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반발에 디지털화폐 실험 '삐걱'…"한은 돈안내고 재촉만"

이창용 총재 "2단계 비용은 절반이상 부담" 설득에도 여전히 이견은행권 "상용화 계획까지 포함한 로드맵 짜고 일정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신호경

입력 : 2025.06.24 06:01:00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서울=연합뉴스) 황광모 기자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가공식품, 주거비 등 생활물가 평가와 향후 주요물가 동인 점검'을 주제로 열린 2025 상반기 물가 설명회에 참석해 취재진 질문을 듣고 있다.2025.6.18 hkmpooh@yna.co.kr

(서울=연합뉴스) 신호경 한지훈 민선희 기자 = 한국은행이 추진하는 CBDC(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 사업이 실험(테스트) 단계에서부터 삐걱거리고 있다.

한은이 상용화 계획 등 장기 비전을 뚜렷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비용도 전혀 분담하지 않은 채 시중은행들에 '일단 따라오라'는 식으로 실험 참여를 요구하자 반발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에 따라 CBDC 실거래 테스트(한강 프로젝트) 2단계 일정조차 불투명해졌고, 은행권과 함께 스테이블코인 주도권을 확보하려던 한은의 구상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한은 주도 CBDC 2차 테스트 관련 은행권 입장
[은행연합회 '한은 관련 업무 현안 사항' 보고서 중 캡쳐.재판매 및 DB 금지]

◇ 은행권 "2차 CBDC 테스트 관련 한은과 이견 존재"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23일 열린 이창용 한은 총재와 18개 회원사 은행장 간담회에 앞서 참석 은행들에 참고자료 성격의 '한은 관련 업무 현안 사항' 보고서를 배포했다.

은행권은 이 보고서에서 한강 프로젝트와 관련해 "현재 진행 중인 1차 테스트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으나, 후속(2차) 테스트 진행의 경우 한은과 이견이 존재해 조율 중"이라며 "후속 테스트 내용을 고려할 때 은행 내부에서 단순히 기존 테스트의 연장이 아니라.

새 사업과 동일한 수준의 내부 절차가 필요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더 구체적으로는 후속 테스트 범위가 개인 간 송금과 추가 가맹처 발굴 등으로 확대되면서 1차 테스트에서 고려되지 않은 의심거래보고제도(STR)·이상거래감지시스템(FDS) 등 정책 요건, 추가 전산 개발, 사업 예산 집행 등이 필요하다는 게 은행들의 지적이다.

은행권은 한은에 "후속 테스트를 진행하려면 한은과 은행 모든 유관 부서가 참여하는 'CBDC 일반 이용자 실거래 테스트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테스트 이후 상용화 계획까지 포함한 장기 로드맵을 수립한 뒤 이를 바탕으로 사업 일정을 현실적으로 재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
(서울=연합뉴스) 이종렬 한국은행 부총재보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안정 상황(2025년 3월) 설명회에서 발언하고 있다.2025.3.27 [한국은행 제공.재판매 및 DB 금지] photo@yna.co.kr

◇ 1차 테스트 참여 은행 약 300억 지출…2차 청구서는 얼마 CBDC와 관련한 은행권의 불만은 이미 1단계 한강 프로젝트 준비 과정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한 시중은행 고위 관계자는 "지난해 1단계 준비 사전 회의에서도 한은이 갈팡질팡하면서 인프라 구축과 비용, 가맹처 확보 등을 각 은행에 떠넘기고 재촉만 한 게 사실"이라며 "은행 입장에서는 당시 막대한 비용만 들고 우리에게 직접적으로 어떤 이익이 있는지 확신도 없었지만, 중앙은행 주도 프로젝트라 최대한 협조했다"고 말했다.

한강 프로젝트를 주도한 이종렬 한은 부총재보는 당초 1단계 테스트가 지난해 말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예고했지만, 결국 올해 4월에야 테스트가 '지각 출발'한 것도 이런 혼란 때문이었다는 게 은행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그중에서도 한강 프로젝트의 재원 문제는 지금까지도 은행 입장에서 가장 큰 골칫거리다.

1단계 테스트에 참여한 6개 시중은행에 따르면 각 은행은 한강 프로젝트 관련 전산시스템 등 인프라 구축과 마케팅 등에 적게는 30억원, 많게는 60억원 가까이 투자했다.

평균 50억원만 잡아도 6개 은행이 한은 주도의 한강 프로젝트를 위해 약 300억원을 지출한 셈이다.

은행권이 이번 보고서에서 "후속 테스트로 추가 전산 개발, 사업 예산 집행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결국 송금 실험 등 2단계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별도의 추가 투자가 불가피한 문제를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불만이 고조되자 이 총재가 이 부총재보 등 프로젝트 관계자를 질책했다는 소문이 한은 안팎에서 흘러나왔고, 결국 이 총재는 지난달 중·하순 한강 프로젝트 참여 6개 은행장을 직접 1대 1로 만나 협조를 부탁했다.

한 시중은행 고위관계자는 "당시 이 총재가 2단계 프로젝트에서는 한은이 절반 이상 비용을 분담하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70%의 분담률까지 언급됐다는 전언도 있었다.

비용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한은의 일방적 결정, 소통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많다.

각 은행에 한강 프로젝트 관련 개선 사항을 묻자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기존에 합의한 한강 프로젝트 관련 세부 내용들이 변경되는 경우가 너무 잦아 은행 입장에서 애로 사항이 많았다"며 "예를 들어 예정된 '대구시 교육 바우처 사업'은 테스트 마감이 한 달도 남지 않은 시점까지 시행 시기가 미정이었고, 한은 차원의 CBDC 마케팅도 시행 시기가 자주 변경돼 공동 마케팅을 준비하는데 힘들었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도 "한은이 구체적 방향과 장단기 계획을 더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소통해야 각 은행이 충분히 준비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한은만 믿어도 되나…은행권, 스테이블코인도 각자도생 은행들은 스테이블코인과 관련한 한은의 주도권도 의심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은 가격 변동성을 줄이기 위해 법정화폐 가치에 연동하도록 설계한 암호화폐를 말한다.

은행권은 보고서에서 "스테이블코인 정책 방향과 관련해 한은과 금융위원회의 의견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동향을 정리했다.

한은은 원화 기반 스테이블코인이 화폐 대체재가 될 수 있고, 비은행 금융기관의 스테이블코인 발행은 사실상 내로우뱅킹(대출 없이 지급기능만 수행하는 제한된 은행) 허용과 마찬가지인 만큼 감독 가능한 은행권부터 발행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는 통화당국의 우려를 이해하면서도 제도화 과정에서 입장 조율이 필요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게 은행권의 설명이다.

지난 10일 발의된 '디지털자산기본법안' 역시 자기자본 5억원 이상 등의 요건만 충족하면 은행뿐 아니라 비은행 회사에까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은행권은 은행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합작법인을 설립해 공동으로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사업모델을 구상하는 동시에, 다양한 비은행 업체들과도 접촉하며 스테이블코인 법제화에 대비한 합종연횡을 꾀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이 확장성을 가지려면 핀테크(금융기술) 이런 쪽과도 협업할 필요가 있다"며 "따라서 스테이블코인 관련 논의를 한은이나 은행끼리만 하는 게 아니라 '페이' 업체, 코인거래소, 블록체인 업체 등과도 꾸준히 만나 스테이블코인 발행 준비를 하고 있다.

당행뿐 아니라 다른 은행들도 마찬가지"라고 밝혔다.

shk999@yna.co.kr, hanjh@yna.co.kr, ssun@yna.co.kr(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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