다.

같은 해 9월 카나리아 제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해 세네갈인 약 125명이 사망했다.

파예 대통령은 인신매매범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음부르에서, 그리고 세네갈 해안 거의 모든 곳에서 일어난 일은 굳이 말해야 한다면, 인신매매에 연루된 이주민 네트워크의 소행"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들이 젊은이들의 절망을 이용하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꿈을 팔아넘기고 있다"면서 "이 환상의 판매자, 죽음의 판매자에 대한 끈질긴 추적이 이제부터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브로커에게 경고했다.

동시에 파예 대통령은 부패 척결, 인플레이션 해소, 프랑스의 잔재 척결 등을 내세우며 청년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겸손하고 투명한 정치를 약속했다.

광산과 가스, 석유 등을 개발할 경우 경제주권 강화를 우선해 청년들의 경제난을 해결하겠다고도 했다.

과연 파예 대통령은 좌절감에 빠진 세네갈 청년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세네갈 현지 상황을 본다면 쉽지는 않지만, 충분한 희망의 징조가 눈에 띈다.

2024년 9월 시사주간지 죈아프리크(Jeune Afrique)의 여론 조사는 현재 아프리카 젠지(Gen Z) 세대라고 할 수 있는 18∼24세 청년의 생각과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국가별 차이는 있지만, 아프리카에서 청년이 차지하는 비율은 대부분 75%를 넘는다.

그들은 이전 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가치관으로 디지털과 인터넷에 익숙하다.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크며 기성세대 정치권의 부패에 반감이 크다.

기성세대와는 달리 서구식 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관심과 신뢰가 줄고 중국, 러시아 등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려는 성향도 보인다.

이런 현상은 때로는 급진적인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 여론조사는 기존의 아프리카 청년세대가 변화에 대해 느리거나 점진적이다는 일반적인 평가에서 벗어났음을 보여준다.

가치관의 빠른 변화, 글로벌 정치환경에 상당히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음을 주목한다.

그렇다고 청년들이 이주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수가 확연히 줄어드는 추세라는 것이다.

세네갈만 보더라도 2010년대에는 튀니지와 리비아를 거쳐 유럽으로 향하는 이주가 활발했다.

최근에는 모로코와 카나리아제도로 향하는 경우가 돋보였다.

그러나 2025년에 들어서는 이러한 이주 흐름이 뚜렷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는 이주 문제가 여전히 중요한 과제이지만, 청년 세대가 새 지도자에게서 새로운 변화와 갈망을 찾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세네갈은 아프리카 내에서 쿠데타가 없는 안정적 국가다.

파예 대통령은 이러한 국가의 전통과 자부심을 지키려고 애쓸 것이다.

그가 제시하는 정책 방향과 나이, 청년층과 공감대, 평화적 정권교체 등은 세네갈 청년 세대들이 느끼는 좌절을 희망으로 승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권위주의적이고 불안정한 이웃 국가들(말리, 부르키나파소, 니제르, 기니 등)에도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클 것이다.

하지만 파예 대통령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많은 중압감 또한 느낄 것이다.

마찬가지로 책임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시민사회와 더불어 청년들의 희망을 담보해 줄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단지 프랑스군 철수 등 주권국으로서 위상과 자존심만 외쳐서는 청년들의 마음을 사로잡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외부 필진 기고는 연합뉴스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임기대 교수 현 부산외대 아프리카연구소장 및 중앙도서관장, 프랑스 파리7대학 박사(언어역사인식론), 저서 '베르베르문명', '7인 7색 아프리카' 외 다수.

한국프랑스학회장과 한국연구재단 인문한국(HK)3.0 과제 주관연구소 연구 책임자 겸임.

dlarleo@hanmail.net(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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